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를 포기한 애플에서 배울 점[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2000년 전후만 해도 미국 주재원을 했던 사람들의 귀국 이삿짐에는 소니 TV가 들어 있었다. 물론 뒤가 툭 튀어나온 ‘배불뚝이 TV(브라운관 TV)’였다. 부피도 크고 엄청나게 무거웠지만 주재원들은 애써 소니 TV를 이삿짐에 포함했다. ‘있어 보이는 집’의 상징처럼 여겨진 탓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베스트바이 등 미국 전자제품 양판점은 소니 TV로 채워지다시피 했다.

그후론 아니었다. 소니가 배불뚝이 TV를 고수하는 사이 삼성과 LG는 평면TV를 시작으로 새 제품을 내놓으면서 빠르게 TV시장을 장악했다. 애지중지하던 소니의 배불뚝이 TV는 처치곤란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렇게 소니는 잊혀지는 듯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또 달라졌다. 2023년 소니는 1조1700억 엔(약 10조409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삼성전자(6조5670억원)를 앞섰다. 물론 삼성전자가 일시적으로 부진했던 탓이긴 하다. 하지만 2013년 영업이익(265억 엔)에 비해 50배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보는 게 맞다.

세계 PC시장을 호령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PC에서 모바일로 변하는 시대 흐름에 뒤처지면서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으로 평가됐다. 역시 아니었다. 2023년 매출은 275조원으로 10년 전(113조원)보다 2배 이상 많아졌다. 시가총액도 애플과 1위를 다툴 정도로 강자의 위상을 되찾았다.

전자업계의 공룡인 두 회사가 화려하게 부활한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강력한 경영 리더십, 조직문화 개편, 선제적 M&A(기업 인수합병) 등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업구조 전환이다.

소니는 뿌리였던 전자산업에서 과감히 탈피했다. PC사업을 매각하고 TV사업을 재편했다. 대신 게임과 음악, 영화 등 문화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결과 엔터테인먼트 사업 비중이 17%(2012년)에서 51%(2023년)로 높아졌다. 68%를 차지했던 전자사업 비중은 34%로 낮아졌다.

MS는 PC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 클라우드에서 성장 동력을 찾았다. 그 결과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으로 거듭났다. 애플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협력해 기업용 소프트웨어 오피스를 개발하는 등 자존심도 슬쩍 접어뒀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 선도자인 오픈AI에 1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단숨에 AI시장의 강자로 부상했다.

다 아는 얘기를 장황하게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애플 때문이다. 애플은 10년간 공들여 온 전기차 ‘애플카’ 개발을 포기하기로 했다. ‘타이탄 프로젝트팀’에 속한 2000명을 AI부서로 이동시키는 등 생성형 AI에 집중할 계획이다. 애플의 결정이 눈에 띄는 것은 소니나 MS처럼 한풀 꺾인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플은 610억 달러(약 81조원)의 현금을 보유한 여전히 세계 최고 기업이다. 애플카 개발을 위한 투자여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접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잘나가는 기업도 이렇다. 한때 잘나갔다가 주춤거리는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행여 아니다 싶을 땐 과감히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물론 대안이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핵심 계열사였던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솔루스를 버린 두산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나, 기존 관행을 버린데 이어 자산운용사까지 떼어낸 메리츠금융그룹이 잘나가고 있는 것이 그런 경우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