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성장 둔화세…'제2의 홍콩영화' 우려에 한류 위기론 확산
“세계 시장이 우리 가요나 영화, 드라마에 열광하는 시기가 올 거니까요.”
과거 회귀물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 진도준이 하는 말이지만 아무도 새겨듣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이 1999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콘텐츠가 주류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기대는 ‘공상과학 만화 같은 일’로 치부된다. 미래에서 온 주인공만 확신에 차 있다.
30년 전 이재현 CJ 회장은 미래를 내다본 사람처럼 “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과거로 회귀한 것은 아니지만 K-콘텐츠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전 세계인이 매년 두세 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주 한두 편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매일 한두 곡의 한국 음악을 듣는 시대가 온다고 믿었다.
설탕과 밀가루를 팔던 CJ는 1995년부터 ‘문화 기업’을 꿈꾸기시작했다. 경제 강국의 전제 조건은 문화 강국이라고 외치며 낙후된 대한민국 콘텐츠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CJ는 그렇게 29년간 한국 콘텐츠의 발전을 위해 그룹의 역량을 쏟아부었다. CJ는 그렇게 콘텐츠 강국의 기반을 닦았고 K-콘텐츠는 주류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다음 목표는 ‘이미지 변신’이다. 호기심에 경험하는 일회성 콘텐츠에 그치지 않도록 더 큰 힘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CJ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 회귀물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 진도준이 하는 말이지만 아무도 새겨듣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이 1999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콘텐츠가 주류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기대는 ‘공상과학 만화 같은 일’로 치부된다. 미래에서 온 주인공만 확신에 차 있다.
30년 전 이재현 CJ 회장은 미래를 내다본 사람처럼 “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과거로 회귀한 것은 아니지만 K-콘텐츠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전 세계인이 매년 두세 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주 한두 편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매일 한두 곡의 한국 음악을 듣는 시대가 온다고 믿었다.
설탕과 밀가루를 팔던 CJ는 1995년부터 ‘문화 기업’을 꿈꾸기시작했다. 경제 강국의 전제 조건은 문화 강국이라고 외치며 낙후된 대한민국 콘텐츠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CJ는 그렇게 29년간 한국 콘텐츠의 발전을 위해 그룹의 역량을 쏟아부었다. CJ는 그렇게 콘텐츠 강국의 기반을 닦았고 K-콘텐츠는 주류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다음 목표는 ‘이미지 변신’이다. 호기심에 경험하는 일회성 콘텐츠에 그치지 않도록 더 큰 힘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CJ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995년 CJ가 드림웍스 투자로 콘텐츠 사업을 시작한 지 약 30년이 지났다. 이제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의 콘텐츠를 믿고 보고, 믿고 듣는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BTS, 블랙핑크…. 영화, 가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K-콘텐츠의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다시 CJ가 나섰다. 한국 콘텐츠가 10년, 20년 후에도 인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전략을 짜겠다는 계획이다. 드림웍스부터 눈물의 여왕까지CJ는 K-콘텐츠가 할리우드와 같은 주류 시장에서 인정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CJ는 문화 산업의 성장가능성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1990년대부터 콘텐츠 투자를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CJ의 첫 투자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5월 1일 당시 제일제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합작회사 ‘드림웍스’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제일제당의 상무였던 이재현 회장과 이사였던 이미경 부회장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월트디즈니 영화사 대표인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 업계의 마술사라 불렸던 데이비드 게펜이 뭉쳐 ‘드림웍스SKG’를 설립하고, 총 투자금 10억 달러 가운데 30%의 지분을 투자받는다는 소식을 듣자 ‘기회’라고 판단했다.
미국으로 향해 협상한 결과 총 자본금 10억 달러 가운데 3억 달러를 투자해 2대 주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된 제일제당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판권을 보유하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식품회사인 제일제당이 영화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일부는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국내에는 영화 사전심의제도가 있을 정도로 문화 후진국에 가까웠다. 이 투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설령 이해했더라도 이 투자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제일제당은 드림웍스 투자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콘텐츠 사업을 확대하면서 차곡차곡 문화 콘텐츠 회사의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곧바로 제일제당은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1995년 종합영상소프트 회사 ‘제이콤’을 설립하고 홍콩의 거대 영화사 ‘골든하베스트’와 협력해 아시아 시장 도전에 나섰다.
