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몽블랑①
1920년대 몽블랑 하우스
사진 출처 : instagram  montblac
1920년대 몽블랑 하우스 사진 출처 : instagram montblac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거나 특별한 날 기념으로 만년필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필자가 처음 몽블랑 만년필을 접한 것은 박사 졸업 기념으로 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었다. 만년필이 종이 위로 펜촉이 움직일 때 나는 사각거리는 독특한 소리에 매력을 느끼곤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만년필로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기억이 있다. 얼마 전 박경리(‘토지’의 작가) 문학관을 방문했을 때 그녀가 사용했던 커다란 돋보기와 안경 그리고 몽블랑 만년필이 전시된 것은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대학의 강의에서도 학생들은 더 이상 필기구로 메모하지 않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 강의 내용을 정리한다. 만년필은 어느덧 찾아보기 힘든 물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만년필(萬年筆)’이라는 단어는 일본어 만넨히츠(万年筆)에서 기인한 것으로 ‘만년 동안 쓴다’는 의미가 있다. 1884년 일본 마루젠 회사에서 만년필을 처음 들여와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다.

몽블랑은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인 Mont Blanc, 즉 ‘흰 눈이 덮인 산(White Mountain)’이라는 의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은행가 알프레트 네헤미아스와 베를린 출신의 엔지니어인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이 여행을 계기로 몽블랑 역사는 시작되었다. 1906년 두 사람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만년필(Fountain Pen)’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개량된 만년필은 1883년 미국인 루이스 워터맨이 모세관 현상을 펜심에 적용해 발명했다고 한다.
몽블랑 닙(사진③) 
사진 출처 : Montblanc.com
몽블랑 닙(사진③) 사진 출처 : Montblanc.com
‘단순함’에서 아이디어 얻어 공방 열어

보험 중개인이었던 그는 잉크가 왈칵 쏟아져 나오던 기존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잉크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잉크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만년필의 특성에서 ‘파운틴(Fountain, 분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미국에서 개량된 만년필이 유행했다. 1906년 네헤미아스와 에버슈타인은 베를린에 ‘짐플리치시무스 만년필(Simplicissimus Füllhalter)’이라는 작은 공방을 열었다. 짐플리치시는 영어의 ‘심플리스트(Simplest)’와 비슷한 의미이고, 만년필 디자인의 단순함(잉크통이 펜 속에 내장되어 있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방 이름에 사용했다고 한다.

네헤미아스와 에버슈타인은 본격적인 만년필 제조를 위해 금전적으로 지원해 줄 투자자를 원했다. 이때 네헤미아스의 지인이 클라우스 요하네스 포스를 소개해줬다. 그는 만년필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고 이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1908년 이 세 사람은 함부르크 지역에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 ‘몽블랑’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몽블랑의 캡(Cap, 만년필의 뚜껑)의 끝 부분은 알프스산맥의 눈 덮인 정상을 연상시키는 흰색으로 되어 있었다.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가 몽블랑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 유래는 클라우스 요하네스 포스의 사촌 때문이다. 그는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인 몽블랑을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가 만든 만년필의 고품질의 제품과 연결했다.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는 몽블랑을 제품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는 대부분의 필기구에 ‘몽블랑’이란 상품명을 넣기 시작했다. 1913년에는 장엄한 산맥의 눈 덮인 빙하 여섯 개를 상징하는 여섯 개 꼭짓점을 지닌 하얀 별은 회사의 상표가 되었고, 이를 ‘몽블랑 스타(Montblanc Star·사진②)’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했다.
몽블랑 스타(사진②)
사진  출처; instagram  montblac
몽블랑 스타(사진②) 사진 출처; instagram montblac
엔지니어 출신인 에버슈타인은 만년필 작업을 관리했고, 은행가였던 네헤미아스는 영업 및 매출 관리를 맡을 뿐만 아니라 유럽 시장으로 수출 계약을 담당했다. 문구 사업에 경험이 많았던 클라우스 요하네스 포스는 전반적인 회사 운영과 독일 내 매출을 관리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9) 때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는 원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1914년부터 1년 동안 만년필 생산을 중단했다. 전쟁 기간 독일 정부를 위해 군수물자를 생산해야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식 후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는 공장을 재가동 할 수 있었고, 고품질의 만년필은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고품질 만년필 인기 얻어 전 유럽에 매장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사진④)
사진 출처 : Montblanc.com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사진④) 사진 출처 : Montblanc.com
1919년 이러한 성공으로 함부르크에 몽블랑 제품을 전용으로 판매하는 부티크(Boutique)를 열었다. 이어 베를린, 라이프치히, 하노버, 브레멘 등 독일의 주요 도시에 전문점을 열었고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유럽 지역에 몽블랑 전문점을 열었다.

같은 해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는 엔지니어인 에른스트 뢰슬러를 영입했다. 그는 1921년 생산 책임자가 되었다.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는 뢰슬러의 추천으로 닙(Nib, 만년필의 펜촉·사진③) 제조공장을 인수했고 자체적으로 생산했다. 물론 닙의 디테일과 핀의 모양은 미국의 선구자들을 벤치마킹했으며 1924년 회사의 독자 기술로 18K골드(Gold)와 플래티넘(Platinum, 백금)을 사용해 투 컬러(Two-Color)로 만들어진 닙을 적용한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사진④)’ 만년필을 출시했다.

이와 함께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는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이스터스튁은 프리미엄 만년필 시장에서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큰 인기를 얻었고 몽블랑의 가치를 드높였다. 독일어로 걸작을 뜻하는 마이스터스튁은 몽블랑 컬렉션에서 가장 유명한 필기구이다. 마이스터스튁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있었고 몽블랑에 저렴한 볼펜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료 참고: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B MONT BLANC
몽블랑 홈페이지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