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한 1만호 엔진 'F404'의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4월 12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한 1만호 엔진 'F404'의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아아아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엔진 시운전실. 천장에 매달린 F404엔진에서 굉음과 함께 푸른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엔지니어가 F404엔진을 최대 출력까지 끌어올리자 삿갓 모양의 ‘소닉붐’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 4월 12일 방문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 1사업장에서는 F404엔진의 최종 출고를 앞두고 최종 테스트 작업이 한창이었다. F404엔진은 성공적인 테스트를 마친 뒤 공군 전술입문훈련기인 TA-50에 장착된다.

김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장은 “항공엔진의 고장은 돌이킬 수 없는 인명, 재산 피해와 직결되기 때문에 매번 엔진을 만들 때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꼼꼼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404엔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한 ‘1만번째 엔진’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 유일 항공용 가스터빈 전문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79년 공군 F4 전투기용 J79엔진 창정비 생산을 시작으로 지난 45년간 항공기 등에 탑재되는 엔진 1만대를 생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30년 중후반까지 정부와 함께 KF-21 엔진과 동급 수준인 1만5000파운드급 첨단 항공엔진을 독자 개발해 글로벌 항공엔진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유무인복합운용 등이 요구되는 6세대 전투기 엔진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창원 사업장에 약 400억원을 투자해 스마트 공장도 증설한다. 해외 업체의 면허생산을 넘어 전투기급 독자 엔진 기술을 확보해 자주국방에 기여하고 이를 기반으로 무인기, 민항기(여객기) 등의 엔진을 추가 개발한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서 직원들이 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서 직원들이 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45년 만에 항공엔진 생산 1만대 돌파

창원1사업장에서는 전투기에 탑재되는 항공엔진을 포함해 무인기, 헬기용 엔진, 함정용 엔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에 탑재되는 발사체 엔진, 유도미사일엔진 등 다양한 종류의 엔진이 생산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양한 항공엔진 생산 과정에서 확보한 엔진 설계 및 해석, 소재, 시험, 인증 등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도미사일엔진, 보조동력장치(APU) 등 1800대 이상을 독자 개발했다. 엔진 유지·보수·정비(MRO)만 5700대에 이르는 등 설계부터 제조, 사후 관리까지 통합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날 엔진조립동에는 1979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초로 생산한 항공엔진 모델인 공군 F4 전투기용 J79엔진부터 KF-16에 탑재됐던 F100엔진, 최초의 국산 초음속 전투기인 KF-21 보라매에 탑재되는 F414엔진까지 45년 항공엔진 사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엔진 실물을 볼 수 있었다.
4월 12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서 이광민 항공사업부장이 항공엔진사업 현황과 중장기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4월 12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서 이광민 항공사업부장이 항공엔진사업 현황과 중장기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GE·P&W·롤스로이스 면허생산 넘어 ‘첨단 독자 엔진’ 도전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동안 자체 설계 기술 없이 면허(라이센스) 생산 방식으로 전투기용 가스터빈 엔진을 제작해왔다. 최초 국산 전투기인 KF-21은 우리 손으로 만들었지만, 수출 시 미국의 통제를 받고 있다.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면허 생산 모델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전투기 엔진 설계, 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6개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우크라이나·중국)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수출관리규정(EAR) 등 각종 규제에 따라 엔진 관련 기술 이전과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즉 독자적인 모델이 없으면 방산 수출 시 원천기술을 보유한 나라로부터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본과 중국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독자 엔진 개발에 사실상 성공한 가운데 최근 튀르키예도 미국 GE의 F-110 엔진을 장착한 5세대 전투기의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2028년부터 자체 엔진도 생산할 계획이다.

6세대 전투기 개발 경쟁도 이미 시작됐다. 미국을 필두로 영국·일본·이탈리아와 프랑스·독일·스페인은 6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에 뛰어들었다. 인구 절벽시대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 추세로 향후 미래 전장은 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된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MUM-T)로 펼쳐질 전망이다.