같은 해 8월 제일제당 내에 ‘멀티미디어사업부’를 신설하고 영화 제작·수입·배급, 극장 사업, 음반 제작, 케이블TV, 게임 등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부는 이재현 상무와 이미경 이사가 직접 관리하며 챙겼다.
1996년에는 멀티미디어사업부를 확대 개편해 ‘CJ엔터테인먼트사업부’로 만들었다. 제일제당이라는 기업명에서 제조업과 식품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축약어인 ‘CJ’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시기다.
이후 CJ는 △음악 전문방송 엠넷 인수(1997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CGV 론칭(1998년) △종합엔터테인먼트채널 tvN 개국(2006년) △글로벌 음악 시상식 MAMA 개최(2009년) △CJ E&M(현 CJ ENM) 출범(2011년) △스튜디오드래곤 출범(2016년) △독립법인 티빙 출범(2020년) △CJ ENM 스튜디오스 신설(2022년) 등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펼치며 영향력을 키웠다.
콘텐츠 투자는 지금의 CJ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 이재현 회장은 “역사적으로 경제 강국의 전제 조건은 문화 강국”이라며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문화 상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J의 이 같은 노력은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가 인정받는 밑거름이 됐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은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수상했다. CJ ENM이 배급과 투자를 담당한 작품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할리우드에서 기생충을 홍보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아카데미 수상을 목표로 캠페인 전략까지 직접 챙겼다. 시상식 당시 이미경 부회장이 무대에 오를 때 많은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한 이 부회장의 공헌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장면이었다.
K-콘텐츠의 인기는 기생충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돌그룹 BTS·블랙핑크, 킹덤,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으로 이어졌고 달고나, 불닭볶음면 등 K-푸드에 대한 관심으로도 확대됐다. 2023년 7월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5년(2017~2021년)간 화장품, 음악, 방송 등 한류 밀접 품목의 수출이 급증하면서 한류의 경제적 효과가 생산유발액 기준 총 37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영국 컨설팅 업체 브랜드파이낸스가 발표한 글로벌 소프트파워 순위에서 한국은 193개국 중 15위를 기록하며 콘텐츠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 30년 잘 키워놨는데…‘여기서 끝’ 우려가하지만 최근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스트리밍 시장의 전반적 침체가 K-콘텐츠의 질주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한류’가 시작된 지 20년 만의 변화다.
업계에서는 한류의 시작을 2003년 KBS 드라마 ‘겨울연가’로 보고 있다. 일본 NHK 위성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판단이다. 이후 한류는 동남아로 확대됐고 최근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류로 자리 잡았다.
지난 2월 26일 블룸버그통신은 “할리우드의 스트리밍 불황이 아시아의 TV 수도 한국을 감염시켰다”고 전하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콘텐츠 제작 비용은 늘어나고 있지만 TV 실시간 시청률 하락으로 광고 매출은 줄어들면서 엔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글로벌 히트한 K-콘텐츠 열풍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과 같은 대형 지식재산(IP)은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종속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IP 확보 없이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OTT의 제작 하청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나오고 있다”며 “일례로 토종 OTT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넷플릭스의 한국법인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만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K팝도 마찬가지다. 관세청 기준 지난해 K팝 실물 앨범 수출액은 2억9023만 달러(약 3800억원)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써냈지만 중국시장에서 점유율이 급감했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보이지 않는 규제, 중국 부동산발 경기침체 등을 주요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핵심 동남아시아 지역의 K팝 수출액 감소도 두드러진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K팝을 대체할 만한 현지 아이돌의 등장”을 원인으로 지적하며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의 수출 부진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판단된다”고 우려했다. 실제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어 가사를 삽입한 현지 아이돌의 노래가 인기를 얻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월 14일 현대차증권은 ‘K-POP 1분기 미리 보기: 2분기도 쉽지 않은 성장 여건’ 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 엔터 4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역신장하고 2분기 영업이익 성장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현용 연구원은 “1분기 K팝 음반 판매량은 2075만 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하고 15개 분기 만에 시장 역신장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역시 지난해 “글로벌 K팝 아티스트는 있지만 걸출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아직 없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산업적 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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