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락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35.5%였다. ‘싼 맛에 쓰는’ 저가 공세가 아니다. 먼지를 흡입한 뒤 물걸레로 바닥을 닦고, 이 걸레를 스스로 빨아 말리는 일까지 알아서 하는 ‘올인원 기술’이 무기였다.
가격도 비싸다. 로보락 올인원 제품은 최저 100만원을 넘나든다. 150만원 이상의 하이엔드급 로봇청소기 시장에선 점유율 80.5%를 기록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힌 것이다.
할인도 거의 없다. 어쩌다 한 번 이커머스 업체에서 할인판매를 하면 소비자들은 우루루 몰려가고 입고되자마자 품절되는 일이 다반사다. 매출 역시 지속 성장세다. 로보락은 지난해 한국 매출 2000억원을 달성했다. 2022년 대비 2배 성장한 수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신혼부부들 사이에서는 이미 ‘로봇청소기=로보락’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국내 가전 기업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올인원 로봇청소기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계는 기술 완성도 등을 이유로 ‘올인원 로봇청소기’ 출시를 미뤄왔다.
물걸레 청소와 먼지 흡입 등 두 가지 기능을 한 번에 할 경우 기존 제품보다 청소 성능이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내 가전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3D 센서, 라이다 등 자율주행 기술이 집약된 로봇청소기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보다 앞선다는 것은 편견”이라며 “한국 브랜드가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출시하면 AS나 디자인, 다른 가전과의 연결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방 덮친 중국의 ‘프리미엄’ 공세 로봇청소기뿐만이 아니다. 중국 기업의 ‘프리미엄’ 공세가 안방을 덮치고 있다. 그동안 중국산은 ‘싸게 사서 막 쓰다가 자주 바꾸는’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로봇청소기, TV, 와인냉장고 등 가격대가 높은 가전 시장에서도 중국산의 역습이 시작됐다.
그동안 한국 기업이 선도하는 시장 역시 위태롭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인 가전 기업은 LG전자도 월풀도 아닌 중국 기업 하이얼이었다. 하이얼의 지난해 실적은 3분기까지만 공개된 상태다.
3분기까지 벌어들인 누적 매출(1986억5730만 위안·36조7098억원)이 LG전자(H&A사업 부문)와 월풀의 한 해 매출을 압도한다. 증권가에서는 하이얼이 올해 48조원의 매출을 거둘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TV나 전자부품 사업 매출을 제외하더라도 가전에서만 40조원 넘게 벌어들이는 것이다.
물론 ‘하이얼’ 단일 브랜드로 거둔 성과는 아니다. 하이얼은 그동안 공격적인 M&A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사들이며 ‘가전 제국’을 이뤘다. 글로벌 기업을 흡수하면서 유럽과 북미 등 선진시장을 공략했고 저가부터 프리미엄 시장뿐만 아니라 B2B 등 진입이 어려운 시장까지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이얼은 지난 몇 년간 일본 산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 부문, 뉴질랜드 피셔&파이클, 이탈리아 캔디 같은 프리미엄 가전 업체를 줄줄이 사들였다.
거물급 업체들을 사들이면서 이들의 브랜드 이미지와 노하우를 흡수했고, 독립경영을 보장하며 경쟁력을 이어갔다. 하이얼은 3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유럽에서는 캔디 제품을 중심으로 매출이 18%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글로벌 경제 악화로 가전 시장 전체가 부진했으나 이후 스마트홈 시장점유율을 계속 높이며 안정적 영업이익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매출이 지속 상승 중이다. 단일 브랜드 기준으로는 LG전자의 매출이 세계 1위지만 ‘가전 제국’ 하이얼의 위협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폴더블폰 1위 삼성에서 화웨이로 교체된다 글로벌 TV시장에서는 이미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TV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18.6%로 1위를 기록했다. 중국 TCL과 하이센스가 각각 12.5%, 11.4%로 2, 3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11.2%로 4위였다.
물론 아직까지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격차는 여전하다. 지난해 2500달러(약 330만원) 이상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은 각각 60.5%, 19.1%였다. 한국 기업의 합산 점유율이 80%에 육박하는 상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퀀텀닷발광다이오드(QLED) 등 고부가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한국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글로벌 OLED 패널 시장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만큼 추격이 시간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서 이 점유율이 착시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 브랜드가 2500달러 넘은 가격에 판매하는 비슷한 사양의 제품을 중국 업체들은 그 이하의 가격에 팔고 있어 점유율이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디스플레이산업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국과 중국의 OLED 시장점유율(금액 기준)은 각각 95.9%와 3.2%로 격차가 90%포인트(p) 이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기준 한국과 중국 점유율은 73.8%, 25.6%로 격차가 좁혀졌다. 디스플레이 기술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폴더블시장에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는 통계도 나왔다. 지난해 4분기 삼성디스플레이(36%)가 중국 BOE(42%)에 시장점유율 1위를 내준 것(시장조사업체 DSCC 기준)이다.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흔들린 데 이어 스마트폰 시장 역시 위태롭다는 진단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포문을 연 폴더블폰 시장 1위가 화웨이로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폴더블폰 점유율 1위를 내준다는 전망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DSCC는 지난 3월 11일 보고서를 통해 1분기 화웨이의 글로벌 폴더블폰 시장점유율을 약 40%, 삼성전자는 10%대 후반으로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첫 폴더블폰을 선보인 이후 줄곧 시장 1위 자리를 유지했다. 2021년 하반기까지 시장점유율은 90%에 달했다. 하지만 2022년 상반기부터 화웨이, 샤오미, 아너, 오포 등 중국 업체 공세로 점유율은 작년 말 기준 60%까지 떨어졌다. 중국 내 애국주의 소비 심리를 공략한 현지 업체들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잡은 AI폰 시장에서도 중국의 도전이 거세다. 샤오미와 아너 등은 자체 개발한 LLM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삼성전자의 독주를 막고 나섰다. 샤오미14는 AI 회의 기록과 AI 사진 검색 기능을, 아너의 매직6프로는 시선 추적 기능을 갖췄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상황을 신규 폴더블폰 ‘갤럭시Z6시리즈’와 갤럭시 AI로 돌파할 계획이다. DSCC는 삼성전자 갤럭시 Z플립·폴드6가 출시될 경우 시장 우위를 다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기업이 삼성전자의 빈자리를 틈타 성장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다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추격으로 흔들리는 건 한국뿐만이 아니다. 중국 시장에서 군림하던 애플 역시 판매량이 급감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첫 6주 동안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은 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량은 64% 급증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직접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중국으로 향했다. 쿡 CEO는 중국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애플 공급망에 중국만큼 중요한 곳은 없다”고 말하며 “중국은 현재 매우 선진화된 제조능력과 숙련된 노동자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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