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미지. 사진=챗GPT
AI 이미지. 사진=챗GPT
인공지능(AI)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2월 초 오픈AI가 영상편집 도구인 ‘소라(Sora)’를 통해 텍스트 몇 줄로 1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내 영상업계를 발칵 뒤집은 데 이어 음악시장에서도 AI로 인한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유명 작곡가 김형석 아트럼팩토리 대표는 지난 1일 자신의 SNS에 “최근 모 기관의 의뢰로 작곡 공모 심사를 했다. 1위로 뽑힌 곡이 제법 수작이었으나 주최 측으로부터 오늘 AI를 사용해 만든 곡이란 통보를 받았다”고 썼다.

김형석 대표는 “이걸 상을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라며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나”하며 탄식했다. 자조가 섞인 웃음 메시지도 남겼다.

앞서 가수 딘딘도 MBC에브리원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에서 “AI가 작곡도 한다. 탑 작곡가가 썼다고 하고 넘겨도 아무도 모르는 수준이다”라며 위기감을 언급했다.
작곡가 김형석 X 갈무리. 사진=X
작곡가 김형석 X 갈무리. 사진=X
달라진 미래 예측 AI의 일자리 충격은 계속되고 있다. 앞서 다수의 전문가는 AI에 무너지지 않은 인간의 일자리로 ‘창의성’을 주목했다. 컴퓨터와 로봇 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과 직무가 기계로 대체된다고 해도 인간의 창의성만은 살아남을 것이란 발상이었다.

직업 전문가들은 기계는 반복적이거나 패턴화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람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게 AI 시대 기계와 인간의 역할 분담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고용정보원은 ‘2030 미래 직업 세계 연구’를 펴내며 “창의력과 감성적 특성이 중요한 분야의 일은 현시점에서는 AI로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를 냈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기술로 인해 30년 안에 현재 사람의 일자리의 50%를 대체할 것이라는 질문에 76.8%가 동의했으나 인간의 감성, 창의력, 비판력이 요구되는 일은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85.2%였다.

불과 8년 만에 인간의 예측은 틀어졌다. 지난 2월 중순 오픈AI의 창업자 샘 올트먼이 공개한 영상은 영상업계에 속한 직업인은 물론 창작자들을 비관에 빠뜨렸다. 호주의 브랜딩 업체 팅커벨의 아트 책임자 마커스 번은 현지 매체를 통해 “소라는 분명히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으며 마치 AI가 몇 달마다 양자 도약을 하고 창의적인 산업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테크 저널리스트인 닐 휴즈는 “할리우드 작가 파업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며 “이제 많은 이들이 ‘소라’가 장기적으로 비디오그래퍼, 감독, 영화 제작자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많은 창작자가 소라의 1분짜리 비디오 생성에 흥분하고 있지만 앞으로 몇 분 안에 최대 1~2시간 길이의 영화, 광고, TV 쇼를 생성하는 AI의 시대를 만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을 재구성하는 콘텐츠 창작의 지각 변동이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며 “소라는 AI가 모든 것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의사, 법조인, 교사, 공무원, 연예인 등 전문가, 고위직, 예술가 등도 ‘AI’가 촉발한 실업 공포에서 예외는 아니란 주장이 나온다. AI의 도장깨기가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인플루언서·연예인들도 AI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동안은 사각지대였다. 수많은 ‘AI 스타’가 등장했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AI는 연예인을 대체할 수 없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AI 커버’가 화제다. AI를 사용해 기존 노래의 보컬을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바꾸는 작업이다. 예컨대 가수 태연의 노래를 BTS 정국, 백예린, 아이유가 부른 것처럼 AI로 바꾸는 것인데 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저작권 논쟁도 한창이다.
유튜브에서 가수들의 'AI 커버'를 검색하면 가수들의 목소리로 덧입힌 곡을 만날 수 있다. 저작권 논쟁이 있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유튜브에서 가수들의 'AI 커버'를 검색하면 가수들의 목소리로 덧입힌 곡을 만날 수 있다. 저작권 논쟁이 있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이미 샘 올트먼의 조력자이자 오픈AI의 공동 창업자인 그레그 브록만은 지난해 6월 방한 당시 “10년 전만 해도 AI가 육체노동 직업을 먼저 대체하고 시인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같은 창의적인 직업이 가장 마지막에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AI의 발전은 어떤 작업이 어렵고 쉬운지에 대한 이러한 가정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망을 잃기는 이르다.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직업은 많이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AI가 생산성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연간 약 1.5%에 달한다. 근로자의 필요성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골드만삭스 보고서는 미국 일자리의 약 3분의 2가 “AI에 의한 자동화에 노출되어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일자리가 대체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수에게 AI는 업무를 보조하는 일부가 될 것이며, 해고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경제성에서도 인간에게 승산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발표한 새로운 논문에 따르면, 인력의 자동화는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될 전망이다.

MIT 연구원들은 노동시장에서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한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들은 AI가 오늘날 미국 경제(농업 제외)에서 노동자 임금의 1.6%를 차지하는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지만, 그 임금의 23%(전체 경제의 0.4%)만이 노동자보다 로봇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머지는 여전히 인간의 고용비가 더 저렴하다는 뜻이다.

연구의 수석 저자인 닐 톰슨은 타임지에 “다가오는 변화가 있지만 그것에 적응할 시간도 있다”며 “모든 것이 즉시 혼란에 빠질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I를 도구로…지속가능성의 핵심 다만, 향후 10년간 AI 붐이 지속된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AI를 마스터하는 것이 경력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전략이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채용정보 사이트 링크드인에 따르면 생성 AI의 급증으로 인해 2021년 7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전 세계 AI 관련 채용 공고가 두 배로 늘어났다. AI 트레이너부터 편집자, 데이터 분석가, 윤리 담당자,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AI 효율성을 활용해 구축된 일자리는 급증하고 있다.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군도 AI를 겸하면 든든하다. 지난해 9월 미국 애리조나주의 메이요클리닉 병원은 AI 책임자(CIO)라는 최초의 일자리를 신설했다. 첫 임명자는 AI 전문 방사선 전문의인 바빅 파텔 박사. 그는 현재 초음파에서 숨겨진 데이터를 찾아 희귀 심장병 진단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AI 모델을 시험 중이다. 이 병원의 CEO인 리처드 그레이 박사는 “우리는 모든 부서, 모든 작업에서 데이터와 AI 기능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임원을 임명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3대 신용평가사인 에퀴팩스, 로펌(에버셰즈 서덜랜드), 언론사(뉴욕타임스) 등 고소득 전문직과 400개가 넘는 미국 연방 부처와 정부기관에서도 최고 AI 책임자를 찾았다.

음악가도 AI와의 겸업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한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오는 4월 5~6일 열리는 무대에는 거문고 명인과 AI의 조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서울문화재단에 따르면 첫 무대에 거문고 명인이자 ‘제1회 서울예술상’ 대상 수상자인 허윤정이 5~6일 ‘즉흥, 발현하다’를 선보인다. 기타리스트 겸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오정수, 바이올리니스트 나오키 키타 그리고 머신러닝 방식의 AI와의 즉흥 연주가 펼쳐진다.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그간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기획들을 전통장르의 새로운 전환 실험으로 구현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실험 무대, 창작 초연, 변화가 필요한 레퍼토리 등을 두루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