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전기차 전환 준비 아직 안돼
비싼 가격, 충전소 부족 등 여전히 문제
최근 전기차 시장을 논할 때 어김없이 따라붙는 수식어다. 캐즘이란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과 맞는 단어다.
그렇다면 전기차가 캐즘을 극복하는 시기는 언제가 될까.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5년 이내엔 전기차 시대가 오지 않겠냐는 전문가가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10년,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기차가 확산되기 위한 준비가 확실히 덜 됐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전기차 가격부터 충전인프라까지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들은 차고 넘친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전기차 값이다.
많은 이들이 차량을 구매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예산이다. 최근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다 결국 가솔린 차량을 산 김가흔 씨 역시 “비싼 가격 때문에 결국 가솔린 차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격 낮췄지만 여전히 먼 당신‘2735만~2955만원.’ 네이버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면 나오는 기아 레이 EV 가격이다.
여기에 보조금(레이 기준 약 500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최소 2000만원 이상을 줘야 한다. 레이 가솔린 모델 값이 1330만~1865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전기차의 가격대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경차로 전기차를 살 바엔 중고로 수입 세단을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전기차 구매를 포기했다”는 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 각국의 보조금 정책에 따라 엇갈리겠지만 기본적으로 전기차 값이 높게 책정된 건 해외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전기차가 비싼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높은 배터리 가격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직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차량 가격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아직 생산 대수가 적다. 그러다 보니 배터리 역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내지 못해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비용 문제는 단순히 차량 가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기차 오너 드라이버들의 진짜 고민은 차량 구매 후에 시작된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수리비가 비싼 것으로 악명이 높다.
수리 과정에서도 가장 애를 먹이는 것은 단연 배터리다. 운행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배터리 성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교체해주는 것만이 답인데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자동차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전기차 배터리 교체에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는 후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모든 장치들이 전자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잔고장 또한 많으며 내연기관차보다 출력이 좋고 차체가 무거워 타이어나 브레이크 패드 등 소모품의 교체 주기도 훨씬 빠르다.
다만 당장 큰 문제인 배터리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해결될 전망이다. “전기차 대수가 늘어나는 데 맞춰 배터리 생산량도 늘면서 최근 배터리 가격은 과거보다 훨씬 낮아지는 추세다”라고 한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중국산 저가 배터리를 탑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테슬라, 볼보, 현대차 등이 기존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이른바 ‘반값 전기차’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가격이 싼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해결할 것예산이 넉넉해 비용 걱정이 없는 이들에게는 부족한 충전소 때문에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이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는 이유로 지목된다. ‘레인지 앵자이어티(range anxiety)’. 전기차 운행을 하다가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되는 것을 걱정하면서 발생하는 정신적 피로와 스트레스를 표현한 신조어다.
전기차의 배터리 성능 개선으로 주행거리가 크게 늘어나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전기차 오너들은 레인지 앵자이어티를 겪고 있다.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입 브랜드 전기차 구매를 고려했던 김주홍 씨도 이런 이유에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전기차 모델이 디자인도 예쁘고 주행거리도 길어서 사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아직 충전소 때문에 전기차는 아직 불편하다는 조언을 듣고 생각을 고쳐 먹게 됐다”고 말했다.
충전소 부족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및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전기차 충전기 보급 대수는 약 30만 대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수가 약 54만 대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그동안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늘어난 전기차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생한 결과다.
이를 해결하는 것 역시 시간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충전기 수를 123만 대로 확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 등 완성차 업계를 비롯해 정유사들도 전기차 충전소 구축에 힘을 쏟을 예정이라 실제로 전국에 설치된 충전기 수는 정부 목표치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확산을 막는 마지막 걸림돌은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다. 특히 배터리 화재사고가 종종 들려오며 ‘아직 전기차는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을 소비자들에게 갖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전기차는 한 번 화제가 발생하면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배터리는 충격을 받을 경우 자칫 온도가 급상승해 ‘배터리 열폭주’가 나타날 수 있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는 겉면이 철재로 싸여 있다. 소화제가 불길에 닿기 어려워 진화도 힘들다. 그러나 실제로 전기차에서 이런 화재가 날 가능성은 내연기관차보다 낮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가 화재가 더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가격 하락, 인프라 확충과 함께 전기차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 다시 ‘전기차의 봄’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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