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 나스 엑스 앰버서더로 발탁하는 등 Z세대 맞춤 전략 펼쳐
지난 10년간 사용해온 슬로건도
‘접근 가능한 럭셔리’에서 ‘표현력 있는 럭셔리’로 변경
1970년대 제품 재해석한 ‘태비백’ 인기 끌며 반등 성공
최근 들어 코치의 위상이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Z세대 쿨걸템’(패션을 좋아하고 트렌드를 좇는 젊은층이 선호하는 아이템)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코치는 어떻게 180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을까. ◆ Z세대 쿨걸템 ‘젠지를 위한 새로운 쿨걸 브랜드.’
코치가 새로 얻은 별명이다. 수년간 판매 부진을 겪은 코치가 Z세대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업체 어니스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25세 미만 소비자들이 코치에 사용한 비용은 전년 대비 10% 늘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은 대대적인 변화의 결과”라며 “Y2K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코치의 이미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22년 9월 미국 유명 흑인 래퍼인 릴 나스 엑스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하면서다. 당시 토드 칸 최고경영자(CEO)는 “릴 나스 엑스는 현실에서 용기를 내는 Z세대를 표현하는 인물”이라고 앰배서더 발탁 이유를 설명했다. 릴 나스 엑스는 가수 데뷔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플루언서로 유명했고 가수 데뷔 후에는 동성애자 정체성과 관련된 곡을 발표하는 등 미국 Z세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코치는 브랜드의 슬로건을 ‘접근 가능한 럭셔리’에서 ‘표현력 있는 럭셔리’로 변경했다. 소비자들이 명품을 판단할 때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최근 들어서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등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코치를 운영하는 미국 뉴욕 기반의 다국적 패션 회사 태피스트리의 조앤 크레보세랏 CEO는 “머지않아 MZ세대가 명품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며 “표현력이 좋은 럭셔리는 우리의 비전을 대표하며 우리 성장 전략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Y2K 전략도 통했다. 1970년대 제품들을 재해석한 ‘태비백’을 선보인 게 흥행했다. 특히 패딩 재질의 소재를 사용, 베개처럼 푹신하다는 뜻의 ‘필로우 태비백’이 Z세대들의 관심을 끌면서 트렌드를 선도했다. 실제 코치가 필로우 태비백을 출시한 이후 유명 명품 브랜드인 로에베, 프라다, 릭오웬스, 보테가베네타 등도 비슷한 패딩 재질의 가방류를 선보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코치에 따르면 2022년 9월 이후 2년간 북미 지역에서 약 800만 명에 달하는 신규 고객을 유치했다. 크레보세랏 CEO는 “럭셔리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도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환경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따라가는 능력이 오래된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라는 의미다. 패션전문지 BoF는 “코치는 지난 10년간 잘못된 결정을 했지만 마침내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으로 큰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치의 인기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태피스트리의 매출은 2019년 60억2710만 달러(약 8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66억6090만 달러(약 9조800억원)로 10.5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억1410만 달러(약 1조1100억원)에서 11억7240만 달러(약 1조6000억원)로 44% 급증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코치의 별도 영업이익은 전체 영업이익을 크게 웃도는 15억2990만 달러(약 2조800억원)를 기록했다. 특히 여성용 액세서리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10억 달러(약 1조3500억원)를 돌파하기도 했다.
태피스트리는 코치를 앞세워 2025년까지 매출 8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코치의 별도 매출은 57억 달러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 죽지도 않고 또 살아난 코치코치는 또다시 살아났다. 유럽 명품에 밀린 1990년대, 올드한 이미지가 부각된 2010년대 등 두 차례의 하락을 겪고도 최근 다시 회생에 성공했다. 심지어 ‘Z세대’가 사랑하는 브랜드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코치는 1941년 뉴욕 맨해튼 공방에서 가죽 장인 여섯 명이 함께 만든 브랜드다. 1946년 가죽제품 제조업자인 마일즈 칸과 그의 부인 릴리안 칸이 이 공방에 합류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남성용 제품만 선보였으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것을 빠르게 포착해 1961년부터 여성용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회사 이름을 ‘코치 레더웨어 컴퍼니’로 변경했다.
코치가 빠르게 성장한 핵심은 ‘보니 캐신’이다. 1962년 마일즈 칸은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보니 캐신을 코치의 초대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캐신은 1960년대 뉴욕의 정신인 현대적인 자유와 평등 등을 표현하기 위해 실용적인 핸드백 라인을 선보였고, 이때 만든 제품들이 인기를 얻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후 코치는 매디슨 애비뉴에 첫 매장을 오픈했고 가족이 운영하는 가죽 공방을 넘어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됐다. 2000년 ‘C’ 문자를 대표 로고로 앞세운 ‘시그니처 컬렉션’을 발매하며 지금의 코치를 완성시켰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으나 1990년대 들어 프리미엄과 초고가를 앞세우는 유럽 명품들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자 ‘접근성 높은 명품’을 표방하는 합리적 가격의 미국 브랜드 코치 입지는 좁아졌다. 단순한 디자인에 실용적인 가방을 내놓은 것도 인기를 끌지 못하는 원인이 되면서 젊은층이 선호하지 않는 브랜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코치가 살아난 것은 새로운 디자이너의 영향이다. 1996년 타미힐피거, 폴로 랄프로렌 등을 거친 리드 크라코프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영입하고 2001년 ‘C 로고’를 선보이면서 다시 살아났다. 이때 도입한 슬로건이 지난 20년간 활용해온 ‘접근 가능한 럭셔리’였다. 크라코프는 파피 라인 컬렉션 등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제품을 대거 선보이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C 로고를 활용한 시계, 주얼리 등 액세서리류가 인기를 얻으면서 코치는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을 두 번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코치는 더 이상 ‘엄마의 코치’가 아니다”, “코치를 액세서리 강국으로 만들었다” 등의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코치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다시 하락세가 시작됐다. 2011년부터 마이클 코어스, 케이트 스페이드 등 코치보다 조금 더 저렴한 브랜드들이 인지도를 높이면서 중저가 명품 시장의 경쟁이 심화됐고 코치의 시장점유율은 2011년 19%에서 이듬해 17%대로 떨어졌다.
현지 언론들은 앞다퉈 ‘코치는 어떻게 명품 지위를 잃었나’, ‘딜레마에 빠진 코치’ 등을 보도했다. 2013년 파이낸셜타임스는 “코치의 성장은 지난해 말부터 둔화되기 시작했다”며 “천으로 된 코치 스타일은 낡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은 더 세련된 마이클코어스 제품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했다. 2014년 포브스 역시 “마이클코어스는 매출이 늘고 있는데 코치는 줄어들고 있다”며 “아웃렛 이미지로 코치의 매력은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위기 의식을 느낀 코치는 2013년 9월 영국계 디자이너 스튜어트 베버스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했지만 상황은 나이지지 않았다. 2016년 미국 유명 배우 겸 가수 셀레나 고메즈를 창립 75주년 기념 앰배서더로 발탁하고, 이듬해 경쟁사 케이트 스페이드를 인수하는 등 꾸준히 사업을 확대하며 2020년대 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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