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3高’의 습격, 선조의 실패와 차기 총리의 조건 [EDITOR's LETTER]
조선 14대 임금 선조. 조선 왕조에서 가장 무능한 왕 1, 2위를 다툽니다.

끝내 조선을 망친 붕당(朋黨) 정치가 그때 시작됐습니다. 선조는 붕당, 분열을 이용해 왕위를 지켰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튀었고, 중국으로 도망갈 준비도 했지요. 이순신 장군 등 임진왜란 영웅들의 인기가 치솟자 파직 등으로 핍박했습니다.

사람 복은 있었던지 뛰어난 관료와 장수들이 많았습니다. 이황, 기대승, 서경덕, 이이, 정철, 유성룡, 이발, 이순신, 곽재우 등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관료와 장수들이 한 시대에 튀어나왔습니다. 이들을 데리고도 수차례 전란을 겪고,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것도 능력이다 싶습니다. 잘한 일은 딱 하나 생각납니다. 임진왜란 전 유성룡이 천거한 무명의 장수 이순신을 발탁해 전라좌수사로 임명한 것입니다.

4·10 총선이 얼마 전 끝났습니다. 대형 이벤트가 끝나자 무언가 꿈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가격을 올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쿠팡, 치킨업체, 편의점 등. 가격을 올리고 내리는 것에 대한 생각은 확실합니다. “가격을 정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이고 판단은 시장이 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총선 직후 터져나온 가격 인상은 쿨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왜 총선 직후, 그것도 여당이 패한 후 한꺼번에 나올까. 그동안 안 올린 것은 자발적이었을까, 눈치를 봤을까. 총선 때까지 기업의 가격 인상을 틀어막았던 그 분위기는 무엇을 말할까.’

폭풍이 걷히고 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됩니다. 경제 실상입니다. 한국 경제를 덮친 고금리·고유가·고환율, 3고 현상. 달러, 유가, 금리가 한꺼번에 오른 것은 1980년대 초 이후 처음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예견됐던 3대 리스크인 ‘공급망 재편의 위험, 지정학적 리스크, 인플레이션 우려’가 한꺼번에 현실화된 것입니다.

시작은 세계의 제국 미국이었습니다. 공급망 재편, 미·중 패권전쟁을 빌미로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공장을 멱살 끌다시피 미국으로 유치하며 경제를 호황 상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코로나19 때 풀린 돈과 호황이 만나 물가가 올랐습니다. 자이언트스텝이나 빅스텝이니 하면서 물가 관리를 하는 와중에도 보조금 등으로 돈을 계속 뿌린 것도 미국입니다.

경제가 워낙 좋으니 강달러가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그 유탄을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대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국내 설비투자 여력은 사라졌습니다. 외국에서 번 달러도 미국에 공장을 짓는 데 써야 하니 한국으로 가져오지도 못합니다.

성장률은 미국, 일본에 뒤졌고 한국의 통화인 원화 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금리를 올려야 원화 가치를 방어할 수 있지만 엄청난 가계대출, 부동산 PF 문제가 있어 어찌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금리와 환율은 계속 고공행진 중입니다. 여기에 중동에서 전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진행형입니다. 유가와 달러가 동시에 오르면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0%에 육박하는 한국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변수를 더하면 방정식은 더더욱 복잡해집니다. 산업별로 봐도 좋은 게 별로 없습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투자할 곳이 없다”는 한 펀드매니저의 말은 다른 산업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한국은 1980년대 중후반 저유가·저환율·저금리라는 3저호황을 누렸습니다. 3저호황은 한국 산업화 과정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한국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물적 토대로 작용했습니다. 소득이 높아진 국민들은 또 다른 가치인 정치권력의 분배를 요구했고, 그 분배의 결과가 직선제로 이어졌습니다.

40년 후 찾아온 3고 현상은 한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가면 한 단계 성숙한 경제구조를 갖추고, 정치적 양극화를 축소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경제 활력은 떨어지고, 정치적 불안정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벌써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 위기가 시스템으로 극복된 사례는 없습니다. 주체는 사람이었습니다. 선거 후 윤석열 대통령은 새로운 총리와 비서실장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재가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을 쓰지 않은 통치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한국 경제가 맞닥뜨리고 있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낼 능력을 갖춘 인물이 추천되길 기대해 봅니다. 대통령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지키고 의대정원 확대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현안을 풀어낼 인물이면 좋겠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