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두부팡. 사진=두부
두부팡. 사진=두부
스타트업은 많다. 혁신 기술을 선보이거나 레드오션 시장에서 새로움을 창출해 세계를 놀라게 하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 중 이른바 ‘소셜 임팩트’ 영역에서 울림을 주는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두뇌개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두부(옛 두브레인)는 정부도 사회도 감당하지 못한 발달지연 아동의 학습 시장을 디지털 기술로 해결한다는 거창한 포부를 갖고 2017년 문을 열었다. 8년 차 두부의 미션은 한국의 달동네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장 중이다.

최예진 두부 대표는 “우리는 전 세계에 더 많은 발달이 느린 아동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가치가 있는 기업 두부를 찾았다. 느린 아이의 눈으로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중 학교 인근 관악구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발달장애 아이들의 학습에 눈을 떴다. 당시 학생이었던 최 대표의 앞에만 대기 600여명. 최 대표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기업의 기술로 사회적 문제를 혁신하고자 뜻이 맞는 당시 서울대 학생 김병재 공동창립자, 이우성 공동창립자와 함께 2017년 두브레인(현 두부)을 설립했다. 최 대표는 2020년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에 선정됐다. 사진=서범세 기자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중 학교 인근 관악구 달동네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발달장애 아이들의 학습에 눈을 떴다. 당시 학생이었던 최 대표의 앞에만 대기 600여명. 최 대표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기업의 기술로 사회적 문제를 혁신하고자 뜻이 맞는 당시 서울대 학생 김병재 공동창립자, 이우성 공동창립자와 함께 2017년 두브레인(현 두부)을 설립했다. 최 대표는 2020년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에 선정됐다. 사진=서범세 기자
“두부팡 해보셨어요?”

최예진 두부 대표의 눈이 반짝였다. 사진 촬영으로 혹사한 눈을 연신 비비며 인터뷰에 임하던 그였다. 최 대표는 자리를 옮겨 앉아 기자의 옆에 바싹 붙었다. 그는 “두부팡 이게 뭐냐 하면… 한번 해보실래요?”

일종의 같은 그림 맞추기였다. 배 모양을 빈칸에 맞추는 게 식은 죽 먹기였다. 단번에 성공하자 최 대표가 급히 손을 저었다. “아, 아뇨 세 살이라고 생각하고 틀려보세요.”

그러자 두부팡의 캐릭터가 아이에게 말하듯 귀여운 기계음을 냈다. ‘모양 잘봐!’ 배 그림이 한결 간단해졌다. 기자가 세 살 아이처럼 머뭇거리자 기계음은 응원의 메시지를 건넸다. ‘천천히 해보자!’ 오답을 낼수록 화면 속 그림은 간결하게, 더 간결하게 바뀌었다. 마지막에는 어떤 아이들도 풀 수 있을 만큼 난이도가 낮아졌다.

“지금 이게 발달지연 아동들에게 치료사가 1대1로 하는 일이거든요. 힌트를 주고 아이가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죠. 그런데 치료사가 전담으로 학습하면 매우 비싸요. 두부팡은 응용행동분석 전문가의 주요 치료 노하우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해 앱 안으로 옮긴 서비스예요.”

두부팡(옛 두브레인2)은 아동의 인지 능력에 기반한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모바일 앱이다. 게임처럼 즐겁게 문제를 풀면서 아이들의 두뇌 발달과 인지 능력을 효과적으로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보통의 교육용 앱은 나이에 따라 진행돼요.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 나이에 맞는 레벨은 맞지 않거든요. 두부팡은 30에서 40레벨까지 베이비스텝으로 단계를 쪼갰어요. 아이의 진행 속도에 따라서 알고리즘이 더 쉬운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해주죠.”

