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앤셀 지음│박세연 역│2만3000원MIT 교수 대런 아세모글루와 시카고대 교수 제임스 A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핵심 주장은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것이 지리·질병·문화가 아니라 제도와 정치라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옥스퍼드대 정치학자 벤 앤셀의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역시 ‘정치’를 문제의 중심에 둔다. 복지정책, 민주주의 등 사회 시스템은 물론 불평등, 경제성장 등 사회 현상에 정치가 핵심적 영향을 끼친다는 관점을 취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정치의 차이가 국가 간 차이를 만들어낸 사례를 살펴보자.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는 모두 ‘자원의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자원의 활용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노르웨이는 석유 자원을 신중하게 활용함으로써 1인당 25만 달러에 이르는 국부펀드를 구축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석유가 독재의 등장과 유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
카타르의 경우에는 지하자원으로 얻은 부를 월드컵 개최에 쏟아부었다. 이는 경제적 혜택을 누구에게 돌아가도록 결정하는지의 문제, 즉 분배의 정치에 관한 문제였다. 노르웨이는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수혜자가 되도록 제도를 구축한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소수가 이익을 독점했다.
4·10일 총선을 앞두고 정치의 열기로 뜨겁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뉘는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마이크의 볼륨은 더욱 커졌고 시계는 빨라졌다. 정치적 메시지가 쏟아지고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며 이슈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높아진 관심과 반대로 타협과 균형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는 자못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정치가 왜 필요할까’ 저자 벤 앤셀은 서른다섯의 나이로 옥스퍼드대 교수로 임용될 만큼 영미권에서 촉망받는 정치학자다. 최근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스티븐 호킹 등도 참여한 적 있는 BBC의 교양 프로그램 ‘리스 강의’에 출연했다.
·민주주의: 진정한 ‘국민의 뜻’과 같은 것은 없다
·평등: 평등한 권리를 허용하면 평등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연대: 우리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사회적 안전망을 원한다
·안전: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유를 희생하려 하지는 않는다
·번영: 단기적으로 우리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가난하게 만든다
이 다섯 가지 사안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개인 이익과 집단 목표 간의 불일치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덫’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다섯 가지 덫은 서로를 강화한다. 양극화된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심화하고, 허술한 사회적 안전망은 범죄율을 높이며, 통제를 벗어난 기후변화는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그렇다면 다섯 가지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정치의 역할에 있다. 정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는 필연적인 불일치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정치를 외면하거나 피해 달아날 수 없다”. 저자는 역사와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내며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기후위기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치가 그동안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앞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책의 구성 역시 위의 다섯 개 쟁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다섯 개의 부로 되어 있으며 개별 부는 ‘X는 무엇인가’, ‘X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덫)는 무엇인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형태다. 처음부터 읽어도 좋지만 관심에 따라 특정 소재부터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정치 이슈가 빠르게 소비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요즘, 나의 생활과 세상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만드는 정치를 고민하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두 공저자와 더불어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의 공저자 대니얼 지블랫이 추천했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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