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등장하며 한국 자본시장 뒤흔들어
기업 싼 값에 인수한 뒤 비싸게 매각해 '먹튀 논란'

[스페셜 리포트 : 기업 저격수 된 사모펀드④]
과거 론스타 사무실이 있었던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구 스타타워).  사진=한국경제신문
과거 론스타 사무실이 있었던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구 스타타워). 사진=한국경제신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논란을 일으킨 큰 경제 주체 하나는 외국계 펀드였다. 출처도 모르는 막대한 자금을 조세회피 지역을 통해 들여와 외환위기 이후 혼란한 한국 경제를 흔들며 큰 이익을 챙겨갔다.

투자처는 채권, 은행, 기업 등을 가리지 않았다.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서 회사가 정상화 과정을 거칠 때 채권 액면 금액을 모두 받아가기도 했고, 매각 대상 기업 등의 자산을 활용해 또 다른 부채를 일으켜 기업을 싼값에 인수하는 수법도 썼다.

이들은 선진 금융기법으로 포장해 수년 후 기업을 매각하며 막대한 이익 을 얻었다. 이렇게 국부를 외국계 펀드에 갖다바친 한국 사회는 반성의 시간을 거쳤다. 한국형 사모펀드의 필요성이 부각된 배경이다. 한국 사회에 큰 교훈을 던져준, 막대한 부를 챙겨간 외국계 펀드의 사례를 정리했다.
디자인=박명규 기자
디자인=박명규 기자
한때 ‘공공의 적’ 됐던 론스타론스타는 1989년 미국 텍사스주에 설립된 사모펀드다. 이들은 세계 각국의 부실채권, 기업, 부동산에 투자한 후 일정 기간 보유 후 매각해 이익을 보고 철수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2001년 국내 소주시장의 8.3%를 점유하며 업계 4위를 달리던 무학이 워크아웃 위기에 직면하자 론스타의 목표물이 됐다. 당시 무학이 계열사인 무학건설에 지급보증했던 102억원 규모의 보증채권은 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갔다.

자산관리공사는 액면가의 약 3% 수준인 3억600만원을 받고 부실채권을 론스타에 팔았다. 300억원가량의 부채를 상환하며 가까스로 워크아웃을 졸업한 무학에 론스타는 기다렸다는 듯 84억원대 채권의 권리를 행사 했다. 투자 금액보다 약 30배에 많은 돈이다.

무학은 결국 84억원을 주고 채권을 되사들이며 끝이 났다. 당시 국내에는 부실채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변제가 어려운 채권들이 쏟아져 나왔고 새로운 시장이 형성됐다. 자산관리공사는 은행으로부터 넘겨받은 여러 회사의 부실채권을 한꺼번에 묶어 팔아치웠다. 이 과정에서 현금흐름이 좋은 회사의 채권은 외국계펀드의 먹잇감이 됐다.

2003년 8월 론스타는 총 투자금 2조1500 억원을 들여 외환은행 지분 51.02%를 확보했다. 각각 32.5%의 지분율을 가진 코메르 츠방크와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우선주 지 분까지 사들여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외환은행의 주인이 된 론스타는 즉시 본색을 드러냈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첫 번째 전략, 배당이었다. 2006년 4168억 원, 2007년 2303억원, 2008년 411억원, 2009년 1678억원을 현금배당했다. 2010년에는 중간배당을 두 번 실시하며 인수부터 재매각까지 9333억원의 현금을 배당으로 챙겼다.

궁극적인 수익 극대화는 인수로부터 4년 후인 2007년 8월 HSBC에 재매각을 시도하며 시작한다. 우리 금융당국의 인수 승인 거부로 무산됐지만 2010년 11월 하나은행이 다음 타자가 됐다. 2012년 1월 27일 론스타는 마침내 4조6888억원에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되팔아 총 4조90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겨주던 2003년 거래가 부당함을 제기하는 곳도 있었다. 그해 10월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상대로 ‘론스타 주식 취득’ 무효확인 소송을 내기도 했다. 단순 외자 유치가 아니라 은행의 경영권 자체를 외국 사모펀드에 헐값에 팔아버리는 것으로 모자라 이들의 투기적 이익을 국가가 보장했다는 주장이었다.

더불어 계약 조건에 ‘타 주주들은 주식 매각 시 론스타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드래그 어롱(Drag along)’ 조항도 따라붙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모펀드를 도운 격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모든 의혹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2003년 5월 론스타는 법정관리 중이던 극동건설 인수에도 나섰다. 98.12% 지분 을 얻기 위해 1476억원, 회사채 1230억원, 상장폐지를 위한 주식매수비용에 224억 원을 들여 총 2900억원으로 극동건설의 주인이 됐다. 회사채는 즉시 상환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론스타가 인수에 쓴 돈은 1700억원이다.

