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FTX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이 25년형을 선고받았다./연합뉴스
코인거래소 FTX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이 25년형을 선고받았다./연합뉴스
샘 뱅크먼프리드가 최근 2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가 세운 코인 거래소 FTX가 2022년 11월 파산하기 직전까지 그는 ‘크립토 제이피 모건’, ‘차세대 워런 버핏’이라고 불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영앤리치’의 대명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국은 순식간에 몰락했습니다. 남은 자산은 속속 매각되고 있고, 그 돈은 피해자 배상금으로 쓰일 예정입니다. 그로 인해 졸지에 자산을 잃은 투자자들은 여전히 분노와 눈물을 삼키고 있습니다.

샘 뱅크먼프리드(이하 SBF)는 1992년 스탠퍼드대 로스쿨의 저명한 교수인 조지프 뱅크먼과 바버라 프리드 사이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 부부는 법적 혼인이 동성 커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불공평하다며 결혼을 안 했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 성 ‘뱅크먼’과 어머니 성 ‘프리드’를 모두 씁니다.

수학에 능했던 SBF는 MIT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전인 2013년 여름 제인스트리트라는 월가의 투자사에서 인턴을 했고, 졸업 후에도 같은 곳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퇴사해 헤지펀드 기업을 창업합니다.

알라메다 리서치라는 이름의 이 회사는 미국과 일본의 비트코인 가격 차이를 이용한 재정거래(아비트리지)로 수익을 올렸습니다. SBF의 MIT 시절 룸메이트였던 게리 왕, 제인스트리트 동료였던 캐럴라인 엘리슨 등 화려하고 유망한 20대 중반 젊은이들의 과감한 사업은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2019년 알라메다 리서치는 FTX라는 코인 거래 서비스(거래소) 사업을 시작합니다. 사실 헤지펀드와 거래소를 동시에 운영한다는 건 이해충돌 소지가 있습니다. 거래소의 거래 내역을 보면서 펀드를 운용할 수도 있고, 펀드를 갖고 거래 시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SBF와 그의 팀은 사실상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된다’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잘나가는 젊은 천재들’이어서 우려의 목소리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투자자들은 그 시절 ‘포모(FOMO)’, 즉 너도나도 투자하려고 줄 선 마당에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성공 가도와 사치를 모르는 혁신 기업인
‘크립토 스타’에서 ‘25년 징역 사기꾼’으로 몰락한 차세대 워런 버핏[비트코인 A to Z]
FTX의 출범 타이밍은 절묘했습니다. 코로나19 시기로 이어지면서 넘치는 유동성과 ‘비대면’을 선호하던 당시 분위기가 암호화폐 시장에 호황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최근 상승장에서 경신되기는 했지만 2021년 11월 6만9000달러 전고점을 향해 달리던 시장에서 FTX는 전 세계 거래소 가운데 거래량 기준 세계 2위, 3위를 기록할 만큼 급부상했습니다.

게다가 FTX는 미국인인 SBF가 만든 서비스였습니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의 창업자 자오창펑은 캐나다 국적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났고, 바이낸스 사업도 중국에서 시작됐습니다. 미·중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는 시대상을 반영하듯 FTX는 새삼 미국의 새로운 역량인 양 부상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SBF의 이미지도 단단히 한몫했습니다. 늘상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고 ‘평범한’ 도요타 코롤라를 몰았습니다. 큰 현금의 기부를 미덕으로 삼는 ‘효율적 이타주의’를 추종하면서 실제 많은 기부를 했습니다.

유명세를 타면 약간의 ‘신비주의’를 띠기 마련인데 SBF는 주저없이 모든 언론 취재에 직접 응했습니다. 겸손한 말투로 “좋은 질문이시네요”라고 입을 뗀 뒤 명쾌한 답을 내는 뽀글머리 청년은 ‘사랑스러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냥 봤을 때는 괴짜인가 싶었지만 실제로는 좋은 집안 출신에, 좋은 학교를 나와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사치를 모르는 천재 혁신가였으니까요.

어느새인가 미국의 주요 언론이 암호화폐 산업을 다룰 때면 SBF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유명한 잡지 표지에 그의 얼굴이 실렸습니다. FTX도 2022년 1월 32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기록할 정도로 뜨거워졌습니다. FTX의 콘퍼런스에는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연사로 참석했고 TV 광고에는 톰 브레이디(미식축구)와 지젤 번천 부부를 비롯해 샤킬 오닐(농구), 오사카 나오미(테니스), 루이스 해밀턴(F1) 같은 유명 선수들이 모델로 나왔습니다. 2022년 2월 슈퍼볼에도 FTX 광고가 나왔고 마이애미의 농구장 이름은 ‘FTX 아레나’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워싱턴 정가에도 영향력을 뻗쳤습니다. SBF는 입법 및 정책에 영향을 주는 인물군에 진입했습니다. 특히 그는 정치권의 큰손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2022년 한 해에만 민주당에 4000만 달러를 기부해 개인 기부자로서는 2위를 차지했고, 본인 입으로 “언론이 민주당과 친해서 공화당 후원은 공개하지 않지만 민주당에 하는 만큼 공화당에도 기부를 한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남의 돈으로 쌓은 카드집이 무너지다
그러나 SBF가 그렇게 뿌린 돈은 자기 돈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검소함을 가장했던 그는 실제로는 전용 비행기를 탔으며 초호화 리조트에서 거주했습니다. 2022년 5월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고 일부 암호화폐 기업이 파산하자 SBF는 자신이 인수하겠다며 업계의 구원자를 자처했습니다. 이 모든 것 역시 남의 돈으로 부린 허세였습니다.

실상인즉 SBF가 만든 알라메다 리서치는 투자 손실을 보고 있었고 그걸 메우기 위해 자신이 만든 또 다른 회사인 FTX 거래소로부터 고객이 맡긴 돈을 마음대로 끌어다 쓰고 있었습니다. 2022년 11월 초 언론 보도로 이 사실이 드러났고 FTX 고객들이 자금 인출에 나섰습니다. 당연히 갖고 있었어야 했던 돈인데 FTX의 잔고는 80억 달러가 부족했습니다. 결국 FTX는 파산하고 SBF는 미국으로 송환, 구속돼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SBF가 고객 자금을 유용했고, 외부에 이 사실을 감춘 채 거짓말을 했고, 자금 세탁을 저질렀다는 등 7가지 혐의가 모두 유죄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검찰은 징역 40~50년을 구형했고, 변호인은 최대 6년 반이 적정하다고 주장한 가운데, 판사는 SBF가 미래에도 나쁜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며 25년형을 선고했습니다. SBF는 ‘나쁜 의도는 없었으며 일련의 실수였을 뿐’이라는 입장으로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할 계획입니다.

FTX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은 관련 규제를 정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전고점을 경신하는 계절을 다시 맞아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시장의 취약성을 생각하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한국·일본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