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개편 논의·금투세 폐지 등 추진 험난해져
물가, 시장 개입 한계…하반기 물가 오를 가능성 커져
의대 증원, 총선 결과 상관 없이 물리기 힘들어

[스페셜 리포트 - 총선 이후 한국 경제 어디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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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서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진 지 8년 만에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밀려 원내 2당으로 내려앉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도 같은 결과를 받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회 통과가 필요한 여당의 경제 정책의 추진은 험난해졌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시장 개입으로 억눌러온 물가는 총선 이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의대 증원 문제 역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의대, 이래도 강행 저래도 강행의대 증원은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였다.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발표는 한때 여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힘이 됐다. 하지만 의사들이 강력히 저항하며 분쟁이 장기화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전통적 여당 지지층이었던 의사들의 이반도 나타났고,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져 결론적으로 선거에서 여당에 유리한 변수가 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 조사 결과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응답한 비중이 76%에 달했지만 3월 들어서 이 비중은 47%로 감소했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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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당장 내년 시행을 목표로 정부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기존보다 2000명 늘린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정원을 확정했다. 대학들은 오는 5월 말까지 증원한 의대 정원을 반영해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을 공지해야 한다. 정부는 현재 의대 정원 변경이 행정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일로 보면 밀어붙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가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밀릴 경우 레임덕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또 야당의 반대가 크지 않은 것도 정책 강행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총선과 별개로 의대 증원 계획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정부와 의료계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 의료계 내분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당초 의협 비대위는 총선이 끝난 직후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 당선인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그러나 비대위와 임현택 당선인 간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이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비대위 협상설’이 갈등의 원인이다.

다만 의협 비대위는 정부와 협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4월 10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와 물밑협상을 한다는 근거 없는 선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사실이 아니다.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협상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물론 타협의 여지는 있다. 의료 현장의 기능 상실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전적으로 이 이슈를 주도한 대통령실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투세 폐지·상속세 개편, 국회에서 막힌다정부와 여당이 주도해온 세제개편 작업은 제동이 걸린다. 22대 총선 결과가 여소야대로 확정되면서 이들의 경제정책들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양당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저출생 △소상공인 지원 △미래산업 육성 △기후위기 대응 등을 제외한 여당의 정책들은 입법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당초 여당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조세 부담 완화 정책들을 총선 승리 후 본격적으로 밀어붙일 계획이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상속세 개편 등이 대표적이다. 야당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금투세는 기존 예정대로 내년 시행된다. 금투세는 2020년 12월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으로, 2년 유예를 거쳐 당초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2년 양당 합의로 2년 유예돼 시행 시기가 2025년으로 미뤄졌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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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 투자로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이 생긴 투자자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3억원 이하 세율은 20%, 그 이상은 25%를 적용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폐지를 하고 싶은 정부의 입장은 강경하다”며 “자본시장 활성화를 원한다. 주식에 세금을 매기면 증시 전반이 침체되지 않나. 그래서 폐지를 공식화했는데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부자감세를 이유로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속세도 마찬가지다. 상속세의 최고세율은 50%(30억원 초과)이며 기업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는 20% 할증이 더해진다. 최대 60% 세율로 적용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며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게 되면 상속세 개편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상속세에 과도한 할증과세가 붙는 것을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있다”며 “그러나 이 역시 부자감세 지적을 받기 때문에 당장은 논의되기 어려울 것 같다. 민주당에서도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상속세 이슈를 여당이 끌고가는 모양새가 됐기에 지지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주주환원 기업 대상 법인세 완화, 세금은 아니지만 세금처럼 내야 하는 준(準)조세 제도 개편, 상반기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 전통시장 소비액 소득공제 확대, 노후차 교체 시 개별소비세 감면 등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많다.

반면 야당이 추진하는 정책들은 힘을 얻게 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등이 대표적이다. 양곡관리법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으로, 시장격리제 대신 목표가격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양곡수급관리위원회 설치 등도 포함된다. 간호법 역시 지난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간호사를 비롯한 직역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처우를 개선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물가, 더 오를 가능성총선 결과는 물가에는 더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간 정부는 총선 전까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물가 조기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왔지만 채소, 과일값이 크게 오르며 물가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상승률 목표 수준은 2%지만 여전히 3%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 1월에는 2.8%를 기록했지만 2월 다시 3.1%로 올랐고 3월에도 3.1%를 유지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유가와 농산물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당분간 매끄럽지 않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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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정부는 예산을 풀어 물가를 안정시켜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물가안정에 올해 1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연초부터 과일·채소류 총 13개 품목에 대한 할인지원을 시작했다. 3~4월에는 600억원을 투입해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도 한다. 주요 먹거리 체감가격을 40~50% 인하를 성공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석유류, 서비스 등 물가 불안 품목은 현장 점검으로 물가안정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특히 석유류는 불법·편승 인상이 없도록 매주 전국 주유소를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총선 이후 물가상승 압박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 강세는 지속되고 있고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에서 병력을 축소하겠다고 밝힌 이후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4월 9일(현지 시간) 기준 전날 대비 1.20% 하락한 배럴당 85.23달러를 기록했다. WTI는 올해 초 배럴당 70달러 선에서 거래됐으나 꾸준히 상승해 8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6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전날 대비 1.1% 내린 배럴당 89.42달러다.

유가 상승은 하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2월 씨티그룹은 지정학적 리스크,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의 추가 감산 등이 발생할 경우 유가가 100달러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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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하다. 현재 한전의 최근 3년 누적적자는 43조원에 달하며 지난해 202조4000억원의 부채를 기록했다. 한전의 중장기 계획에 따르면 부채 규모는 2027년 226조3000억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한전은 지난 3월 2분기 적용 연료비조정단가를 kWh당 5원으로 동결했다. 총선 전까지는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았으나 연내 요금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명호 홍익대 교수는 “물가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이 많이 영향 받는다”며 “현재 정부는 보조금을 풀어 물가를 안정시켜왔는데 재정을 더 투입할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는 현재를 유지하거나 조금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국전력의 악화된 재정 등도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한국은행이 목표하는 소비자물가상승률 2%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