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4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벅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 사람들은 버핏의 혜안을 듣기 위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웠다. 이날 주총은 생중계로 전세계에 전파됐다. 사진=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벅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 사람들은 버핏의 혜안을 듣기 위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웠다. 이날 주총은 생중계로 전세계에 전파됐다. 사진=연합뉴스
“찰리?”

지난 5월 4일(현지 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벅셔해서웨이(이하 벅셔) 연례 주주총회에서 워런 버핏 벅셔 회장은 습관처럼 그의 파트너이자 친구인 고 찰리 멍거를 찾았다.

이날은 멍거가 지난해 11월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여는 첫 주총이었다.

버핏은 주총장에서 자신과 나란히 앉은 그레그 아벨 벅셔 비보험 사업부문 부회장을 가리키며 실수로 ‘찰리’라 불렀다. 찰리의 의견을 물을 때마다 그의 이름을 불렀던 버핏의 습관이 툭 튀어 나온 것이다. 아벨은 웃으며 “큰 영광”이라고 답했고 버핏은 “찰리를 부르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이렇게 실수를 하게 됐다”고 멋쩍어했다. 생중계를 지켜본 이들이 꼽은 주총 최고의 장면이다.

올해 나이 94세(1930년생). 이날 ‘오마하의 현인’은 주주와의 질의응답을 끝낸 뒤 “내년에도 여러분이 오길 바라지만 내년에 저도 왔으면 좋겠군요”라며 웃었다. 장내는 기립박수가 터졌다. 여느 때보다 특별했던 주총, 다음은 눈물과 웃음이 함께했던 이날의 기록이다.

생중계 장면의 요약 및 번역은 챗GPT의 도움을, 해설에는 박소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가 쓴 ‘2024년 주주총회 참관기’ 리포트를 참고했다.
4일 열린 주총에서 워런 버핏 회장(왼쪽)이 그레그 아벨 벅셔 부회장과 함께 주주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아벨 부회장을 공식 지명했다. 사진=CNBC 캡처
4일 열린 주총에서 워런 버핏 회장(왼쪽)이 그레그 아벨 벅셔 부회장과 함께 주주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아벨 부회장을 공식 지명했다. 사진=CNBC 캡처
① 애플 지분 13% 감소“나도 애플을 판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세금 때문일 가능성이 크고 기업에 대한 장기 전망이 변한 것은 아니다.”

이날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벅셔의 애플 매도 건이었다. 안 그래도 애플 중심의 ‘M7’ 쏠림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때였다. 작년 4분기와 비교해 올해 1분기 벅셔의 주식 포트폴리오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345억 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392억 달러), 코카콜라(245억 달러), 셰브론(194억 달러) 등 4개 종목은 주가 상승으로 평가이익이 증가한 반면 애플(1354억 달러)은 13% 감소했다. 직전 분기에는 1743억 달러였다.

최근 애플의 주가 하락도 원인을 제공했지만 벅셔가 상당 부분 차익을 실현하면서 포트폴리오에서 애플 비중이 감소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버핏은 기업에 대한 전망이 바뀐 것이 아니라 세금 부담을 우려한 지분 축소라고 해명했다. 버핏 회장은 “애플을 조금 매도했지만 정말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앞으로도 여전히 포트폴리오 최대 보유 종목은 애플일 것”이라며 “애플의 사업모델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코카콜라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식을 고를 때 ‘소비자 행동’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애플을 좋아한다면서 사람들의 애플에 대한 관심을 벅셔의 최대 보유 종목이 된 둘째 이유로 꼽았다.

그럼에도 13% 지분 감소에 대한 투자자들의 질문은 계속됐다. 실제 벅셔가 애플을 매도하고 얻은 자금은 전액 단기국채 등 현금성 자산으로 전환됐다. 벅셔의 현금성 자산은 2000억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버핏은 정확한 답변은 꺼렸지만 “모든 주식을 다 사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시장이 좋은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젠 자본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관리자들이 재량껏 판단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M7 등 미국 주식시장에서 테크 비중이 과도해진 것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내가 3년마다 유언장을 조금씩 고치는데 전혀 손대지 않는 부분이 90%는 S&P500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고 10%는 단기국채에 투자하라는 부분”이라며 “S&P500을 이길 자신이 없다면 그대로 두고 편안하게 발 뻗고 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박소연 애널리스트는 “시장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라며 “아마도 이것이 200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여전히 단기국채에 몰아넣고 있는 이유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② 2000억 달러의 현금“우리는 마음에 드는 투구에만 (방망이를) 휘두른다.”

