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과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사진=한미약품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과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사진=한미약품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진행형인 기업들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롯데알미늄에 이어 한미사이언스, 금호석유화학에서 경영권 분쟁 관련 제안을 내놓고 있어 재벌들의 집안싸움이 표 대결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2015년 롯데그룹 ‘형제의 난’을 일으켰던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지난 2월 23일 롯데알미늄의 주총을 앞두고 물적분할에 반대를 표명하며 주주제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알미늄 지분 22.84%를 보유한 광윤사의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다.

앞서 롯데알미늄은 지난해 12월 28일 특정 사업 부문을 단순·물적분할 방식으로 분할해 (가칭)롯데알미늄비엠주식회사, (가칭)롯데알미늄피엠주식회사를 신설하겠다고 공시하고 이를 주총 안건으로 상정했다.

신 전 부회장은 물적분할로 기존 주주들의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정관상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포함해달라고 요구했고, 롯데알미늄은 그의 주주제안을 받아들여 ‘정관 변경의 건’을 이번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하지만 신 부회장의 제안은 부결됐고 분할 안건은 주총에서 찬성률 77%로 통과됐다.

신 전 부회장은 2016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난 뒤 올해까지 매년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자신의 이사직 복귀안과 신동빈 회장의 해임안을 제출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모녀 vs 장·차남, 법정 간 ‘한미-OCI 통합’ 갈등

한미약품그룹에서는 ‘모자의 난’이 진행 중이다. 창업자 고(故) 임성기 회장의 부인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이 주도한 OCI그룹과의 통합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장·차남과 모녀 간 경영권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앞서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는 OCI홀딩스와 통합을 추진하면서 2400억원 규모의 보통주 643만 주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OCI홀딩스에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통합을 통해 한미약품이 길리어드사이언스와 같은 글로벌 빅파마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통합에 반대하는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는 1월 17일 수원지방법원에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가처분 인용 여부는 3월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총 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한미약품그룹·OCI그룹의 통합 작업은 차질을 빚게 된다.

두 형제는 2월 8일 경영에 복귀하겠다며 자신들을 포함한 6명을 한미사이언스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해달라고 제안했다.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대표에 임종윤 사장이, 자회사 한미약품 대표에 임종훈 대표가 각자 대표이사로 올라 경영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두 형제는 창업주 별세 이후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실장의 밀실 경영 탓에 한미약품의 기업가치가 훼손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주주제안의 목적은 단순 이사회 진입이 아니라 선대회장의 뜻에 따라 지주사와 자회사의 각자 대표로 한미그룹을 경영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약품그룹 측은 “장남 임종윤 사장이 경영권 분쟁 상황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본인의 다중 채무를 해결하는 동시에, 그룹을 본인의 개인 기업에 활용하려는 사익 추구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형제가 주총 표 대결에서 승리하면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쥘 수 있어 그룹 간 통합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양측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주주제안한 안건은 주총에 자동으로 상정되기 때문에 합산 지분이 기준을 초과하는 임종윤·종훈 형제의 제안은 주총에서 표 대결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과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 사진=금호석유화학·한국경제신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과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 사진=금호석유화학·한국경제신문
행동주의 펀드와 돌아온 금호家 박철완

금호석유화학에선 ‘조카의 난’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삼촌인 박찬구 회장과의 두 차례 경영권 분쟁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박철완 전 상무가 올해는 행동주의 펀드와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손잡고 전체 지분의 18%에 달하는 자사주 전량을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표 대결을 예고한 바 있다.

개인 최대주주인 박 전 상무는 2월 15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차파트너스에 자신이 가진 금호석유화학 지분의 권리를 위임했으며, 공동보유자로서 특별관계가 형성됐다고 공시했다. 차파트너스는 3월 22일 개최 예정인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자사주 소각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 등을 주주제안했다.

박 전 상무의 주주제안권을 위임받은 차파트너스 측은 “18.4%에 달하는 자사주가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제3자에게 처분 또는 매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호석화가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다”며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주주가치 제고와 함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선제 대응에 나섰다. 3월 6일 이사회를 열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262만4417만 주를 3개년에 걸쳐 소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18.4%)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자사주 87만5000주는 3월 20일 우선 소각할 예정이다. 3월 5일 종가 기준으로 1291억원 규모다. 전체 분할 소각 규모는 약 38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유화학은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소각 목적 자사주도 추가 취득한다. 금호석유화학은 별도 당기순이익의 16.5%에 해당하는 총 5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3월 13일부터 향후 6개월간 취득할 계획이다.

매입이 완료되면 이사회 결의와 공시를 거쳐 전량 소각할 예정이다. 총 765억원 규모의 현금배당도 실시한다. 이번 배당안은 보통주 주당 2900원, 우선주 주당 2950원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배당성향은 25.2% 수준이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석유화학 시황 침체에도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과 조현식 전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과 조현식 전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사모펀드 공세 막아낸 조현범, 분쟁 불씨 여전

한국앤컴퍼니는 3월 28일 주총을 앞두고 ‘형제의 난’ 재점화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고문과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차녀 조희원 씨 등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한국앤컴퍼니 지분 공개매수를 추진했으나 결국 차남인 조현범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아버지 조양래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신청으로 시작된 남매간 분쟁의 불씨는 여전하다. 올해 주총에선 조현범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월 조 회장이 현재 한국앤컴퍼니,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이사와 한국프리시즌웍스 기타비상무이사 등을 겸직하고 있는 점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올해 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추진하지 말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