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전경./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전경./연합뉴스
최근 국토교통부에서는 민간 임대차 시장에 기업형 장기 임대주택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주택임대시장은 60% 이상이 개인 간의 비제도권 전월세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주거불안에 노출돼 있고, 일반 전월세는 2~4년 내 비자발적 퇴거를 해야 하는 리스크에 시달린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고자 재무적으로 안정적인 기업을 참여시켜서 민간 주택임대 시장의 건전화를 꾀하겠다는 것이 기업형 장기 임대주택 제도의 취지이다. 기업형 장기 임대주택 제도는 과거 ‘뉴스테이’나 민간 장기임대주택 사업의 의무 임대 기간이 8년이었던 것에 비하여 20년으로 늘어났다. 세입자의 입장에선 최장 20년을 한 집에서 임대로 거주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다만 기업의 참여가 문제인데, 정부에서는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수익성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임대료 규제를 완화하고 합리적 수준의 세제 금융 지원을 한다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전세 사기나 갭투자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기존의 전세 제도를 기업의 힘을 빌려서 안전한 임대 제도로 바꾸어 보겠다는 의도라 하겠다. 그러면 이런 정책을 검토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신용도 낮고 자산도 적은 집주인에게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이라는 형식으로 맡기는 행위 자체를 정부에서는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임대 만기 후인 2~4년 후에 전세 시세가 떨어지는 경우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집값도 하락하여 최초 전세보증금 이하로 떨어지는, 이른바 ‘깡통 전세’ 상태가 되었다면 집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세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이른바 전세 사기가 되는 것이다. 전세 사기 중에서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전세금을 떼어먹을 목적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세 제도의 맹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2억원짜리 빌라를 사서 1억9000만원에 전세를 준 갭투자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본인의 돈은 100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1억원의 자금이 있다면 무려 열 채의 빌라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세가가 하락하면서 전세 시세가 1억 9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으로 내리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 명의 세입자만 이사를 간다고 하고, 다행히 후속 세입자가 들어온다고 하면 집주인은 1000만원만 마련하면 된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세입자들이 나간다고 하고, 그중 한두 개라도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집주인은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런 사람도 전세사기범 취급하는 것이고, 총 피해 금액은 19억원이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한 집당 전세보증금 1억9000만원 곱하기 열 채를 한 수치이다. 마치 19억원을 집주인이 받아서 다른 곳에 빼돌린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19억원은커녕 단돈 몇 만원도 다른 곳에 빼돌린 것은 아니다. 그 집을 사는 데 초기 투자금으로 쓴 것이고, 심지어는 기존에 전세가 끼어 있는 집을 사는 경우 전세보증금 자체를 만져본 적도 없는 것이다.

전세 사기에 연루된 갭투자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갭투자자가 전세사기범으로 몰릴 수 있는 전세 제도의 맹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보증금 집주인 대신 금융기관에? 실효성 없어이런 문제는 국토부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해법을 찾으려고 골머리를 싸맸던 것이다. 그 와중에 얼마 전에 나온 아이디어가 소위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세입자가 맡긴 보증금을 집주인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금융기관에 예치했다가 세입자가 퇴거를 원하면 언제든지 찾아서 돌려주도록 하는 제도라 하겠다.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환상적인 제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왜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까? 임대인, 즉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집을 전세로 주는 이유는 그 집을 살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게 되면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만으로 집을 살 수 있으니 전세를 끼고 사는 것이다.

만약에 에스크로 기관에 전세보증금을 맡길 만큼 충분한 자금이 있는 집주인이라면 처음부터 월세로 계약을 하지 전세로 계약하는 사람은 없다. 에스크로 기관에 전세보증금을 맡겨서 받는 이자보다 월세 수입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에서 주택임대 시장에 에스크로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에스크로 제도는 매매 시장에서 매수자의 자금이 매도자에게 안전하게 넘어가게 하는 장치이다.

에스크로 제도하에서는 매도자나 매수자가 직접 만날 이유도 없고 기회도 없다. 매수자가 집을 사려면 가격 흥정이 끝난 후에 일정 기간 내에 에스크로 계좌에 매수 전액을 입금해야 한다. 매수 자금이 입금되면 에스크로 회사에서는 그 집에 걸려 있는 세금을 먼저 납부하고, 은행 대출 잔금을 모두 갚고,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에스크로 수수료를 모두 공제한 후 남은 금액을 매도자의 계좌에 입금한다. 이게 에스크로 제도이고, 이 기간은 통상 60일 안에 모두 끝난다.

임대보증금을 금융기관에 임대 기간 동안 맡기는 것이 에스크로 제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선진국에서 실행하는 에스크로 제도를 우리나라에서도 도입하는 것처럼 호도한 것에 불과하다.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하는 기업형 장기 임대주택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선진국에서는 기업형 임대주택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경우는 전체 임대주택 중에서 65%가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개인이 임대주택 사업을 등록하는 제도가 없다. 민간 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통계가 없기 때문에 전체 임대주택 사업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미국, 임대시장 2/3가 기업형 임대주택그런데 통상 아파트는 임대주택이 대부분이고, 개인은 단독주택이나 타운홈 또는 콘도를 보유한다. 다시 말해 임대용 주거지가 아파트라는 뜻이다. 아파트의 경우 하나의 단지를 하나의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래미안 아파트나 GS자이 아파트라고 하면 삼성물산이나 GS건설에서 지은 아파트라는 뜻이 되지만 미국에서 삼성래미안 아파트라고 하면 삼성래미안이라는 임대주택 사업자가 소유한 단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자가 전체 임대 시장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 제도가 정착하게 되면 몇 가지 좋아지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임대인이 개인이 아니라 튼튼한 자본력을 가진 기업이기 때문에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임대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적다. 더구나 기업은 갭투자에 나설 이유도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전세사기 문제도 잡고 (투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갭투자도 없앨 수 있는 묘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 임대주택 시장은 정부나 임차인의 의사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에 응하는 임대인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이득이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진국에서 흔한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할 수 없을까? 우리나라와 상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자세히 알아보자.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