벅셔는 이날 공시한 실적자료에서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1890억 달러(약 257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다고 밝혔다. 역대 최고치다. 버핏 회장은 이 금액이 2분기 말 2000억 달러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보유 현금을 쓰고 싶다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좋은 투자기회가 생기면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만 리스크는 매우 낮고 리턴은 큰 일이 나타나지 않는 한 돈을 투입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버핏은 매주 월요일마다 3개월 및 6개월 만기 국채를 매입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단기국채는 현금성자산에 포함된다. 그는 앞서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난주 월요일에 미국 국채 100억 달러를 샀고 이번 주 월요일에도 100억 달러를 샀다”며 “유일한 질문은 다음 주 월요일에 3개월물 국채를 살지 6개월물 국채를 살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는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도 그중 하나”라며 “달러는 전 세계 기축통화이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주총 후 질의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다. 미국의 막대한 공공부채가 채권시장에 갖고 올 문제에 대해 “미국채는 시장에 마땅한 대체재가 없어 꽤 오랫동안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며 “국가부채는 양(quantity)의 문제로 단순 측정할 수 없으며 각 통화별로 경험하게 될 인플레이션도 문제인데 이 경우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1980년대에 똑같은 걱정을 했는데 ‘달러 붕괴’와 같은 생각은 결국 지나고 보면 다 쓸데없었다며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이 현명한 것 같다고 마무리했다. ③ 버핏이 본 전기차 승자“나는 전기차 산업에서 승자가 될 기업들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시장의 주요 관심사인 전기차 산업에 대해서도 뾰족한 시각을 드러냈다. 버핏은 “승자가 나온다면 기쁠 것”이라면서도 테슬라 주식의 매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나는 우리가 그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벅셔는 2023년 8월 보유중이던 GM의 지분 전량을 처분했으며 중국의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 비야디(BYD)는 2008년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올린 뒤 몇 년간 10차례 넘게 주식을 팔며 보유 지분을 정리했다. 비야디 투자는 벅셔의 이례적인 투자로 버핏보다 멍거의 의견이 중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버핏은 지난해 열린 주총 질의응답에서도 ‘자동차 산업은 기본적으로 힘든 산업이며 자동차 회사들이 5~10년 후에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자동차 산업보다 더욱 확실한 투자처를 찾는 게 낫다’고 했다. 비야디 투자를 주도했던 멍거 부회장도 지난해에는 ‘전기차 산업이 상승기에 있는 것은 맞지만 너무 많은 자본과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며 전기차를 넘어 자동차 산업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공유했다.

박소연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산업은 기본적으로 많은 CAPEX를 필요로 하며 과도한 재투자 비율도 버핏이 전기차 투자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풀이했다.
워런 버핏 벅셔 회장과 고 찰리 멍거 벅셔 이사회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워런 버핏 벅셔 회장과 고 찰리 멍거 벅셔 이사회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④ 차세대 성장, AI 사기 산업?“램프에서 나온 요정 지니를 다시 램프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고 지니의 힘은 저를 두렵게 한다. AI도 비슷한 상황이다.”

분초를 다투는 경쟁 산업 AI에 대해선 우려를 나타냈다. 버핏은 AI를 핵무기에 비유하며 아인슈타인의 우려와 같은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번 원폭 실험으로 인류 문명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버핏은 AI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최근 AI가 생성한 자신의 딥페이크 영상을 보고 “내 와이프와 딸조차 진짜 나로 여기고 구분하지 못해 놀랐다”면서 AI의 악용으로 AI 관련 사기(scam) 산업이 차세대 성장 산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보이스피싱은 항상 미국 사회의 일부였지만 제가 보이스피싱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보이스피싱이 역대 최고의 성장 산업이 될 것이라고 비꼴 정도로 AI의 파급력을 우려했다.

벅셔 사업부문 중 AI로 인해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을 사업부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엔 노동집약적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상당한 여유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그 여유시간에 무엇을 하게 될 것이냐가 앞으로의 가장 큰 화두라고 답변했다. ⑤ 버핏의 주요 투자국“우리의 주요 투자처는 항상 미국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비야디를 제외하고 홍콩과 중국 기업에 재투자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엔 단호한 거절이 나왔다. 버핏은 “우리가 미국 외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라며 “정말 큰일을 한다면 미국에서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미국이란 나라의 기회는 기본적으로 무한하다”며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다른 경제에 대해서는 같은 감각을 갖고 있지 않고 다른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는 다행히 미국의 경제 규모가 작지 않아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앞으로도 미국 중심의 투자가 진행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제2의 버핏, 포트폴리오 후계자한편 이번 주총에서 버핏은 후계자 그레그 아벨이 향후 벅셔의 투자 결정을 맡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간 아벨이 CEO직을 맡는 것은 확정이었지만 버핏이 운용해 온 지분 포트폴리오를 누가 관리할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었다. 벅셔의 투자 매니저인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도 물망에 올랐다.

버핏은 “사실 이 결정은 내가 없을 때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그 책임은 나에게 있었고 나는 그 책임의 일부를 나눠줬으며 그 책임이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곤 했지만 나는 그 책임이 CEO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200명의 직원이 각각 10억 달러씩 나눠 2000억 달러를 관리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벨은 벅셔 부회장으로 비보험 사업부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 출신으로 1992년 지열 전기생산 업체인 칼에너지에 입사했으며 1999년 벅셔가 칼에너지 자회사인 미드아메리칸에너지(현 벅셔해서웨이 에너지)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버핏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벅셔 에너지 부문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으며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21년부터 후계자로 발탁됐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