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신 3고' 쇼크 : 상업용 부동산 위기]
"커피만 마시고 집에 가요"…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 국내 증권사 덮쳤다[‘신 3고’ 쇼크]
지난해 미국 직장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했다. ‘커피 배징(coffee badging)’.

사무실에 출근해 커피 한 잔만 하고 직원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출근 후 커피 한 잔이 마치 ‘출근 도장’처럼 여겨진다고 해서 ‘커피 배징’이라고 불린다.

코로나19 엔데믹 후 미국은 재택근무를 끝내는 분위기다. 대부분 기업들이 주 3일 이상 출근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출근일수’만 명시할 뿐 사무실에 출근해 근무하는 시간은 자율에 맡겼다.

직원들은 이를 이용했다. 출근 후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 재택근무를 하는 ‘커피 배징’이 유행하게 된 배경이다. 이 문제는 CNBC, 포브스 등 유력 매체에서 다룰 정도로 미국 내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커피 배징’은 초호황인 미국에서 상업용 부동산이 왜 위기에 처했는지를 설명해주는 한 장면이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서는 재택근무가 일상화됐다. 부동산 펀드회사 더라이너스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뉴욕 맨해튼 직장인 중 주 5일 사무실에 출근하는 비율은 9%에 불과했다.

회사는 굳이 직원도 없는 넓은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작은 공간으로 옮기거나 공유오피스를 사용하는 기업이 늘었다. 미국에서는 ‘사무실의 종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무실 공실이 발생하자 임대료는 큰 타격을 입었고 금리인상까지 이어지면서 미국 상업용 부동의 가치는 뚝뚝 떨어졌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지수는 고점(2022년 4월) 대비 22.5% 하락했다.

올해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커피 배징’이 유행할 정도로 미국 근로자들이 사무실 출근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올해 최대 19.8%로 정점에 이를 예정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와 별 차이가 없는 수치다. 9일 만에 완판됐던 첫 공모펀드, 눈물의 손절
"커피만 마시고 집에 가요"…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 국내 증권사 덮쳤다[‘신 3고’ 쇼크]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위기는 태평양 건너 한국까지 흔들었다. 몇 년 전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미국, 유럽 등 해외 상업용 부동산에 눈을 돌렸다. 부동산 활황기에는 한 건물을 두고 여러 기관이 뛰어들어 경쟁하기도 했다.

이를 공모펀드로 만들어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팔았다. 9일 만에 완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상업용 부동산 하락이라는 변수에 부딪혀 역풍을 맞았다.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국내 최초 공모펀드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 9-2호’는 지난 3월 21일 만기가 돌아와 반토막이 난 수익률로 청산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 실패는 미래에셋만의 일은 아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월 18일 기준 운용 중인 공모 해외부동산은 32개(리츠·재간접 제외) 중 22개 펀드가 최근 1년 수익률이 손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설정액은 2조3000억원이다. 이 중 개인투자자들의 돈은 1조원가량 들어가 있다.

가장 손실이 극심한 펀드는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 ClassA’로 81.72% 손실을 보고 있다.

이지스글로벌 229는 미래에셋과는 달리 손실을 확정짓지 않고 대출과 만기를 연장하면서 버티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반등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최근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강해지고 있어 경기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증권사 해외 부동산 위험노출액 13조원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인 공모도 문제지만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들의 자체 손실도 피할 수 없다.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증권사들의 주요 수입원인 수수료 수익이 1조원 넘게 감소했다. 특히 부동산 등 투자은행(IB) 부문 수수료가 1조5619억원 줄면서 타격을 줬다. 해외 부동산 투자 부실로 인한 대손상각비용 등도 늘었고 고금리 장기화 여파로 조달 비용이 상승한 것도 실적 감소에 영향을 줬다.

금감원에 따르면 전체 금융사가 북미 지역 부동산에 투자한 금액은 34조5000억원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액의 절반이 넘는 61.1%를 차지했다. 다음은 유럽으로 총 10조8000억원(19.2%)의 투자금이 몰렸다.

손실 인식이 적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모두 13조원인데 이 중 대형사가 차지하는 금액이 11조원이다. 김예일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일부 증권사는 자기자본 대비 해외 부동산 투자 비중이 높은데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대한 손실 인식 규모가 전체 투자금의 20~30%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유럽 등 오피스 투자 비중이 절반에 달해 추가 손실 부담이 여전히 높은 편이다”고 경고했다.

앞서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바 있다.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하향될 경우 향후 신용평가사의 판단에 따라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 S&P글로벌은 등급 전망 하향 이유로 부동산 업황 악화로 인해 한국 증권사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부동산 PF는 더 큰 문제해외 부동산보다 더 큰 문제도 남았다. 증권사들이 보유한 부동산 PF 대출을 두고도 경고음이 잇따른다. 4·10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내 신용평가사 세 곳은 부동산 PF 부실 관련 보고서를 발간했다.

우선 한국신용평가는 부동산 PF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내놨다. 증권사만 보면 최종 손실 위험이 높은 PF 대출 규모만 4조8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증권사 부동산 PF 익스포저 규모가 작년 9월 기준 본PF와 브리지론 대출에서 각각 19조5000억원, 10조6000억원으로 모두 30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상 부동산 PF대출은 크게 본PF와 브리지론 단계로 나뉘는데, 본PF 시행 전 단기간 자금을 빌리는 것을 브리지론이라고 한다. 브리지론이 제때 조달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가 전면 백지화되기도 한다. 한신평은 손실 위험이 매우 큰 PF대출 규모가 전체 브리지론의 46%를 차지하는 4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또 부동산 경기 시나리오별로 PF 부실 규모를 분석한 결과 스트레스 1단계인 연착륙 때 최소 4조6000억원, 2단계 경착륙 때 5조7000억원, 3단계 위기 때는 최대 7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김예일 수석애널리스트는 “부동산 PF 위험은 중소형사에 집중돼 있다”며 “대형사는 지난해 4분기 대규모 충당금 적립이 이뤄졌고 사업 능력이 우수해 앞으로 리스크는 예측과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지만 중소형사는 사업 기반 위축도 크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