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세대 고객의 '즐길 거리'로 입소문…중국 쇼핑앱의 콘텐츠화
알리·테무·쉬인·샵사이다, 저가 앞세워 고객 확보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고르게 분포…진격의 중국 앱
가격은 충격적이다. 패딩은 3만원, 신발은 1만원, 뷰티소품은 5000원도 안 한다.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품질은 둘째 문제로 만들었다. 경기 불황에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made in china’는 더 이상 핸디캡으로 작용하지 않게 됐다.
하이엔드 시장은 하이엔드 시장대로, 저가 시장은 저가 시장대로 무방비 상태로 중국 플랫폼 기업들의 공세에 노출돼 있다. 소비재뿐 아니다. 이들은 온라인 셀러들까지 흡수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에 공식 입점했다. 햇반, 비비고 만두, 스팸도 알리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CJ제일제당의 선택으로 알리의 이미지까지 바뀌고 있다. 한번 쓰고 버리면 되는 공산품 위주의 판매에서 이제 먹거리까지 ‘믿고’ 살 수 있게 됐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남양유업 등도 앞다퉈 알리와 손을 잡고 있다.
먹거리 화장품은 공산품과 다르다. 소비자들이 신뢰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피부,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면에서 국내 대표기업들이 알리와 손을 잡은 것은 알리의 포지션을 한 단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알리는 왜 한국을 노리나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그룹의 해외직구 서비스 ‘알리익스프레스(알리)’가 한국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알리바바그룹은 한국 사업을 위해 향후 3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다.
구체적으로는 물류센터에 2억 달러(약 2600억원)를 투자해 연내 18만㎡(약 5만 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구축한다. 이 규모는 축구장 25개를 합친 면적이다. K-셀러와 소비자 보호 등에도 각각 1억 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한다.
물류센터는 토지 매입부터 준공까지 짧게 잡아도 2년이 걸리는 만큼 업계에서는 국내에 이미 마련된 물류센터를 임차해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로 물류센터가 많이 생겼다”며 “놀고 있는 곳이 많아서 그런 공장들을 빌려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리는 현재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옌타이에 한국 전용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 물류센터를 확보하게 되면 배송 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
아울러 알리는 얼마 전 자사 도매 사이트인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에서 한국어와 원화 지원도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중소 사업자를 위한 것으로, 200만 개 이상의 물품을 독점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 구매 후 국내에서 판매하려는 사업자가 주고객이다. 사이트 이용을 원하는 판매자는 홈페이지에 비즈니스 ID 등록을 해야 하며 판매자 인증을 거친 후 알리 측의 접근 승인이 나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알리가 이처럼 빠르게 국내 사업을 확장하려는 것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글로벌 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시장이 작아 돈이 안 될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커머스 테스트베드로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며 “한국에서 성공하면 일본, 동남아에서도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체를 먹으려고 한다. 한국은 이들의 계획에 아주 중요한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단계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거래액 기준)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37조원에서 지난해 227조원으로 65.7% 늘었다. △음식료품 △음식서비스 △여행·교통 △의복 △생활용품 등이 주된 사용처다.
한국은 이커머스 점유율도 높다. △빠른 인터넷 속도 △인구 밀집도 등의 영향이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전자상거래 비중이 20%대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 비중이 40%대에 달한다. 비식품으로 카테고리를 한정할 경우 온라인 거래 비중은 과반을 넘는다. 치고 나오는 테무·쉬인, 샵사이다까지여기에 또 다른 중국 앱인 테무, 쉬인까지 국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심지어 테무는 지난해 7월 한국에 진출해 1년이 안 됐지만 사용자 500만 명을 확보하며 국내 종합몰 순위 4위까지 올라섰다.
중국 앱은 저가를 앞세워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제품들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규정에 따라 KC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중국산 제품은 이러한 규제에 적용되지 않아 품질 개선에 대한 비용이 들지 않는다. 알리, 테무 등의 중국산 앱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저렴한 이유이기도 하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사용자는 지난해 2월 355만 명에서 올해 2월 818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테무 사용자도 같은 시기 52만 명에서 581만 명으로 증가했다. 쉬인은 14만 명에서 68만 명으로 늘었다.
