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7일(1413.5원) 이후 약 17개월 만의 ‘순간’을 담으려는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건 대한민국의 금융 역사에서 몇 번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과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 그리고 이날. 총 4차례에 불과했다.
1400원의 공포는 상당했다. 국내 신용위기가 아니면 글로벌 위기 국면에서나 볼 수 있는 숫자였다. 2024년 4월 총선이 끝난 후 한국 경제는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고물가의 시작,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그러니까 모든 시작은 이 구호에서 출발한다. 8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2016년 11월 8일 밤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제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했다.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 ‘MAGA’는 세계화와 맞물린 자유무역과 국경을 넘는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주를 비판하는 게 핵심이었다. 당시 선진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가 선진국 내 불평등과 빈곤층을 확산하고 있다’는 회의론이 쏟아져 나올 때였다. 노동이민과 자유무역으로부터 미국 시민(러스트벨트의 백인 기층민)을 보호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은 상상 이상의 힘을 얻었다. ‘미국 물건을 사라, 그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
이날 미국 대선의 결과는 곧 유럽과 북미 지역 그리고 아시아 지역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로 번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트럼프에 이어 미국 대통령에 오른 조 바이든은 의원 시절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더 강경하게 이어갔다.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연 ‘반도체 대응 최고경영자(CEO) 화상 정상회의’는 한국이 미국의 공급망 문제에 중요한 일원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웨이퍼를 집어 들며 반도체를 미국 기반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삼성전자)과 대만(TSMC)이 있었다. 미국 기반 사업으로 키우려면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하에 해외 기업의 생산공장을 미국 본토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코로나19에 따른 반도체 등 핵심 부품 공급 차질과 중국의 성장은 이 같은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도 대만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뿐 아니라 ‘칩스법’으로 불리는 반도체법을 잇따라 발표하며 전 세계 설비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백악관은 지난해 11월 “‘바이드노믹스’의 영향으로 전 세계 국가들이 미국으로 모여들고 있다”며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의미한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무려 2000억 달러(약 258조6000억원)에 가까운 투자가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아태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 중심에 한국 기업이 있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삼성SDI, 한화큐셀과 LG화학, 씨에스윈드 등. 백악관 측은 “특히 한국 기업의 최근 대미 투자 규모는 아태 지역 투자의 4분의 1을 넘는 최소 555억 달러(약 71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아태 지역의 투자금은 미국 전역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미국 제조업의 부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2022년 한 해에만 한국 기업이 미국에 만든 일자리는 3만5000여 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공급망 재편으로 이뤄낸 미국의 성과는 황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임 2년 동안 350만 개의 일자리가 나왔고, 미국 제조업은 활황을 맞이했다.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제조업 관련 건설 지출은 사상 최대인 1080억 달러(약 142조원)를 기록했다. 공장 건설 지출이 학교나 의료센터, 사무실 건물보다 더 많았다. 신설 공장의 절반가량은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관련 산업이었다.
크리스 스나이더 UBS 애널리스트는 “2022년 미국의 생산능력은 2015년 이후 가장 강력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여기엔 미국 정부의 각종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 대규모의 재정지출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기간 한국이나 대만 내에서 이뤄진 대규모 투자는 거의 없었다. 고금리 촉발한 인플레이션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이어진 ‘아메리카 퍼스트’는 미국 경제에 빛과 어둠을 동시에 가져왔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021년 11월 전년 대비 6.8% 상승하며 3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위해(또는 정권 창출을 위해)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무리한 경제 부흥책을 쏟아낸 결과였다.
경기부양을 위해선 재정지출과 통화완화 정책이 모두 필요했다. 미국 기준금리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2020년 3월 1.25%에서 1.00%포인트 인하한 0.25%로 조정된 이후 무려 2년간 동결됐다. 사실상 ‘제로 금리’였다.
정부의 재정지출도 막대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트럼프 감세’와 팬데믹을 만나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IMF에 따르면 미국 정부 부채는 2019년 GDP의 108.8%에서 2020년 134.5%로 늘었다. 코로나가 직격타였다. 2020년에는 GDP의 14.9%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2020년 GDP가 20조8937억달러(약 3경원)이므로 재정적자가 GDP의 1%만 발생해도 300조원이 넘는 적자가 쌓인다. 천문학적인 빚이었다.
IMF가 나서 미국의 재정적자에 경고등을 켰지만 트럼프의 뒤를 이은 바이든도 ‘제조업의 르네상스’와 ‘녹색경제’에 각종 보조금 지급을 펴 재정지출을 더 줄일 순 없었다.
정부는 돈을 풀고, 한국과 대만에서 대규모 시설투자 자금이 들어오자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오르기 시작했다. 인건비가 대표적이다.
