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도 "윤 대통력 동력 약화" 가능성 보도

총선 이틀 전인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연합뉴스
총선 이틀 전인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연합뉴스
“비상이다. 산업계는 이미 22대 국정감사 대응팀을 꾸리는 상황이다.”

“정치가 가진 위협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상황이 왔다.”


22대 국회 300석의 주인공이 정해지자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거대야당이 대립각을 세우면 출범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가 내놨던 정책과 결정이 번복되거나 정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와 야당의 눈치를 모두 봐야 하는 기업은 바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이후 기업들이 앞다퉈 ‘서초동팀’을 꾸렸다면 총선 이후에는 ‘여의도팀’을 새로 꾸려야 하는 상황이다.

한 정계 관계자는 “기업은 불려 다닐 곳이 더 많아진 것”이라며 “정부와의 관계, 국회와의 관계를 새로 짜야 하는 상황으로 발전했고 모든 총수가 22대 첫 국감에 불려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보다 ‘심판’을 슬로건으로 내건 의원들이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 기업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 “예측 불가능성 커져”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종합지원실 현판식에서 국회의원들이 착용할 국회의원 뱃지가 공개되고 있다./한국경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종합지원실 현판식에서 국회의원들이 착용할 국회의원 뱃지가 공개되고 있다./한국경제
검찰의 움직임도 기업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 집권세력은 희생양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하려 할 경우, 이에 따라 검찰의 칼끝이 야당 정치인과 함께 대기업을 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검찰의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 기업들을 불안케 하는 요소다. 울산지검은 지난 3월 21일 협력업체 근로자가 화재로 숨진 SK지오센트릭 서울 본사와 울산공장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2022년 4월 울산공장에서 1만 배럴 규모의 유류 물질 저장탱크 정비 작업 중 화재가 발생해 근로자 2명이 사망한 사건 관련 수사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2년이 지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겨냥했던 카카오도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작년 10월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법인을, 11월 김범수 창업자를 검찰에 송치한 뒤 최근 회사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 고삐를 죄고 있다.

SPC그룹은 민주노총 탈퇴 강요 의혹을 받으면서 검찰이 지난 4월 2일 허영인 회장을 전격 체포한 후 구속하는 등 수사가 정점을 향해가고 있다. 검찰이 기업 총수에게 출석 요청을 하는 과정이 전부 중계되고 이를 어겼다며 체포까지 되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처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삼표그룹은 4월 9일 첫 재판을 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사흘째 되던 날인 2022년 1월 29일 경기 양주 골재채취장 토사가 붕괴돼 노동자 3명을 숨지게 한 혐의였다. 논란이 된 건 기소 대상이었다. 검찰은 삼표산업 대표가 아니라 ‘그룹 회장’인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봐 기소했다.

기업을 향한 칼바람이 부는 와중에 범야권이 힘과 기세를 얻으면서 기업의 운신의 폭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양쪽에서) 공격받을 요소가 많아졌고 일본이나 중국 등 외교·안보 정책에 큰 흔들림이 있을 수 있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재계 ‘협치’ 강조하며 소모적인 논쟁 우려
"산업계 초비상"…예측 불가능성에 '여의도팀' 다시 짠다[총선 끝 경제는⑤]
이미 21대 국회에서 정부 제출 의안의 법률안 반영 비율은 최저다. 여소야대 국면과 레임덕이 결합되면 정부의 정책 추진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될 정부 제출 의안이 21대 국회에서만 344건에 달하고, 2022년 5월 현 정부 출범 후 2년간 계류 중인 의안만도 204건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정부 입법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레임덕이 가속화되면 정부 관료들도 입법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고, 힘이 더 강력해진 야당은 그 힘을 발휘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이라는 기조를 국회에서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외신 역시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선거가 윤 대통령에게 "큰 시험대"였다면서 "지난 2년간 그의 기업 친화적인 국내적 의제는 자신의 실책과 야당이 통제하는 의회로 인해 교착상태에 있었다"고 평가했다.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재계에서 ‘협치’를 강조하는 논평이 쏟아진 것도 이 같은 불안감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실은 기존대로 자기 정책을 밀어붙이고, 공무원들은 소극적으로 되고, 거대야당은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계가 위기감을 더 크게 느끼는 이유는 한국 경제가 처한 조건 때문이다.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산업구조 급변, 저출생 등 인구사회문제 심화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실, 여당, 공직사회, 거대야당이 각자의 길로 갈 경우 기업들은 더 큰 불확실성 하나를 더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는 정치권이 충돌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조금을 줘가면서 산업을 보호하고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지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은 더욱 취약한 상황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0일 총선 관련 논평에서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도록 22대 국회가 초당적 노력을 기울여달라”며 “경제계도 일자리를 만들고 한국 경제 글로벌 도약을 위해 본연의 역할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 수출의 경쟁력 강화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무협은 총선 논평에서 “22대 국회가 여야 화합의 협치로 우리 수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 5대 무역 강국 도약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출 증대라는 대명제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22대 국회가 노동·규제 개혁과 통상 협력 등 우리 기업의 글로벌 진출 확대를 위한 기틀 마련에 역량을 결집해달라”고 했다.재계 숙원 해소는 어려울 듯 재계가 요구한 각종 세금 부담 완화는 사실상 물 건너 갔다고 볼 수 있다. 야당이 그동안 정부에서 내건 각종 세제 개편 정책에 대해 ‘부자감세’라며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세금이 상속세다. 현 정부는 지속적으로 재계의 상속세 완화에 대해 긍정적 자세를 취해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과도한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목했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1997년 45%, 2000년 50%로 줄곧 인상됐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적용하는 ‘최대주주 할증 과세’에 따라 실제 상속세율은 세계 1위인 60%에 달한다. 정부는 이를 완화하겠다는 사인을 계속 보냈기 때문에 재계는 내심 기대감이 컸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OECD 평균 대비 높은 법인세에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인하 필요성에 공감해 지난 2022년 문재인 정부 때 25%까지 올린 법인세 최고세율을 다시 22%로 낮추는 세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2023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야당은 상속세와 법인세 완화를 ‘부자감세’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 세수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까지 부각될 경우 야당의 입장은 더 완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야당의 감세에 대한 반대 기류는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는 주주환원 증가액 일부에 대해 법인세 부담을 완화하고, 배당 확대 기업 주주의 배당소득세 부담을 경감하는 등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야당이 압승한 만큼 조세법 개정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이 밖에 중소기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유예도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