특히 이들 3개 앱이 위협적인 이유는 30~50대 사용자까지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사용자의 절반은 30~50대로 집계됐다. 서비스 초기에는 저가와 네트워크 마케팅(추천인 코드 등) 전략으로 ‘10대들이 사용하는 앱’으로 불렸지만 사업을 확장하면서 더 많은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쉬인이 자라와 유니클로를 합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위협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쉬인이 정식으로 한국 진출을 한 게 아닌데도 영향력이 크다”며 “국내 소비자들 반응이 좋으니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들도 영입하고 있다. 한국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또 다른 패션앱 ‘샵사이다’까지 한국을 노리고 있다. 샵사이다는 ‘넥스트 쉬인’으로도 불리는 서비스로, 본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지만 생산 공장은 중국 광저우에 있어 대부분의 제품이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샵사이다는 지난해 7월 전 세계 최초로 서울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명한 패션 인플루언서들은 다 갔다”며 “국내에서 이미지를 잘 잡은 것 같다. 쉬인은 중국 앱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샵사이다는 그런 게 없이 ‘트렌디하다’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위기감 고조되는 국내 이커머스최근 들어서는 꾸준히 지적돼온 서비스도 개선하고 있다. 알리는 지난 3월 14일 빠르고 편리한 상담을 위해 고객센터 전화상담 서비스를 정식으로 개시했다. 전화상담을 원하는 고객들은 전화로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상담이 가능하다.
환불 서비스도 지원한다. 고객들은 상품 결제완료일로부터 90일 이내 별도의 증빙 없이 무조건 반품 및 100% 환불을 받을 수 있다. 가품이 의심되는 상품을 수령하거나 주문 상품이 분실 또는 파손되는 경우에는 100% 환불 신청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 국내 기업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격을 앞세워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데다가 서비스 개선, 물류센터 운영까지 시작할 경우 안방을 뺏기게 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물류센터를 확보해 배송까지 국내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개선된다면 경쟁이라는 말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결국 알리 천하에서 대부분의 이커머스는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세계의 SSG닷컴, 롯데쇼핑의 롯데온은 물론이며 1세대 오픈마켓인 G마켓과 11번가 등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들 모두 흑자를 내지 못하는 만큼 큰 폭의 투자 확대는 어려운 상황이다. SSG닷컴은 지난해 103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며 롯데온도 856억원의 적자를 써냈다. G마켓과 11번가도 각각 321억원, 115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신세계를 제치고 유통업계 1위로 올라선 쿠팡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알리가 신선식품으로 사업 카테고리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알리의 직배송 상품군은 아니지만 국내 셀러들이 판매하는 제품인 만큼 쿠팡과 직접 경쟁이 가능하다. 실제 반응도 긍정적이다. 얼마 전 알리가 진행한 타임세일에서 1000원에 판매한 계란, 바나나, 망고, 딸기, 한우 등의 품목들이 10초 만에 매진됐다.
특히 쿠팡에 입점되지 않은 CJ제일제당 상품의 경우 알리에서 ‘최저가’를 내세우면서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햇반 210g X 24개’ 상품을 알리에서 검색하면 1만9536원(3월 20일 기준)으로 나오지만 G마켓에서는 같은 상품을 2만80원에 판매 중이다.
다만 CJ제일제당 등 일부 브랜를 제외하면 아직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에도 버틸 시간이 있다. ‘코카콜라 제로 355mL 24개’의 알리 가격은 2만46원이었다. 쿠팡에서는 이보다 1845원 저렴한 1만9600원(무료배송)에 판매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마일드 50T’ 역시 알리에서는 1만원에 판매하고 있으나 쿠팡에서는 6870원에 구매 가능하다.
하지만 알리에서 판매량이 늘면 이 가격차도 줄어들 것이란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광고 수입이 생기는 네이버를 제외하고는 이커머스 업계가 자칫하면 전멸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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