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천억대 현금흐름…긴박한 경영상 필요로 볼 수 없어”

[법알못 판례 읽기]
효성첨단소재 전주 탄소섬유 공장. 사진=한국경제신문
효성첨단소재 전주 탄소섬유 공장. 사진=한국경제신문
효성그룹 계열인 화학섬유 제조업체 효성첨단소재가 경주공장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2심에서도 유지됐다.

법원은 이 회사가 정리해고를 단행할 정도로 경영상 긴박한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노동계에선 효성첨단소재를 상대로 정리해고 결정을 철회하고 근로자들을 일터에 복귀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5차례 희망퇴직에도 응하지 않자 정리해고

대전고등법원 제2행정부(김병식 부장판사)는 경주공장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한 것이 부당하다는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효성첨단소재가 제기한 항소를 2024년 3월 12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효성첨단소재가 정리해고를 할 정도로 당시 경영상 위기상황에 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효성첨단소재가 2021년 1월 경주공장 기능직 근로자 26명에게 해고를 통보하면서 불거졌다. 이 근로자들은 효성첨단소재가 효성의 산업자재 사업부였던 2018년 3월 강선보강재 제조부문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비롯됐다.

이 회사는 기존 언양공장의 강선보강재 생산시설을 축소해 경주공장으로 옮기면서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 기존 언양공장 강선보강재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던 인원 중 142명이 희망퇴직과 전출로 일터를 떠났다. 경주공장에는 100명만 남겼다.

그럼에도 효성첨단소재는 공장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2020년 경주공장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 후 5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에 응하지 않은 근로자들을 정리해고 방식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해고된 근로자 중 19명이 “회사의 이 같은 처분은 부당해고일 뿐만 아니라 불이익을 주는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경북지노위는 근로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효성첨단소재가 부당한 해고를 했다고 판정했다. 다만 정리해고가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경북지노위는 “해고가 필요할 정도로 경영상의 긴박함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회사가 해고를 피하려는 노력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중노위 또한 똑같은 판정을 내렸다. 효성첨단소재는 이에 불복해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法 “정리해고할 만한 위기 없었다”

법원에서도 근로자들의 승리가 이어졌다. 1심은 “해고를 할 만큼 경영상 위기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효성첨단소재가 영업을 통해 꾸준히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을 주요 판단근거로 삼았다.

이 회사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18년 약 900억원, 2019년 약 1200억원, 2020년 약 31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20년의 경우엔 효성에서 분할했던 2018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순이익(68억원)을 내는 데도 성공했다.

1심 재판부는 “강선보강재 사업에서 원가경쟁을 극복하지 못해 적자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업의 매출은 회사 전체 매출에서 9%에 불과하다”며 “경주공장 매출 감소가 효성첨단소재 존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주공장을 폐쇄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도 희망퇴직 후 다시 정리해고로 근로자 26명을 추가로 감축할 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2심 결과도 같았다. 2심 재판부는 효성첨단소재가 해고 사태를 피하기 위한 노력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 회사가 울산공장과 전주공장에서 증설 투자를 하고 있었음에도 경주공장 근로자들을 이곳으로 전환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댔다. 당시 울산공장에선 기능직 근로자의 정년퇴직으로 인한 빈자리를 하청업체 근로자와 계약직 근로자로 채웠다.

항소심 재판부는 “경주공장이 본사나 다른 공장들로부터 분리 독립돼 있지만 공장 간 직원들의 전환배치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다”며 “재무·회계가 분리돼 있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경주공장의 수지만으로 정리해고가 필요할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황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계에선 효성첨단소재가 해고한 근로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울산지부는 이번 항소심 판결 후 기자회견을 열어 “효성첨단소재는 부당해고 판결을 인정하고 정리해고한 근로자들을 즉각 근무현장으로 복귀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고당한 근로자들은 현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복직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돋보기]
“연속 적자 안 냈어도 정리해고 가능” 판결도

효성첨단소재와 달리 강관 제조사인 넥스틸은 과거 단행한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는 법원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연속해서 영업적자를 내지 않았음에도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 등을 이유로 정리해고가 필요할 정도로 경영상 긴박한 상태였음을 인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22년 6월 9일 넥스틸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현재 파기환송심을 위한 막바지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넥스틸은 2015년 150명(임원 7명 포함)의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공고했다. 이에 따라 진행된 희망퇴직으로 137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 회사는 그 이후 근로자 3명을 추가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했는데 당사자들이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중노위는 근로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넥스틸의 정리해고를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넥스틸이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 싸움이 본격화했다.

넥스틸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선 패소했다. 정리해고 결정 당시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이 회사는 2012년 157억원, 2013년 178억원, 2014년 502억원, 2015년 12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강관업계 전반이 경영 위기에 몰려 동종 업계 대표 업체도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한 점 △매출액·영업이익 등이 2014년에 비해 급감했고 향후 업황 회복이 예상되지 않은 점 △자기자본 대비 차입금 비율이 2014년 87%에서 2015년 224%로 급격히 상승한 점 △노동자들도 노동위 심문 회의에서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수긍한 점 △반드시 지속적인 적자 누적 등이 있어야만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넥스틸의 손을 들어줬다.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넓게 해석했다는 평가다.

이 판결은 2014년 쌍용자동차 이후 8년 만에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한 판결로 주목받았다. 특히 적자를 내지 않았는데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대법원에선 오랫동안 ‘정리해고는 부당 해고’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정리해고 대상자가 소수(3명)인데도 적법하다고 인정한 것도 대법원의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대법원은 판결 당시 “남은 정리해고 인원이 적다고 해서 경영상 위기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2심의 경우엔 “이미 137명의 노동자를 감축했는데 또 인원을 추가 감축해야 할 만큼 경영상 위기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