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적 토론 사라진 한국의 공론장 [EDITOR's LETTER]
프랑스 화가 프라고나르의 ‘그네’란 그림을 아십니까? 볼이 살구빛으로 물든 여인이 치마를 입고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젊은 청년이 숨어서 여인과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뒤에서 그네를 밀고 있는 사람은 나이든 남편. 앞에 놓인 큐피드 상은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듯 입에 손을 올리고 있습니다. 막장 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려낸 이 그림은 18세기 세계 예술의 중심지를 파리로 옮겨놓은 로코코 양식의 대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곳은 다름 아닌 살롱이었습니다.

17세기까지 프랑스는 이탈리아 문화를 추종했습니다. 루이14세의 절대왕정은 고전주의를 기반으로 사회의 미적 취향도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가 1648년 설립된 예술 아카데미입니다. 아카데미는 고전주의 대표화가로 불리는 푸생과 루벤스의 그림을 미적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푸생은 구조와 선 등을 중시하며 규격화되고 염격한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그림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당시 예술에 대한 담론을 주도한 것은 아카데미였지만 유일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에는 살롱 문화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곳곳에 모여 문화와 예술에 대한 토론을 했고, 고전주의에 대한 반론도 싹텄습니다. 비평가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논쟁의 결과는 ‘취향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쟁 이후 프랑스 회화는 이탈리아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익숙한 특유의 분위기를 갖게 됩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는 부세, 와토, 프라고나르 등이지요. 이 변화는 주류의 담론장인 아카데미가 아닌 또 다른 공간인 살롱에서 이뤄졌고, 재야의 비평가들은 변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담론 공간이 문화예술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담론의 공간은 사회 변화를 이끈 아이디어를 분출케 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도 그와 맥을 같이합니다. ‘비판적 이성을 갖춘 개인들이 공중으로 결집된 영역’인 공론장이 민주주의 근간을 이룬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 발전에서 공론장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때로는 국회였고, 어떤 때는 광장이었습니다. TV도 인터넷 게시판도 SNS도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 한국 공론장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철학자는 “현재의 한국 공론장은 반봉건화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특정 영역에서는 다른 의견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공론장 자체가 붕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교류하는 온라인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면 건전한 비판, 건설적 대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비판적 이성을 가진 개인은 사라지고 일방적 주장만 흡수합니다. 총선을 앞두고 마구 뿌려지는 공약과 심판이라는 구호만 남겨진 것은 담론을 상실한 앙상한 사회의 단면입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이번 주 미분양을 다뤘습니다. 6만 채가 넘는 미분양, 이 가운데 미래에 유망한 단지는 있는지, 과거 사례를 들여다보며 시사점을 얻으려 했습니다. 미분양 문제만 해도 공론장에서 충분히 다뤄질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이 미분양 주택을 공공기관이 비싼 값에 사주려다 ‘모럴 해저드’를 불러일으킨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고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미분양 대책을 저출산 대책과 접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싼값에 사들여 신혼부부 등에게 공급하자는 것입니다. 재원 마련은 정부가 낮은 금리로 장기 채권을 발행하고, 국민연금이 이 채권을 사들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쌓여가는 국민연금을 활용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지요. 이런 논의를 한 것도 20년 전입니다. 이후 오랜 기간 한국은 어떠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시도도 없이 문제란 말만 남발하며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한국은 저출산뿐 아니라 지방소멸, 양극화, 제조업 경쟁력 하락, 국민연금 고갈, 가계부채, 계층 상승 기회 박탈 등 지혜를 한곳에 모아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총선이 끝나면 새로운 공론장에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