아이의 인지 능력에 따라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방식은 전담 치료사가 1대1로 보조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냈다. 이러한 서비스가 시중에 없다보니 치료사도 두부팡을 보조 교육기구로 사용하며 부모에게 권장하는 일이 잦았다. 두부가 지난 2월 진행한 인터뷰에서 40개월 아동의 양육자 A 씨는 감각통합 놀이 치료사로부터 두부팡 서비스를 추천받았다고 했다. A 씨는 “교육용 앱 화면을 터치할 때 화면이 바뀌는 등 반응을 무서워해서 치료 자체가 어려웠다”며 “두부팡 수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아이가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두부팡의 전작인 두브레인1은 실사용자들의 입소문을 타며 2023년 11월 기준 전 세계에서 앱 누적 다운로드 수 80만 건을 달성했다.

여기엔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의 추천이 큰 역할을 했다. 오 박사는 2021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오은영의 버킷리스트’에 두부 프로그램 리뷰 영상을 올렸다. 오 박사는 두부의 서비스를 “점수를 올리는 것에 집중한 콘텐츠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며 문제 해결에 필요한 인지 기능의 근간을 강화시켜주는 콘텐츠”라고 소개했다. 외로운 양육자의 마음으로“지난주에도 맘카페에 서비스 후기가 올라왔어요. 6세 아동을 둔 어머니인데 두부 서비스를 시작하고 4주 만에 아이가 말을 했다는 거예요. 아이가 말을 하는 게 너무 신기해서 그동안은 매일 울면서 잤는데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는 후기였어요.”

최 대표는 고객의 후기 하나하나를 캡처해 갤러리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의 실제 고객인 양육자, 즉 부모의 후기는 그에게 곧 반짝이는 아이디어와도 같았다.

“부모님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대화 안에 제일 큰 기회가 있거든요. 사용자에 집착해 사용자들이 만족하는 서비스, 사용자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성공의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 대표는 ‘우리 아이가 이런 고민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시간이 나는 대로 학부모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발달지연 아동을 둔 양육자의 반 이상이 우울증에 빠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한 어머니께서 본인은 인스타그램을 안 하신대요. 친구의 자녀들 영상이 올라오면 5살 아이인데 말을 너무 잘하거든요. 본인 아이는 7살인데 말을 못하니까 마음이 무너지는 거죠. 엄마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더 이상 뭐 하나라도 부담을 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발달지연 아동을 둔 양육자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정부가 발달재활서비스, 긴급돌봄서비스 등 발달지연 아동을 키우는 가정을 위한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진단 후 치료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의료시스템, 민관 협력은 아직 미흡한 편이다.

특히 발달지연이나 발달지연을 진단받고 난 후 치료센터를 방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발달지연은 상대적으로 경증으로 보고 발달지연 환자와 같은 치료센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치료까지 대기만 1년 이상 걸린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산다면 발달지연 아동의 교육 환경은 더 열악한 편이다.

문제는 발달지연 치료의 골든타임이 영유아 시기란 점이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2009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뇌가 재구조화되고 적응하는 능력은 생후 첫해에 가장 크고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 영유아 시기에 어떤 자극과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아동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두뇌 골든타임 영유아 시기…다양한 발달 속도 아동을 위한 홈케어 '두부'
하지만 한국의 경우 발달지연에 대한 정보와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다보니 치료 골든타임인 영유아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최 대표도 그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2세부터 6세까지 정말 적은 노력으로 큰 변화를 만들 수 있거든요. 제일 안타까운 게 늦게 오는 아이들이에요. 그럼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조기발견을 한 뒤에도 문제예요. 실상은 엄마가 다 알아서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정보가 많지 않으니까 근거가 없는 치료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거죠. 정말 훌륭한 부모님인데 우리에게 와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울먹여요. (발달지연 아동의 교육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거예요.”

