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료품 물가 상승에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맥도날드. 사진=맥도날드 공식 홈페이지
미국 식료품 물가 상승에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맥도날드. 사진=맥도날드 공식 홈페이지
“나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싫어요. 쿠키가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이제 쿠키를 두 배로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최근 미국에선 어린이 TV 프로그램의 캐릭터인 쿠키 몬스터가 X(옛 트위터)에 슈링크플레이션을 빗대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쿠키 몬스터가 나오는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가 만든 계정에서 쿠키 몬스터는 “나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싫으며 쿠키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식품 제조업체들이 인플레이션을 감당하기 위해 가격은 그대로 두고 제품 용량을 줄이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커지는 슈링크플레이션 비판
CNN은 3월 4일(현지 시간) 민주당 상원의원 밥 케이시의 보고서를 인용해 오레오 더블 스터프 초콜릿 샌드위치 쿠키 크기가 2019년 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6% 줄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해 청소용품, 커피, 사탕, 설탕, 냉동식품 등 다양한 제품의 크기가 감소했으며 특히 가정용 종이 제품이 가장 큰 슈링크플레이션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화장지나 종이 타월과 같은 가정용 종이 제품은 2019년 1월에 비해 개당 가격이 34.9% 올랐다”며 “총비용 증가분 중 10.3%는 생산업체들이 포장 크기를 줄였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또한 최근 미국 슈퍼볼 기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식품 제조업체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아이스크림 용기를 줄이거나 포장지 안에 스낵 양을 기존보다 적게 넣는 행태를 비난했다. 그는 “미국 대중은 속는 것에 지쳤다”며 “슈링크플레이션을 충분히 겪었으며 (그들이 책정한 금액은) 바가지 요금”이라고 말했다.

11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민심은 심상치 않다. 하버드대가 지난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의 42%가 인플레이션을 미국 대선의 결정적 변수로 꼽았다. CBS방송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인플레이션 등을 이유로 바이든에게 분노하고 있다”며 “이들이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가 선거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식품업체들도 실적 압박 시달려
미국 식품 기업들도 식품 관련 재료비 상승으로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데니스, 웬디스 및 기타 레스토랑 체인은 투자자들에게 소비자, 특히 저소득층이 재정적 압박을 느끼면서 지난해 고객 수가 2022년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허쉬, 크래프트 하인즈 등 대형 식품 제조업체들은 제품 가격 상승으로 판매량이 감소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오레오 제조업체 몬델레즈는 4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코코아 가격 때문에 올해도 일부 제품의 가격을 계속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WK 켈로그는 2022년부터 소비자들에게 시리얼을 저녁 식사로 먹도록 권장하는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 가운데 식비 비중은 3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농무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1991년 미국 소비자들은 가처분소득의 11.4%를 식료품에 지출했다. 당시 미국 가정은 1970년대 인플레이션 이후 가파른 식료품 가격 상승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식료품 가격 비중은 이후 꾸준히 줄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11.3%로 다시 올랐다. 스낵업체인 켈라노바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카힐레인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 시기가 지난 후를 살펴보면 식품 가격이 다시 내려간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개인 식당도 고통받아
미국에서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인건비와 재료비는 상승하는 반면 고객들은 맥도날드, 치폴레와 같은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쏠리고 있어서다. WSJ는 3월 4일(현지 시간) 식품산업 시장조사 기업인 데이터센셜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11월까지 소상공인 음식점 가운데 폐업한 점포가 개업한 점포보다 4590개 더 많았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수치는 미국 전체 외식업 매출이 올해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와 상반된다. 전미레스토랑협회에 따르면 올해 미국 외식업 매출은 2023년보다 5% 증가한 1조100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노동부는 외식업에서 2020년 말 약 240만 개 일자리가 감소했지만 올해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맥도날드, 치폴레 등 테이크아웃 중심 프랜차이즈가 이 같은 매출 증가세를 주도했다고 분석한다. 소비자들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외식 비용을 아끼기 위해 좌석이 있는 개인 레스토랑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테이크아웃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하고 있어서다. 전미레스토랑협회는 지난해 패스트푸드 업체의 매출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같은 증가율은 자영업자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두 배 수준이다.

이들 자영업자는 인건비 상승에 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미레스토랑협회 분석에 따르면 레스토랑은 매출 100만 달러당 12명의 직원이 필요한 반면 식료품, 잡화, 의류 매장에서는 약 3명의 직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WSJ는 개인 레스토랑이 우버 혹은 아마존의 배송 서비스 등과 같은 초단기 근로 형태의 긱 이코노미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업계 의견도 전했다. 식당 직원들이 언제든지 관둘 수 있는 근로 환경이 조성되면서 인건비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건설비 상승에 제조업체 공장 건설도 중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건설 붐이 일었지만 급격한 건설 비용 상승과 자재 수급난으로 공장 건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파나소닉은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건설지로 오클라호마주를 주목했지만 지난해 말 더 이상 이곳이 후보군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파나소닉 관계자들은 캔자스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에 투입하는 자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 다른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역시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 2곳을 지으려던 계획을 미뤘고, 인텔은 200억 달러 규모의 오하이오 내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 일정을 늦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재비 상승 등으로 공장을 짓는 비용이 늘어난 탓이다. 미국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산업용 건축물 건설과 관련된 비용은 3년 전보다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이 당초 예상액을 80억 달러 이상 초과할 것이라고 지난해 3월 보도했다.

한편 미국 중앙은행(Fed)이 2022년 3월부터 작년 7월까지 11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미국 기준금리는 최근 20년 사이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그 영향 속에 지난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1% 상승해 Fed 목표인 2%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소비자물가가 3년 전 대비 17% 높은 수준이어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급여 상승의 체감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