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수성 소재 무역항에서 중국산 차량이 수출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 장수성 소재 무역항에서 중국산 차량이 수출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대중국 통상 압박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미국이 올해부터 중국에서 생산한 반도체와 태양광 전지 관세율을 두 배 올리기로 하면서다.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철강·알루미늄은 관세율을 3~4배 올릴 방침이다. 이 밖에 주사기와 의료 장갑에도 관세를 신설하거나 상향 조정한다. 미국이 첨단산업 제품과 전략물자, 의료용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대중국 통상 압박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중국은 “미국의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위반”이라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서 정당한 권익을 지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中 신산업에 제동 거는 미국
지난 5월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무역법 301조에 따라 지난해 기준 180억 달러(약 24조6000억원)에 달하는 중국산 주요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도록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슈퍼 301조’로 불리는 무역법 301조는 미국 행정부가 다른 국가의 통상 관행이나 정책을 조사해 무역장벽이 확인되면 각종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안보 법률이다.

우선 미국은 급성장 중인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를 정조준했다. 중국산 전기차 관세율은 연내 25%에서 100%로 상향 조정된다. 배터리 부품과 배터리 완제품 관세율은 올해부터 7.5%에서 25%로 올라간다. 다만 중국 점유율이 높은 흑연 관세율은 현행 0%에서 2026년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달 초 전기차 배터리에 중국산 흑연을 사용해도 향후 2년간 한시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조치와 시행 시기를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소재와 장비도 고율 관세 목표로 삼았다. 태양광 전지와 철강, 알루미늄, 항만 크레인 등이 대표적이다.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광물·부품 관세율은 7.5%에서 25%로, 태양광 전지는 25%에서 50%로 올린다. 주사기(0%→50%)와 특정 호흡기, 개인 보호장비(0~7.5%→25%) 같은 의료용품 관세율 조정도 올해부터 적용한다. 모든 품목의 구체적인 관세율 인상 시기는 USTR이 별도로 정한다. 백악관은 “중국의 반시장적 정책이 중국의 과잉생산에 일조해 미국 기업과 근로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관세율 두 배로 인상
바이든 행정부는 첨단산업의 첨병인 동시에 중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반도체산업도 또다시 겨냥했다. 2022년 10월 대중국 수출 통제를 실시한 데 이어 관세율을 두 배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중국산 반도체 관세율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25%에서 50%로 올라간 뒤 상황에 따라 연장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국제무역센터(ITC) 통계 자료를 토대로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 내 주요 국가별 시장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2022년 기준 중국산 반도체 점유율은 11.7%로 집계됐다. 백악관은 “중국 정부가 구형(레거시) 반도체산업을 지원하면서 중국의 점유율이 올라가고 생산 능력이 확대됐다”며 “이로 인해 미국 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어 투자의 지속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중국 반도체 관세율을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또 올가을 실시간 인터넷 접속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차량을 뜻하는 커넥티드 차량에 대한 대중국 규제를 내놓을 전망이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5월 15일 상원 세출위원회에서 열린 2025 회계연도 예산심의 청문회에서 중국산 커넥티드 차량에 대한 규정을 언제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에 “의견수렴 기간은 끝났고 이번 가을에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산 커넥티드 차량의 해킹 가능성 등을 지적하며 상무부에 관련 조사와 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러몬도 장관은 “커넥티드 차량은 수천 개의 센서와 반도체를 갖고 있는데 중국산 차량의 경우 베이징에서 생산되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제어된다”며 “그들은 운전자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운전 패턴을 지녔는지, 차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인들의 엄청난 데이터가 중국으로 간다는 것”이라며 의회에서 금지법이 제정된 중국 동영상플랫폼 틱톡, 중국산 항구 크레인 등과 유사한 안보 위협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이 같은 무역 제재 움직임에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중국 관세를 인상하는 미국의 발표가 전해지기 전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일관되게 WTO 규칙을 위반한 일방적인 부가 관세에 반대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서 정당한 권익을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보복 조치 내놓나
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26일 중국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한 나라의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새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슈퍼 301조’와 유사한 ‘중국판 슈퍼 301조’를 만들어 맞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2024년 12월부터 가동되는 새 관세법은 제17조에선 중국과 특혜무역협정(PTA)을 체결한 시장이 고관세를 부과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상대국가 상품에 동등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번 미국의 관세 인상 조치에도 보복관세를 매길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중국은 또 미국이 WTO 규정을 위배했다는 점을 부각할 전망이다. 앞서 2018년 트럼트 행정부가 슈퍼 301조를 근거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하자 중국은 WTO 분쟁 조정 절차를 신청했다. WTO 전문가그룹은 2020년 9월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관세 인상 조치가 WTO 의무 위반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 딩루 중국 정법대 부교수는 “이미 관련 사건에서 미국의 일방적 관세부과 조치는 WTO 전문가 그룹에 의해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았다”며 “약속한 관세율을 임의로 인상하는 것은 WTO 원칙을 깨는 행위”라고 말했다. 베이징 다청 법률사무소의 순레이 수석파트너도 “중국에만 이 같은 관세가 부과된다면 이는 WTO 최혜국 대우 원칙에 위배된다”며 “회원국 양측이 인하하기로 약속한 관세를 임의적으로 늘리는 행위도 WTO 협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내든 건 의외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기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율 관세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시킨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들어 대선이 다가오면서 입장을 바꾸고 있다. 대선 승패를 결정할 경합주를 중심으로 중국에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영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하면 중국산 관세율을 60%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또 현재 관세율에 10%의 추가 관세를 더 매기는 ‘보편 관세 10%’도 공약으로 내걸면서 반중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가 선거용 말폭탄이라는 시각도 있다. 관세율 인상 카드가 당장 중국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에 관세율 인상에 포함된 중국산 품목이 미국에 수입된 액수는 지난해 기준 180억 달러(약 24조6000억원)로 전체 중국산 수입액(4270억 달러)의 4% 수준에 그친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에 당장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중국의 신산업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몰아붙이는 상황”이라며 “다만 전기차, 태양광 등 신산업에 대한 제재는 중국이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세 인상이 장기화될 경우엔 미·중 갈등이 새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