유인기 엔진은 엔진을 구매하거나 해외 선진업체와 기술 제휴를 할 수 있지만, 무인전투기의 엔진의 경우 MTCR로 인해 다자 및 양자 수출 통제가 적용되므로 구매 및 기술제휴가 불가능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엔진 국산화에 뛰어든 이유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023년 10월 18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 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Seoul ADEX 2023)를 참관해 한화그룹 부스에서 KF21의 심장인 F414 엔진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023년 10월 18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 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Seoul ADEX 2023)를 참관해 한화그룹 부스에서 KF21의 심장인 F414 엔진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김동관이 점찍은 미래 먹거리, 5년 뒤 150조 시장 열린다

첨단 항공엔진 국산화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역점 사업 중 하나다. 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를 겸직하며 방산·우주·항공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3)’에서 가장 먼저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심장인 F414 엔진을 살펴본 뒤 차세대 전투기 엔진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간 업계에선 항공엔진 독자 개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첨단 항공엔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선정한 12대 국가전략기술과 국방부가 선정한 10대 국방전략기술에 모두 포함될 만큼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기술이다.

글로벌 항공엔진 시장은 2029년 1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엔진 수명연한인 45년 동안 꾸준히 추가 공급이 필요한 소모성 부품인 만큼 시장 성장성이 높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 따르면 항공엔진 개발 이후 20년간 최소 9조4000억원의 부가가치가 예상된다. 하지만 국내 항공엔진 기술은 선진국 대비 약 70% 수준에 불과해 글로벌 항공엔진 시장 진입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는 항공엔진 기술 확보에 팔을 걷었다. 방위사업청은 2030년대 중후반까지 국산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는 1만5000lbf급 터보팬 엔진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lbf는 엔진 출력의 단위로 1만lbf 이상은 제트기급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천문학적 개발 비용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따르면 첨단 항공엔진 개발에는 10년 이상이 소요되며 5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 전망이다.

항공엔진은 기계공학의 총합으로 불린다. 원소재부터 설계, 모든 구성 요소가 산업용, 발전용 대비 기술적 난도가 높아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동안 단수명 미사일용 엔진은 제작해봤지만 항공엔진과 같은 1000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장수명 엔진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이광민 항공사업부장은 “총 한 자루 만들 수 없었던 한국이 최근 방산 수출강국으로 부상하며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내 조립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반도체 수준의 국가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항공분야가 지속적인 외형 성장을 이뤘지만 엔진 등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만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독자적인 항공엔진 기술을 확보해 미국에 수출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79년부터 생산해 온 항공엔진들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79년부터 생산해 온 항공엔진들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소재 기술에 역량 집중…7대 항공엔진 기술 보유국 목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빅3 엔진 제작회사인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 프랫 앤드 휘트니(P&W)와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모두 면허생산 사업을 추진한 기록을 갖고 있는 만큼 제조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개발하고자 하는 전투기용 엔진에 쓰이는 대형 장수명 엔진에 대한 설계 능력과 소재 기술은 아직 없기에 항공엔진 국산화는 ‘가보지 못한 길’이다. 항공엔진 소재 기술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첨단엔진을 독자 개발하려면 약 64종의 소재를 자체 개발해야 하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본격적인 소재 개발에 착수해 이 가운데 17종을 개발하고 있다.

항공엔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특수합금인 인코넬718을 비롯한 첨단엔진용 소재는 항공기 운항 시 발생하는 초고온·초고압·초고속의 극한 환경을 견디기 위한 강한 내구성과 기동성을 위한 경량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인코넬718은 현재 전량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월부터 1000마력급 무인기 엔진 핵심부품을 1000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장수명 엔진 소재 개발에 나선 데 이어 7월부터는 인코넬 718 소재 개발에 나서는 등 항공엔진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가 주관하는 무인기용 ‘TIT 1800K급 터보팬 항공엔진 저압터빈 내열합금 및 코팅 기술’ 개발 과제를 수주했다. 3D프린팅, 일정한 방향의 결정체로 응고해 강성을 높여주는 일방향응고 정밀주조, 내열코팅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섭씨 1500도까지 상승하는 항공엔진 초고온부에 사용할 내열합금을 개발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엔진 국산화에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 영국 등에 이어 세계 7번째 항공엔진 기술 보유국이 된다. 아울러 국내 약 100개 업체가 수입하던 부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되며 독자적인 엔진 정비도 가능해진다.

민간 항공기와 해양·발전 등에 적용할 수 있는 파생형 엔진 분야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직·간접적인 경제효과는 2040년 이후 연간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추정하고 있다.

이광민 항공사업부장은 “첨단항공엔진 개발, 나아가 6세대 전투기 엔진 개발은 도전적인 목표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45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인프라, 정부 및 협력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