영유아 발달 전문가들은 주 40시간 치료를 권고하는데 현실적으로 부모의 시간, 비용 부담 등으로 인해 평균 3~4시간 정도만 아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지역과 프로그램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사설 센터의 발달지연 치료비는 한 타임(60분)에 적게는 6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대로 형성돼 있다. 물론 훨씬 비싼 곳도 많다. 주 40시간이면 일주일에 최소 240만원에서 400만원이 드는 셈이다.

“헬스케어 산업은 질병의 사후적 진단 및 치료에서 선제적 예방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그런데 발달지연 아동은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죠. 저는 학습 비용을 부모들이 온전히 감당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어요. 정부가 제공하는 바우처 서비스 등이 있지만 좀 더 현실적으로 많은 보장이 필요하거든요.”

두부의 홈스쿨링이 가능한 커리큘럼 서비스 ‘두부홈즈(옛 위빌리홈즈)’도 부모의 짐을 하나라도 덜겠다는 목표하에 탄생했다. 두부홈즈는 전문 치료사와 1대1 매칭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홈 코칭 서비스로, 가정에서 바로 적용이 가능한 양육자 교육이다.

자폐 스펙트럼과 발달지연과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인 미국QABA® 협회의 인증을 받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문 치료사가 양육자에게 아이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양육자가 아이 맞춤형 치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칭 프로그램에 따라 양육자를 위한 맞춤형 목표와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양육자는 치료사의 가이드에 맞춰 아이에게 적합한 과제(치료)를 적용해보며 다음 미션 단계를 밟아나가는 식이다.

“‘아이가 방향 개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해당 양육자께서 ‘우리 아이가 방향 개념을 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라며 우셨어요. 엄마는 아이의 성장을 눈치채기 어렵잖아요. 기술은 데이터를 통해 아이의 성장을 찾아낼 수 있고요. 제품을 통해 발달지연 가족들에게 작은 성공(스몰 빅토리)을 만들어 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게 목표다. 많게는 주에 400만원이 드는 발달지연 학습과 달리 두부의 서비스는 두부팡 기준 1개월 구독료가 4만9000원, 두부홈즈는 1회 7만2000원이다. 느린 아이들을 이해하는 세상으로최 대표의 바람은 가정의 스몰 빅토리를 한국의 더 많은 가정에, 그리고 전 세계 더 많은 발달지연 가정에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회사 미션도 “우리는 전 세계에 더 많은 발달이 느린 아동들의 발달을 도울 것”이라고 정했다. 최근의 미국 출장도 그러한 일환에서 진행됐다.

“현지의 30년 차 치료사께서 두부 서비스를 느리게도 해보고 틀리기도 해보면서 ‘치료실 안에서 하는 원리가 그대로 구현된 앱은 처음’이라며 ‘미국에서도 한 번도 이런 앱을 본 적이 없다’고 좋아했어요. 미국의 시 정부 관계자에게 ‘이 제품은 우리 시에 꼭 필요한 제품’이라고 얘기해줘 큰 의미가 있는 출장이었어요.”

최 대표는 최근 사명을 두브레인에서 두부로 변경했다. 두부는 다양한 발달 속도로 자라는 아이들의 ‘두뇌를 부탁해’라는 초기 프로젝트의 앞 글자를 따왔다.

기존의 두브레인이 인지개발 콘텐츠에 초점을 맞췄다면 두부는 인지뿐 아니라 발달이 느린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포괄한다. 이번 브랜드 통합으로 기존 영유아 두뇌 발달 모바일 앱인 ‘두브레인2’의 명칭은 ‘두부팡’으로, 1대1 온라인 부모 코칭 클래스인 ‘위빌리홈즈’는 ‘두부홈즈’로 바꿨다.

“한국의 교육시장이 워낙 레드오션이잖아요. 아이를 더 똑똑하게 천재로 만드는 서비스는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아이의 발달이 느려 부모의 마음이 쿵할 때 생각나는 브랜드는 없어요. 두부는 다양한 발달 속도를 지닌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데 전념할 거예요. 언젠가는 각자의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이해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죠?”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