올해 들어 주요국 중 가장 부진한 성적 기록
상승률 가장 높았던 곳은 일본
日, 반도체 장비회사 4곳 포함한 사무라이7이 증시상승 이끌어
올 들어 2월 28일까지 코스피지수는 –0.66%를 기록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0.15%)보다 더 낮았고, 주요국 중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일본 닛케이지수(17.78%)와는 상반된 그래프를 보였다.
올해 미국의 S&P500 지수(6.89%)와 다우존스산업평균 지수(3.27%), 유럽의 스톡스유럽600 지수(3.36%) 역시 상승했다.
한국은 침울한데 미국과 일본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나스닥100 지수는 4개월 연속 상승했고 닛케이225 지수는 40,000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AI가 촉발한 ‘엔비디아 특수’를 톡톡히 누린 덕이다.
각 무대의 주인공은 뚜렷했다. 미국에서는 빅테크 기업 7곳을 뜻하는 ‘황야의 7인(M7)’에서 AI를 주도하는 MNM(MS·엔비디아·메타)으로 상승 랠리가 좁혀졌다.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7’이, 유럽에서는 ‘그래놀라즈’가 상승을 이끌었다.
엔비디아 200% 뛸 때 700% 뛴 SMCI 최근 글로벌 증시의 키워드는 하나로 좁혀졌다. ‘AI’다. 엔비디아가 한때 ‘반도체 제국’으로 불리던 인텔의 시가총액을 처음으로 추월한 건 2020년이다. 2022년 챗GPT가 등장한 후 엔비디아의 상승세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난해 6월 시총 1조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 2월 23일에는 뉴욕증시에서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돌파했다. 구글과 아마존을 제치고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에 이어 세계 3위 기업에 올랐다. 지난해 영업이익(329억 달러·43조원)이 1년 전보다 무려 3배 넘게 증가한 덕분이다.
AI 반도체 점유율은 90%를 웃돈다. 인텔은 이제 적수도 되지 않는다. ‘AI 모멘텀, 엔비디아 이펙트’ 같은 표현이 등장할 만한 실적이다.
지난해 미국 상승장을 주도했던 ‘M7’의 위력도 달라졌다. 애플·아마존·알파벳·메타·MS·엔비디아·테슬라 중 AI 경쟁에서 밀리고 실적에 타격을 입은 애플과 알파벳, 테슬라의 힘은 약해졌다.
대신 시장의 이익을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한 MS와 엔비디아, 메타의 주도권은 여전하다. 지난 1년간 S&P500 중 엔비디아가 235%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고 2위 자리는 메타(187.6)가 차지했다.
반도체 설계기업 AMD 역시 126% 상승했다. 나스닥에서는 엔비디아의 오랜 파트너이자 데이터센터용 서버 부품을 제조하는 SMCI가 무려 700% 폭등했다. 오픈AI를 등에 업은 MS는 같은 기간 65% 상승했다. 폭풍 같던 상승장을 이끌었던 종목은 대부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2월에만 27.91% 상승한 엔비디아는 2월 23일 처음으로 시가총액 2조 달러를 찍고 다시 내려왔다. MS 역시 지난 한 달간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인원을 감축하며 비용을 줄이고 배당을 통해 투자 매력을 높였던 메타는 지난 6개월간 주가가 60% 넘게 뛰었던 상승세가 잠시 멈췄다.
4분기 실적발표에 맞춰 하루에 두 자릿수씩 뛰던 모멘텀이 한 차례 끝났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AI와 빅테크가 주도하는 장세는 장기간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마크 디자드 PNC CIO는 “지금 M7에 지나치게 비중을 집중하고 싶진 않지만 포트폴리오에서 이들 종목을 소홀히 하고 싶지도 않다”며 “이런 종목(M7)에 대한 투자를 유지하되 더 다변화된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은행 UBS는 정점에 대한 우려는 타당하지 않다면서도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투자 심리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무라이 7’ 중 4개가 반도체 장비 기업 AI 특수, 반도체 열풍은 바다 건너 일본에도 상륙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반도체 부품 장비 회사의 주가가 폭등하며 일본 증시는 연일 최고점을 찍고 있다.
