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승계의 시간, 분쟁의 시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이 2015년 6월 호암상 시상식 후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수상자 축하 저녁 만찬에 참석하는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이 2015년 6월 호암상 시상식 후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수상자 축하 저녁 만찬에 참석하는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의 상속세율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최고세율은 50%에 달해 OECD 회원국 중 55%인 일본에 이어 2위다.

심지어 최대주주 할증을 더하면 60%에 이른다. ‘상속세 폭탄’에 한국 기업들은 쉽사리 경영 승계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오너일가’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요 회사 지분을 팔거나 자금 확보가 어려우면 승계를 포기하기도 한다.

밀폐용기 제조회사 ‘락앤락’을 맨손으로 일군 김준일 회장은 2017년 회사를 매각한다고 돌연 발표했다.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 지분 전량 3496만1267주를 6293억원에 팔았다. 매각 사유로 일각에선 상속세 폭탄을 꼽았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전혀 아니다”라고 밝혔으나, 락앤락 매각은 높은 상속세율과 관련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삼성가도 상속세 납부를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1월 삼성 총수일가 세 모녀는 주요 계열사 지분매각에 나섰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은 상속세 2조80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 2조1900억원어치(2982만9183주)를 매도했다.

삼성 일가가 내야 하는 상속세는 총 12조원 규모다. 업계에 따르면 홍 전 관장은 상속세로 약 3조1000억원,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각각 2조6000억원과 2조4000억원을 부담한다. 다음 차례인 이재용 회장이 내야 할 상속세는 총 2조9000억원이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게임 회사 ‘넥슨’의 김정주 전 회장 유족들도 가업 승계를 위한 대가를 치렀다. 그룹 지주사 NXC 지분의 29.29%(85만1968주·4조7000억원 규모)를 정부에 물납했다. 기획재정부는 물납으로 NXC 2대주주가 됐다.

한미그룹 일가는 상속세로 인해 경영권 다툼까지 벌였다. 고(故) 임성기 회장 배우자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딸 임주현 한미그룹 사장은 OCI 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서다. 모녀는 통합과 함께 OCI그룹에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팔아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장남과 차남인 임종윤·임종훈 형제는 지난 3월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를 장악해 통합을 무산시켰다. 이후 가족 간의 싸움은 봉합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 회장은 3월 29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와 함께 그룹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입장문을 올렸다.

재계에선 상속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OECD 38개국 평균 상속세율은 27.1%다. OECD 국가 중 상속세 의무가 없는 15개국을 포함하면 평균 상속세율은 10%대로 떨어진다.

다만 '부의 대물림'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다. 편법을 사용한 재산·경영권 세습 사례가 더러 있어 재벌을 향한 시선이 마냥 곱지는 않은 탓이다. 이는 정부가 상속세를 개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빠르게 추진할 수 없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일찌감치 상속을 끝낸 신세계그룹은 2006년 이명희 회장이 “깜짝 놀랄 만큼의 세금을 내고 떳떳하게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정용진 부사장에게 법이 정한 규정대로 재산을 상속·증여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를 실행했다. 세금을 내고 상속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들이 이를 신선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은 한국 사회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윤소희 인턴기자 ys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