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등급 없어도 최하등급 지급률 보장
노동변호사 출신 김선수 대법관 판결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 연합뉴스
성과평가 대상에서 누락된 공기업 산하기관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성과평가를 실시하지 않아 개인별 평가 등급이 부여되지 않았더라도 공기업 직원이 받는 최하등급의 성과급까지는 산하 기관 직원의 권리로 보고 지급하라는 취지다. 향후 경영진의 손해배상 가능성을 열어둔 판결로 노동계와 산업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는 2024년 3월 12일 대구도시개발공사 산하 레포츠센터 직원들이 공사를 상대로 낸 성과급 소송 상고심(사건번호 2021다252946)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성과급 지급 평가를 하지 않아 개인 평가 등급이 없어도 최하등급에 책정된 지급률은 보장된 것”이라며 “최소한도 성과급 지급 의무가 공사에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오는 8월 퇴임을 앞둔 김선수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1부에서 내렸다. 노동변호사 출신의 김 대법관이 또 하나의 친노동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사 직원이냐, 산하 직원이냐

대구도시개발공사는 2007년부터 성과관리 규정을 만들어 행정안전부가 결정하는 기관 경영실적평가에 기반한 ‘인센티브 평가급’과 직원 개인 근무 성적 등을 고려한 ‘자체평가급’을 지급해왔다. 공사가 행안부 경영평가에서 최하인 ‘마’ 등급을 받게 되면 인센티브 평가급의 지급률은 0%가 되지만 이 경우에도 자체평가급 지급률은 부여된다.

이번 성과급 소송 사건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사 산하 레포츠센터 직원 32명은 공사가 자신들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자 소송을 냈다. 상고심에서 법무법인 이엔씨가 원고들을 대리했다.

센터 직원들은 “공사가 성과관리 규정을 토대로 다른 직원들처럼 성과평가를 하고 성과급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유 없이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2016~2018년분 성과급으로 약 4억2700만원을 요구했다.

공사 측은 센터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공사와 산하 센터는 별개의 사업체인 데다 센터 직원들에게는 공사의 성과관리 규정이 아닌 별도 자체 예규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엇갈린 1심과 2심

1심 재판부는 “공사의 성과급 규정이 일반적 규정이라고 볼 수 없고 레포츠센터 직원에게 적용된다는 특별한 계약이나 규정도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채용권과 인사권을 위임받은 센터도 성과관리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센터장이 공사 사장의 권한을 위임받아 직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점 등을 고려하면 성과관리 규정을 직원들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애초에 성과평가를 받지 않은 센터 직원들에게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성과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성과급 액수를 특정할 수 없다”며 “성과급 지급 의무도 없다”고 했다.

또 공사가 경영실적 평가 최하 등급인 ‘마’ 등급을 받을 경우 ‘인센티브 평가급’ 지급률이 0%라는 점, 그 외 센터 직원들에게 적용할 ‘자체평가 성과급’ 기준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센터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받을 구체적 권리가 없으며 공사의 성과급 지급 의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손해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공사 경영진의 배상책임도 없다고 봤다.

“최소한의 성과급 지급해야”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센터 직원들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6~2018년 공사가 행안부 경영평가에서 최하등급인 ‘마’ 등급을 받은 적이 없고 이 기간 개인별 평가를 최하 등급으로 받은 직원들도 인센티브 평가급과 자체평가급을 100% 이상 지급받았다”고 지적했다.

공사가 개인별 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근로자에게 지급한 인센티브 평가급의 지급률은 2016년도 170%, 2017년도 175%, 2018년도 130%이고 자체평가급의 지급률은 연도마다 100%였다.

대법원은 “공사가 센터 직원들에게 성과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더라도 개인별 최하 등급자에게 부여된 성과급 지급률만큼은 보장된 것”이라며 “공사는 그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센터 직원의 성과평가 자체를 하지 않은 경영진의 손해배상책임도 다시 검토하라”고 했다.


[돋보기]
김선수 대법관. 사진=한국경제신문
김선수 대법관. 사진=한국경제신문
친노동 판결 줄줄이 내린 김선수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은 법관 이력이 없다. 30여 년 노동변호사로서 활동해온 그는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최초로 비판사 출신 대법관이 됐다.

그는 저서 ‘노동을 변호하다’를 통해 “전태일을 생각하며 변호사가 됐다”고 밝혔으며 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 밑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창립회원이며 2005~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 참여해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제도 도입을 주도했다.

김 대법관은 대법원의 친노동 판결을 이끄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주심을 맡은 판결 중에서도 친노동 판결이 손꼽힌다. 최근엔 현대제철이 근로자 2800여 명과 벌인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김 대법관은 주심으로서 현대제철이 근로자들에게 약 443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근로자들은 2013년 5월 현대제철을 상대로 2010년 4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고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적게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현대제철이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법정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퇴직금 산정 기준인 평균임금 관련해서는 보전수당, 체력단련비, 단체 상해 보험료, 하계건강지원비를 포함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을 대법원이 확정했다.

‘임금인상 소급분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확정한 것도 김 대법관의 판결이다. 2021년 9월 대법원은 한국철도공사 소속 근로자 110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임금 지급 소송 상고심에서 소급분 중 1인 승무 수당과 복지포인트만 통상임금이 아니고 나머지 수당과 성과급은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2020년 8월 9년을 끌어온 기아의 통상임금 상고심에서 근로자 손을 들어준 것도 김 대법관이다. 대법원은 1·2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기아 근로자들의 통상임금 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아 근로자 2만7451명은 2011년 연 700%의 정기상여금과 각종 식대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고 청구 금액은 원금 6588억원에 이자 포함, 1조원이 넘었다.

1·2심은 근로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2심 선고 후 기아는 1인당 평균 1900만원씩 약 4000억원의 미지급금을 지급했다. 3200여 명은 소송을 계속해 대법원 판단을 받았고 김 대법관이 주심인 대법원 1부는 기아 노조의 청구가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고 본 원심판결이 타당하다며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