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3일 허영인 SPC 그룹 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연합뉴스
검찰은 3일 허영인 SPC 그룹 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연합뉴스
“현실 제빵왕 신화”
“바게트 종주국에서의 성공”
“2022년 해외 매출 6000억, 그룹 매출 7조8000억원 시대”

SPC그룹과 허영인 회장이 세운 이정표다. 한국 제빵업계 신화를 써온 허 회장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차남이라 회사를 물려받지 못한 그 삼립식품에 비해 초라하던 양산빵 브랜드 ‘샤니’로 시작해 1988년 처음 ‘파리바게뜨’ 문을 열었다.

1997년 친형이 경영하던 삼립식품이 부도를 내자 회사를 인수해 지금의 SPC그룹으로 키워낸 것도 그의 공이다. 빵 종주국인 유럽과 북미시장에 도전하며 해외로 활로를 넓혔고 올해는 이탈리아까지 사세를 넓힐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영 공백과 사법 리스크로 위기를 맞으면서 글로 경영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PC의 황재복 대표가 직원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지 약 한 달 만에 총수인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구속됐다. 올해 공격적으로 확장하던 글로벌 사업에 차질을 빚고 6000여 가맹점주들의 어려움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4차례 조사 불응 vs 조사 회피한 적 없어SPC그룹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직접고용 명령에 따라 자회사(PB파트너즈)를 설립해 제빵기사들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PB파트너즈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복수노조가 있다.

사측이 회사에 친화적인 한국노총을 지원하고 민주노총 노조원들을 탄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보다 온건하고 회사에 협조적인 식품노련을 지원해 민주노총 와해를 시도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지난 4월 2일 허 회장이 여러 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불출석했다며 그를 체포했다. 3월 18일과 19일, 21일 세 차례에 걸쳐 허 회장 측에 출석해 조사받으라고 연락했지만 나오지 않았으니 소환을 거부했다는 입장이다.

3월 25일 조사는 1시간 만에 마쳤고 4월 1일 다시 불렀지만 역시 출석하지 않았으니 ‘4차례 소환 불응’이어서 강제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반면 허 회장 측은 지시 사실도 없고 검찰 조사를 회피한 적도 없다는 입장을 냈다. 3월 3차례 소환통보가 가혹했고 허 회장이 검찰에 ‘25일 이후엔 조사에 응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의사를 전달했는데 중간에 검찰이 날짜를 지정할 때마다 ‘불응’이라고 카운트 하는 건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SPC그룹은 지난 3월 22일~24일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파스쿠찌’ 회장의 방한 일정이 잡혀 있고 도저히 미루기 어려워 25일 이후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3일 허영인 SPC 그룹 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연합뉴스
검찰은 3일 허영인 SPC 그룹 회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연합뉴스
SPC 측은 “4개월이 넘는 기간 출국금지 조치돼 있던 허 회장이 검찰에 빨리 조사를 하고 출국금지를 해제해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동안 한 번도 출석요구를 하지 않았다”며 “해외에서의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 국내에서 어렵게 잡은 협약식 일정을 앞둔 시점에 처음으로 출석 요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예고한 대로 3월 25일 검찰에 출석했지만 조사는 한 시간 만에 끝났다. 허 회장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입원을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4월 1일 허 회장의 재차 조사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병원 입원을 이유로 불출석하자 2일 병원에서 체포했다. 이어 5일 검찰에 구속됐다.

SPC는 “허 회장은 건강 상태가 호전되면 검찰에 출석하려 했고 이런 사정을 소상하게 검찰에 소명했다”며 “그러나 검찰이 허 회장의 입장이나 상태를 무시하고 무리한 체포영장을 집행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검찰의 반복된 출석 요구와 (허 회장이) 마치 출석에 불응하는 것처럼 여과 없이 언론에 모두 공개돼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이 있었다는 것이다.끊이지 않는 사법 수난
흔들리는 '제빵 제국'…허영인 회장 구속에 위기 맞은 SPC
SPC의 사법 수난은 처음이 아니다. 배임, 부당거래 등 여러 차례 불법 혐의를 받았지만 매번 무죄로 결론이 났다.

먼저 2018년 허영인 회장은 계열사 ‘파리크라상’ 상표권 지분을 아내에게 넘긴 뒤 수백억원대 사용료를 주도록 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2년간의 재판 끝에 2020년 1월 무죄를 선고받았고 같은 해 7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이후 허 회장은 2020년 또다시 고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PC 계열회사들이 삼립을 지원하기 위해 장기간 부당거래를 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특히 빵의 원재료 등을 그룹 내부에서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과정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회사가 중간에 끼어 이윤을 올리는 ‘통행세’ 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이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샤니 소액주주가 허 회장을 고발했다.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갖고 있던 밀가루업체 밀다원의 주식을 또 다른 계열사인 삼립에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2022년 증여세를 아끼려고 알짜회사 주식을 헐값에 팔아넘긴 혐의로 허 회장을 기소했다. 허 회장은 1년 넘게 법정 출석을 이어가다 올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SPC 대표이사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칙적 방법에 따라 양도주식 가액을 정한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들에게 배임의 고의가 인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잇따른 악재에도 SPC그룹의 빵 사업은 성장세를 보였다. 포켓몬빵 등 캐릭터빵을 중심으로 베이커리 사업이 성장하면서 핵심 계열사인 SPC삼립의 매출도 건재했다. 상장사인 SPC삼립의 매출은 2021년 2조9467억원에서 지난해 3조4333억원으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62억원에서 917억원으로 늘었다. 다만 영업이익률은 1% 정도다.

업계에 따르면 SPC는 이번 사태로 글로벌 사업에 제동이 걸릴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허 회장은 체포 직전까지 이탈리아 현지 진출을 위해 이탈리아 커피 전문 브랜드 ‘파스쿠찌’와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경영 일선에 나섰다.

SPC는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에 파리바게뜨 56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유럽 시장을 확장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권 국가들의 할랄 시장 공략도 준비 중이었다.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세계 1만2000개 매장, 일자리 10만 개 창출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로 글로벌 사업 차질은 물론 기업 이미지 훼손 등으로 인해 소규모 자영업자인 가맹점주들의 타격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파스쿠찌 등 주요 브랜드 가맹점은 6191개에 이른다. 경영공백 상황에서 이미지까지 훼손되면 가맹점주들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한편 검찰은 최대 20일인 구속기간 동안 그룹 차원의 개입이 있었는지를 확인해 그를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