지난 1년간 도쿄증시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기업은 반도체 생산 장비 기업 스크린홀딩스다. 277.5% 뛰었다(2월 28일 기준).
스크린홀딩스와 함께 일본 반도체 소부장 4대 천왕으로 불리는 도쿄일렉트론(138%), 디스코(224.22%), 어드밴테스트(159.8%) 역시 급등했다.
일본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반도체 산업 부활에 나서고 있고 반도체 주권을 가진 미국, 대만과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4조 엔(약 36조원)의 예산을 확보했고 일본에 공장을 짓는 해외기업에도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2월 첫 가동을 시작한 TSMC 구마모토 공장에 들어간 비용 10조원 중 4조원을 일본 정부가 댔다.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과 협력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갖췄던 일본의 반도체 생태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카드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중국 소부장 기업의 공급이 막힌 상황에서 일본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의 생산 팹도 일본 장비로 채워지고 있다. 도쿄일렉트론의 올해 1~2월 매출의 46.9%는 중국에서 나왔다.
스크린홀딩스 역시 올해 1분기 중국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44%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디스코도 올해 매출에서 중국 비중이 최소 40%를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데 일본은 오히려 중국 특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일본 반도체 장비의 존재감이 커지자 닛케이255 지수는 연일 천장을 뚫고 있다. 스크린홀딩스, 도쿄일렉트론, 디스코, 어드밴테스트와 함께 도요타자동차, 스바루, 미쓰비시상사가 ‘사무라이 7’으로 불리며 일본 증시를 주도했다.
여기에 역대급 엔화 약세도 상승 동력으로 작용했다. 일본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리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렸고 기업들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월 외국인 투자자의 도쿄거래소 프라임(1부) 시장 투자 대금은 2조 엔(약 17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일본 상사들의 이익이 늘었고 엔저로 수출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자 기업들은 3년 동안 역대급 순이익을 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앞서 일본 상장사 1020곳의 1분기 순이익이 역대 최대 규모인 약 43조5000억 엔(약 38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3월 결산하는 일본 주요 상장기업들의 연간 순이익이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추산됐다. 경기침체라더니 증시는 좋은 유럽, 이유는?
경기침체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는 유럽도 증시에는 훈풍이 불었다. 골드만삭스는 유럽 주식이 좋은 성과를 낸 이유로 11개 종목을 콕 집었다. 그리고 여기에 ‘그래놀라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놀라즈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로슈, ASML, 네슬레, 노바티스, 노보노르디스크, 로레알,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아스트라제네카, SAP, 사노피가 여기에 속한다.
11개 기업 중 6개가 제약 분야다. 영국의 GSK, 스위스의 로슈와 노바티스, 덴마크의 노보노르디스크, 영국과 스웨덴의 합작사인 아스트라제네카, 프랑스의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가 이름을 올렸다. 이 외에 AI와 로봇 산업에서 성장 가치가 있는 독일의 소프트웨어 기업 SAP도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도 두 종목 포함됐다.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로레알과 명품제국 LVMH는 코로나19 이후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매출이 뛰었다.
경기침체 우려에도 유럽 증시로 돈이 몰리는 이유는 이미 급등한 미국 기술주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인식 때문이다. 유럽 증시가 미국 주식보다 평가 가치가 낮아 상승 여력이 더 크고 기술주에 몰려있는 미국 M7과 달리 다양한 업종으로 구성돼 변동성도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로뉴스는 “그래놀라즈는 인구 고령화, AI 및 로봇공학의 발전,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같은 가장 유망한 구조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며 “막대한 배당금, 탄탄한 성장 전망, 광범위한 국제적 영향력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놀라즈의 합산 시가총액은 2조6000억 유로(약 3750조원)를 넘어선다. 최근 1년간 그래놀라즈는 5000억 유로(약 720조원)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그래놀라즈가 유럽의 경기침체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이유는 수출 기업이기 때문이다.
매출의 80% 이상이 유럽 외에서 발생하는 만큼 유럽보다는 소비국의 경기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문제는 중국이다. LVMH, 로레알, ASML은 중국 시장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거나 중국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매출이 고꾸라질 가능성이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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