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광객 수 회복 추세, 팬데믹 전보다는 적어
얼어붙은 한중관계 영향, LLC에 집중돼

김포국제공항 남방항공 창구에서 승객들이 탑승 수속을 밟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김포국제공항 남방항공 창구에서 승객들이 탑승 수속을 밟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국내 항공사들이 여행 수요 회복을 기대하며 팬데믹 이후 끊겼던 한·중 하늘길을 다시 열고 있다. 다만 과거처럼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방한을 기대하기 힘들어 팬데믹 이전 수준의 관광 수요 확보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내수 부진에 빠진 중국 정부도 해외여행보다는 중국 내 관광지를 띄우면서 국내여행을 독려하는 분위기다. 운항 재개가 본격화되자 중국 주요 공항으로부터 낮 시간대에 이착륙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국내 저가항공사(LLC)들의 ‘슬롯’ 확보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운항 재개하는 항공사
대한항공은 지난 4월 24일부터 주 4회 인천~정저우 노선의 운항을 재개했다. 중국 정저우는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타이항산 대협곡이 자리하고 있는 유명 관광지다. 또 4월 23일부터 인천~장자제 노선을 주 3회 운항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중국 관광지인 장자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대한항공은 한국~중국 간 여행 수요가 점진적으로 회복돼 간다는 판단에 따라 다양한 노선에 추가 운항을 지속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도 하계 스케줄을 시작하면서 한국과 중국 간 27개 노선을 증편 및 운항 재개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톈진·청두·시안·충칭·선전 5개 노선을 재개했고 상하이, 광저우, 옌지 등 10개 노선은 증편했다.

LLC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티웨이항공이 지난 3월 25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 다싱~인천 노선을 신규 취항했다. 현재는 운항을 하지 않고 오는 9월부터 주 3회 운항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방침이다. 티웨이항공에 이어 제주항공도 4월 24일부터 주 4회 다싱~제주 노선 운항에 돌입했다. 이와 함께 주 4회 다싱~인천 노선 운항도 시작할 예정이다. 제주항공은 이 밖에도 4월 24일 무안∼장자제 노선 운항을 시작했고 26일과 27일에는 제주∼시안, 무안∼옌지 노선에 각각 신규 취항하는 등 한국과 중국을 잇는 항공편을 늘리고 있다. 이스타항공도 4월 19일 약 4년 2개월 만에 인천~상하이 노선의 운항을 재개했는데 첫편 탑승률은 97%를 기록했다. 아직은 더딘 여객 수
올해 1분기 인천과 베이징을 오가는 항공편을 이용한 전체 여객 수는 14만9165명으로 집계됐다. 여행 재개가 본격화되기 전인 작년 1분기 2만1000여 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팬데믹 전인 2019년 1분기 27만1568명와 비교해 45.1% 줄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조금씩 여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금 슬롯을 확보해 놓아야 추후 양국 왕래가 본격화할 때 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 여행업계에 따르면 2분기 들어 여행객 회복세가 더 가파른 상황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중 여행객의 회복세가 더딘 것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현저하게 줄어든 요인이 크다는 평가다. 사드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의 단체 방한이 크게 감소한 게 대표적이다.

중국인의 소비 형태가 달라진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따이궁으로 불리는 중국 보따리상이 한국 면세점과 명동 상권의 큰손이었지만 사드 사태와 팬데믹을 거치면서 따이궁의 방문이 급감했다. 대신 한국산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입하거나 현지 제품으로 대체하는 변화가 빨라졌다.

특히 중국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중국 내 인기 관광지를 띄우고 있다. 지난해 청명절 연휴를 앞두고는 산둥성에 위치한 공업도시 쯔보가 벼락 관광지로 떠올랐다. 올해 초 빙등축제 전후로는 하얼빈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근에는 인구 300만의 소도시 톈수이가 각광받고 있다. 쯔보나 톈수이 등 소도시가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내수 부진으로 어려운 지역경제를 부흥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가 깔렸다는 시각이 많다. 쯔보에선 개당 2위안에 불과한 양꼬치를 각종 야채와 전병에 싸서 먹는 쯔보 바비큐가 히트를 쳤고, 톈수이도 지역 특산 고추와 식초 등을 넣은 특색 마라탕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었다.

한국인 관광객의 중국 방문 감소도 여러 요인이 중첩된 결과다. 우선 비자 문제가 걸림돌이다. 30일짜리 관광비자를 직접 신청하면 복잡한 서류작성을 해야 하고 약 4만5000원의 비용과 4~5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반간첩법 강화와 반중 정서 확산 등도 중국 기피 현상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탈(脫)중국’ 현상도 한·중 간 인적 교류가 줄어든 원인 중 하나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중국 경기 악화 등의 여파로 인해 중국 사업을 축소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현지 신설 한국 법인 수는 205개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3년 834개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수치다.

다만 중국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개인 여행객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들이 과거 단체관광객들과 비교해 소비 성향이 크지 않지만 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류를 활용한 문화 콘텐츠와 미용 등 중국 젊은층에게 통하는 관광상품 개발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순탄치 않은 국내 항공사 행보
최근 국내 항공사들이 한·중 하늘길을 재개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는 후문이다. 운항 재개를 위해선 중국 시정부와 공항, 항공당국을 모두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국 공항들은 운수권을 보유한 항공사라 하더라도 선호 슬롯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운수권은 특정 노선에 취항할 권리를 의미하고 슬롯은 시간당 이착륙할 수 있는 횟수를 뜻하는데 슬롯이 없으면 운수권이 있어도 의미가 없다. 슬롯을 부여하더라도 저녁 시간대 비선호 슬롯을 한국 항공사에 부여하면 여행 편의가 크게 줄어 항공사 수익에도 직격탄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로커들도 활개를 친다. 주로 전직 항공당국 관계자들이 포함된 여행사가 국내 항공사와 중국 항공당국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돈을 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선호 슬롯을 얻어내는 대신 할인된 가격으로 좌석 수를 확보한다. 3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베이징~인천 노선 항공권을 10만원대에 얻는 식이다. 항공사는 여행사에 헐값에 넘기는 만큼 수익이 감소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슬롯 확보를 위해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자금 탓에 중국에서는 구조적으로 수익을 보기 매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공항들이 운수권이 있는 중국 항공사에 선호 슬롯을 제공하면서 중국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과 대조적이어서다. 형평성의 원칙에 맞지 않다는 의미다. 항공사들이 슬롯 확보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고스란히 항공료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 관계자는 “주로 저가항공사가 겪고 있는 문제라 정부 차원의 대응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며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