물가가 급등하자 Fed가 등판했다. 2022년 1월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미국 경제에 더 이상 부양책이 필요하지 않다”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우리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다.
Fed의 제1의 목표는 물가안정, Fed가 정한 미국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2%다. 6.8%에서 2%까지 갈 길은 멀었다. 2%에 맞추려면 강한 긴축이 필요했다. Fed에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인 FOMC는 2022년 3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2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제로 금리’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
조정은 가팔랐다. ‘빅스텝(0.5%p)’에도 물가가 잡히지 않았다. 금리인상이 한창이던 2022년 6월 CPI는 무려 전년 동월보다 9.1% 상승했다. 1981년 11월 이후 41년 만의 최고치였다. Fed도 4연속 자이언트 스텝(0.75%p)으로 나는 물가를 쫓았다. 2022년 1월 0.25%에서 시작한 금리인상은 2023년 7월 5.50%가 되어서야 멈춰섰다. 이 달(2023년 7월)의 CPI는 3.2%였다.
목표치인 2%는 요원했다. 하지만 금리인상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Fed는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대신에 동결을 선택했다. 매파와 비둘기파가 Fed 위원들의 한마디에 설전하는 동안 시장은 금리인하에 기대를 걸었다.
FOMC도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 12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기준금리가 이번 긴축 사이클의 고점이거나 고점 부근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만큼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시장은 6월 금리인하에 무게를 뒀다. 미국의 금리 추이를 예측할 수 있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는 Fed가 6월 첫 번째 금리인하를 시작해 올해 0.25%포인트씩 총 4번(총 1%포인트) 낮출 확률이 가장 높다고 예상했다. 6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58.2%까지 치솟았다.
시장의 기대가 무너진 건 4월 10일 공개된 미국의 3월 물가 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면서다. 이날 미 노동청은 3월 CPI 상승률이 3.5%로 2월(3.2%)에 비해 0.3%포인트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시장 전망치(3.4%)도 넘어섰다.
Fed의 금리인하 시점이 6월보다 더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페드워치에 나타난 6월 기준금리 동결 확률은 81.1%로 뛰었다. ‘끈적거리는’ 미국 인플레이션 우려에 미 국채금리는 치솟고, 상승하던 뉴욕증시 주요 지수 선물은 곧바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완벽한 ‘쇼크’였다. 고유가로 이어진 전쟁의 일상화미국 Fed를 따라 한국은행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고물가’와 ‘고금리’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 세계경제를 강타하는 또 다른 전쟁이 발발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이다.
이날의 전쟁으로 2020년 4월 ‘마이너스 유가(세계적인 원유 수요 감소와 맞물린 공급과잉으로 인해 원유 선물 가격 급락)’ 사태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던 국제유가(브렌트 기준)는 침공 직후 배럴당 100달러 선을 돌파했다.
그해 3월 8일엔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석탄을 수입 금지한다고 발표하면서 유가는 127.98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다. 유가 상승은 곧 물가의 상승. 미국이 연이은 빅스텝(0.5%p)으로 기준금리를 올려도 ‘고유가’에 미국 CPI가 전년 대비 8~9%에 달하던 때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이 유가의 상승폭보다 더 급격했다. Fed가 자이언트스텝(0.75%p)을 단행하면서 유가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금리인상이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면 달러로 거래되는 원유값은 하락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수가 있었다. 전쟁의 일상화다. 물가를 잡기 위한 미국의 노력으로 유가는 잡히는 듯했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어 중동에서 파열음이 났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2023년 10월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2024년 1월엔 예멘의 홍해 사태가 발발했다.
그때마다 유가는 뛰었다. ‘2%’ 물가안정의 목표치로 가기 위한 Fed의 노력도 번번이 헛수고로 돌아가야 했다.
2024년 4월 미국 기준금리의 향방을 결정지을 CPI도 전쟁의 변수 앞에 놓여 있다. 지난 4월 13일(현지 시간)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에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 한번 고조되고 있다. 이날 유가는 장중 배럴당 92.18달러까지 상승했다. 전쟁이 확전되면 국제유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인근 해협이 봉쇄되면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3월 CPI 쇼크’를 받은 미국으로선 고유가는 치명타다. 이란의 보복 공격이 예고되었으므로 리스크가 선반영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씨티의 상품 전략팀장인 막시밀리언 레이튼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미 유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브렌트유 단기 전망치를 기존 80달러에서 88달러로 상향하는 데 그쳤다.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보복 공습에 맞서 이란 본토에 대한 재보복을 감행했다. 계속된 변수다. 고환율이 강타한 한국 세계 경제가 이 모든 일에 취약했지만,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치명타를 입었다. 4월 16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돌파한 건 3월 CPI 쇼크와 이란·이스라엘의 전쟁이 주원인이었다. 고금리에 고물가, 고환율까지 겹치며 ‘신(新) 3고(高)’ 위기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상승 요인은 복합적이다. 이면에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서부터 시작된 미국의 재정지출,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상이 있었다.
