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에 사업비용 눈덩이, 태영건설 PF 부실 사업장 청산 본격화
좋은 입지는 ‘줍줍’ 노리는 수요 많아, 가격 조정 뒤 매각도 가능

[커버스토리-‘신 3고’ 쇼크-국내 부동산 위기]
태영건설이 시공 중인 한 아파트 현장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태영건설이 시공 중인 한 아파트 현장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연말에 미국에서 금리를 내리면 다시 오를 거다.”

2022년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폭풍이 시장을 휩쓴 지 1년여가 돼가던 2023년 이맘때였다. 연말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태영건설, 신세계건설 등 중견 건설사뿐 아니라 일부 대형 건설사까지 위기설에 오르내렸지만 건설·부동산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낙관론이 여전했다.

때마침 회복될 조짐을 보이던 집값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부동산 상승기에 비해 조정된 아파트 시세, 그리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위해 저금리에 공급된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역시 시장이 ‘반짝’ 반등하는 데 한몫했다.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부동산 하락기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실수요자들이 전세사기 여파와 주택공급 부족 속에 매수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2024년 1분기가 지나서도 Fed로부터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정부의 공식적, 비공식적 지원으로 지금까지 버텨오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들도 당장 희망이 없는 분위기에 불어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해 가까스로 연장한 대출이 만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다시 한번 시장이 출렁이면 피할 수 없는 ‘대세 하락기’에 진입하리라 예상하고 있다. 고금리가 이어지며 미분양이 쌓이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남아 있던 실수요조차 싸늘하게 식을 전망이다. 차게 식은 심리는 또 다른 미분양을 낳아 전국의 부동산 개발 현장을 부실화하는 식으로 악순환을 낳는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은 ‘든든한 하방 경직성’을 보이며 버텨줄지가 관심이다. 이들 지역 내에서 실거주 또는 매수를 노리는 대기수요는 하락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투자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에선 여전히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시중금리 떨어져도 얼어붙은 심리
사라진 집값 반등론…버티던 사업장도 ‘손절’ 수순 [‘신 3고’ 쇼크]
금융권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에서 제공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떨어졌다. 은행에서 주담대 변동금리를 산정하는 지표인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는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4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이를 두고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로 보는 의견들이 나왔다. Fed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시중금리에 미리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지금의 주택시장 불황이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장 강력한 호재가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막상 금리인하 기대감이 옅어지고 있는 지금,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COFIX와 주담대 금리 하락이 자금을 조달하려는 수요가 없어 발생하는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매수가 발생해야 대출을 일으키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담보대출 잔액 증가세가 주춤해지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통상 가계대출이 줄면 건전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치지만 지금 현상은 예외라는 분석이다.

그 결과 주택 미분양은 매달 쌓이고 있다. 지난해 말 6만 채를 돌파한 전국 미분양 가구 수는 올해 2월 6만4874호를 기록하며 두 달 만에 5000채가 불어났다. 이 중에선 악성 미분양인 공사완료 후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비중이 커지고 있다. 구조조정 vs 출구전략 갈림길 선 PF 현장
부동산 시행사와 건설사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부동산 PF사업장은 경기가 정점이던 2020년에서 2022년 상반기에 토지를 매입한 사례가 많다. 여기에 지난 1년간 사업자금 조달을 위한 이자 비용이 불어난 상태에서 고환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사 자재비와 인건비까지 급격히 올랐다.

특히 인건비가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장 근로자 임금이 매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건설협회 ‘건설업임금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17만9690원이던 현장 근로자 하루 노임은 매년 올라 올해 상반기에는 27만789원으로 10만원 가까이 올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자재비는 원자재 가격이나 수급에 따라 등락이 있고 최근 공사 현장이 줄면서 조금은 안정된 상황”이라며 “자재비와 달리 인건비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분양이 장기화한 현장에선 마케팅 비용도 부담이 되고 있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유명 시행사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프로젝트가 대규모 미분양을 내자 남은 물량을 털기 위해 광고 마케팅 비용을 엄청나게 집행한 것으로 안다”며 “아마 100억원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익은 없는데 비용만 느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급격한 비용 증가로 소위 ‘완판(분양계약 완료)’에 성공하더라도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지금 같은 상황이 되기 전에는 비용 대비 분양 매출이 높아 아파트의 경우 전체 가구 수의 60~70%만 팔더라도 손해가 아니었다. 그런데 불과 2~3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이에 따라 브리지론 상태의 착공 전 프로젝트 다수가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상태다. 일부 프로젝트는 지난해 가까스로 연장한 만기가 다가오는데도 사업 진척이 어렵다. 브리지론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극초기인 토지매입 단계에서 부지 확보 및 설계비용 등을 조달하기 위해 빌리는 고금리 단기 자금이다. 사업이 착공 및 분양에 들어가며 본격화하면 브리지론이 본PF로 전환된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 전국 곳곳에 비싸게 부지를 매입한 일부 시행사들은 직원들 임금까지 밀리고 있다.

이 같은 사업장은 갈림길에 놓였다. 구조조정 대상이 되거나 자발적으로 출구전략을 찾는 것이다. 현재의 PF 위기를 있게 한 태영건설의 브리지론 사업장 20곳 중 대부분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대주단 논의에 따라 경매 공매나 시공사 교체 작업에 들어간다. 성수동 지식산업센터 프로젝트나 구미 그랑포레 데시앙 2단지와 3단지 사업이 대표적인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분양한 구미 그랑포레 데시앙 1단지의 현재 미분양률은 80%에 달한다.

분양을 포기하고 자체적으로 다른 살길을 찾은 경우도 있다. 하이엔드 오피스텔 ‘르피에드’ 브랜드로 유명한 시행사 미래인은 3.3㎡(평)당 약 2억9000만원을 주고 매입한 옛 프리마호텔 부지에 고급 주상복합 ‘르피에드 청담’ 조성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말 연장한 브리지론 만기가 올 하반기로 다가오자 결국 신세계프라퍼티에 사업 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 부동산 개발 계열사인 신세계프라퍼티는 해당 부지에 초고급 호텔을 지을 계획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미래 전망이 좋은 입지는 가격 조정을 거치더라도 결국 위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 일명 ‘줍줍’을 노리는 다른 사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기수요가 꾸준한 서울 강남3구 시세와 나머지 지역 간 가격 격차는 불황이 심화하며 더 벌어지고 있다.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에 따르면 강남3구와 그 외 서울지역 아파트의 매매가 격차는 2022년 3.3㎡당 3178만원에서 2023년 3309만원, 2024년 3월 현재 3372만원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2023년부터 올해 3월 사이 강남권 아파트 가격은 그 외 지역의 두 배에 달하고 있다.

정부 역시 ‘옥석 가리기’를 통한 지원에 나설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8일 주택도시기금과 민간사업자가 공동출자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리츠를 통해 브리지론에서 PF로 전환하지 못하는 사업 부지를 인수해 민간임대를 공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리츠의 목적 자체가 투자금을 기초로 하는 수익창출이므로 사업성 중심으로 부지를 매입하거나 현실적인 수준으로 가격 조정을 할 것”이라며 “나머지는 결국 시장에 맡길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라고 분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