2003년 6월 극동건설이 법정관리에서 벗어나자 론스타는 본격적인 투자금 회 수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첫해부터 배당 을 시작했다. 영업이익 162억원보다 많은 240억원, 2004년에는 195억원, 2005년 에는 260억원을 배당했다. 이뿐만 아니라 극동건설 사옥이었던 충 무로의 극동빌딩(현 웅진빌딩)을 맥커리 CR리츠에 약 1583억원에 매각했다. 결국 론스타는 2007년 웅진에 6600억 원을 받고 극동건설을 매각했다. 론스타 는 총 1700억원을 들여 극동건설을 샀고 매각 전까지 현금 배당, 자산 매각 등으로 3800억원을 벌었다. 그리고 기업 매각대금으로는 6600억원을 받아 총 8700억원가량의 이익을 남겼다. 골드만삭스와 진로의 악연1997년 진로그룹이 부도났다. 국내은행들은 1조4659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1261억원에 매각 했다. 1998년 이후 골드만삭스는 캠코로부터 진로그룹의 부실채권을 2742억원에 사들였다. 2년간 매집한 끝에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최대 채권자가 됐다.

당초 진로는 골드만삭스의 자금을 활용해 회사를 정상화하려 했다. 2003년 빚을 갚아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으나 진로는 이자만 갚고 원금을 갚지 못했다. 진로의 기간 연장 요청에도 골드만삭스는 가차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에 골드만삭스와 진로 사이의 공방전이 벌여졌다.

진로는 1997년 부도를 맞은 당시 골드만삭스가 구조조정 컨설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때 양측은 기업 내부 기밀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거나 이용하지 않겠다는 비밀 유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계약을 어기고 내부정보를 이용했다.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것이었다. 골드만삭스는 정당한 입찰 과정으로 채권을 매집했다고 반박했다. 또 내부자료가 아닌 캠코측 외부자료로 투자 여부를 결정했으며 자문 부서와 채권매집 부서는 다른 부서라는 입장을 내놨다.

또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했음을 강조했다. 해당 사안은 한국 상법상 위법이란 논리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아일랜드에 위치한 세나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해당 회사는 2003년 1월 골드만삭스로부터 870억원의 채권을 양도받아서 진로의 채권단이 됐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세나 인베스트먼트가 이사회가 구성된 정당한 회사이고 아일랜드 상법을 따라 채권양도계약을 했기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외화 유치를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진로는 자금난 해결을 위해 진로재팬을 일본 아사히에 팔고자 했다. 그러나 세나 인베스트먼트가 제동을 걸어 좌초됐다. 진로재팬은 진로 홍콩의 소유였는데 세나 인베스트먼트가 진로 홍콩의 채권을 매집했던 것이었다. 매각이 좌절된 후 골드만삭스는 채권변제를 요구해 진로 홍콩을 파산시켰다.

법원은 결국 골드만삭스의 손을 들어줬다. 2003년 5월 14일 서울지방법원 파산부는 골드만삭스 계열사인 세나 인베스트먼 트의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진로에 대한 회사정리절차 개시가 결정됐다. 국내 소주시장의 54%를 차지했던 진로는 창업 80년 만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현재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하게 된 일차적 배경이 됐다. 골드만삭스는 진로채권 인수와 회사 매각을 통해 약 2조원에 육박하는 차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뉴브리지캐피탈, 법의 틈새를 노리다뉴브리지캐피탈은 1999년 12월 제일은행 지분 51%를 인수해 2004년 12월 스탠다드차타드(SCB)에 매각했다. SC제일은행의 탄생 배경이다. 뉴브리지캐피탈은 5000억원을 투입해 1조6795억원을 회수했다. 차익은 1조1800억원이다. 뉴브리지 캐피탈은 이중 최소 2450억원을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금액은 뱅크 오브아메리카, GE캐피탈, 메트라이프 등 해외 기관투자가들과 연기금들이 나눠 가져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뉴브리지캐피탈은 한국 법의 틈새를 노려 한국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뉴브리지캐피탈은 최고 세율 36%에 해당하는 세금 4300억원 가량을 내야 했다. 뉴브리지캐피탈 법인은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등록돼 있었다. ‘먹튀’ 논란이 확산되자 뉴브리지는 자산관리공사와 중소기업 연구원에 각각 1000만 달러씩 사회공헌기금으 로 내놨다. 그러나 전체 수익의 2%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뉴브리지의 두번째 성공 투자는 하나로 텔레콤이다. 2003년 뉴브리지-AIG 컨소시엄은 5억 달러(당시 5850억원)를 투자해 하나로텔레콤 지분 38.89%를 인수했다. 이때 해당 컨소시엄은 10년 이상 장기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인수합병과 구조조정 위협에 시달리던 노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4년 만인 2007년 뉴브리지-AIG 컨소시엄은 SK텔레콤에 1조877억원에 매각했다. 차익은 5027억원이었다. 이번에도 뉴브리지는 세금을 내 지 않았다. 해당 컨소시엄은 단일주주가 아닌 컨소시엄 형태라 각각의 지분이 25%가 넘지 않았던 탓이다.

윤소희 인턴기자 ysh@hankyung.com, 임나영 인턴기자 ny924@hankyung.co인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