한국 기업이 대미 투자에 최소 555억 달러(약 71조8000억원)를 투입하는 동안 한국의 설비투자는 위축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3년 10월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9.7% 줄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KDI는 “반도체 경기 반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재고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관련 설비투자 수요가 제한됐다”며 “여타 기계류도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부진이 지속됐다”고 진단했다. 동일한 고금리 상황에서 미국 반도체 시장의 설비투자 붐이 일어난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반면 대미 투자의 급증은 달러 수요를 증가시켰다. 실제 바이든이 집권 중인 2021년부터 2024년 3월 말까지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점점 감소세를 보였다. 2021년 말 4631억 달러에서 2024년 3월 말 4192억 달러로 439억 달러 줄었다. 물론 이를 대미 투자의 영향으로만 볼 순 없다.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보유 중인 다른 나라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 영향도 크다. 특히나 한국은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2023년 7월 2%포인트로 벌어져 지금까지 사상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최소 555억 달러가 대미 투자에 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하면 환율의 상승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미 간 희비는 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미국 경제는 2.5% 성장하며 한국(1.4%)을 앞질렀다. 경제규모가 한국보다 약 15배나 큰 미국의 성장률이 한국을 앞지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거대한 외부 충격이 가해진 예외적 시기(1998년, 2009년, 2020년)를 빼면 한국의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 적이 없다. 이를 두고 지난해 일본의 한 경제지(머니1)는 ‘한국은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을 정도다.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는 시기에도 강력한 고용과 소비를 바탕으로 ‘경제 호황’에 몸살을 앓는다면 한국은 정반대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은 회복하고 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소비 둔화, 저출산과 고령화에 불황의 파고가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은 안 그래도 사과, 대파, 양배추 등 농산물값의 고공상승으로 ‘고물가’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를 휘청이게 할 최대 변수다. 시장에서는 총선 이후 미뤄뒀던 ‘전기·가스요금’ 인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내 금리인하를 저울질해야 할 한국은행의 고심도 깊어졌다. 가계부채와 저성장,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여전하다는 점은 금리 조정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4월 10차례 연속 동결을 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금리인하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며 “한은도 반드시 미국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비자물가상승률과 환율 영향 등 국내 요인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지난해보다는 커졌다. 미국이 피벗 시그널을 준 상황에서는 국내 물가상승률에 대한 고려가 더 크기 때문에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도 뒤에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민감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원화가치가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시장은 원화를 내다팔았다. 환율은 또 뛰었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이 선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별로 없어 보인다. 금리를 올릴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금리는 계속 동결됐다. 결국 시장의 눈은 다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로 쏠린다. 대선 그리고 딜레마3월의 CPI 쇼크와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커진 뒤 시장에서는 미국 기준금리가 더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는(higher for longer) 상황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파월 의장도 입장을 바꿨다. “(금리 인하란) 더 큰 확신을 갖기까지 멀지 않았다(not far)”고 말했던 그는 지난 4월 16일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3달간 물가 지표마저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파월 의장도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기존 정책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현재의 긴축적인 통화정책 수준을 필요한 만큼 길게 유지할 수 있으며, 동시에 노동시장이 예상 밖으로 위축된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상당한 완화 여지를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진전을 보일 때까지 현 5.25∼5.50%인 기준금리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증가로 국채 발행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시장을 더욱 억누르는 요소다. 미국 재무부는 5월에 3860억 달러가량의 국채를 추가로 매각할 예정이다.
가뜩이나 재정적자를 줄이기 어려운데 오는 11월은 미국 대선이 있다. 월가에서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국채 발행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초 누구나 예상했던 정치가 경제를 좌우하는 ‘폴리코노미의 습격’이다. 월가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알리안츠그룹 고문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 또한 주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타이트한 노동시장과 같은 공급망 압력이 경제의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미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서도 미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는 ‘노랜딩(no landing·무착륙)’ 시나리오가 힘을 받는다.
Fed의 금리인하가 부적절하다고 계속 지적해온 월가의 구루들은 연내 금리인하 시나리오에 고개를 내젓는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다음 Fed의 조치는 ‘금리인하’가 아닌 ‘금리인상’일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인상 가능성은 15~25%”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데이터로 볼 때 6월에 금리를 내리는 것은 지난 2021년 여름 Fed가 저지른 오류에 필적하는 위험하고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지금 당장 금리인하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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