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역동성, 리더십, 유연성…한국의 강점이 사라지고 있다 [EDITOR's LETTER]
현재 한국 사회에서 희망적인 면은 무엇이 있을까.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측면에서 말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강점들이 사라졌거나 사회 변화로 약점으로 변질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 조직이 쇠락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한번 돌아볼까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역동성이었습니다. 산업화에 나선 지 60여 년 만에 경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역동성. 노동자와 빈농, 빈민의 아들이 사장도 되고 대통령도 될 수 있게 해줬던 그것. 이 역동성을 뒷받침해줬던 것은 높은 교육열과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이었습니다.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을 극복하게 해줬고, 전두환 씨는 IT 인프라를 깔았고,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으로 새 시장을 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의 싹을 잘라버렸고,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한류의 싹을 틔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그 뒤는 생략하겠습니다. 이런 리더십을 뒷받침했던 것은 뛰어난 관료들이었습니다.

기업에도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아버지의 코드가 어른거렸던 1세와 2세들. 그 리더십의 근저에는 도전과 모험 정신이 깔려 있었습니다. 우수한 국민들은 탁월한 팔로어십으로 리더십을 빛나게 하며 산업화의 주역이 됐습니다.

외교적 유연성은 역동성과 모험적 리더십의 훌륭한 조력자였습니다. 1960~80년대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도 받고 기술도 받았습니다. 냉전 시기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강점으로 활용했습니다. 미국, 일본, 유럽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되면 다 끌어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중국 대륙이 열리자 북방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리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 강점들은 시대 변화와 함께 하나둘 힘을 잃어갔습니다.

역동성을 보여주는 계층 이동 가능성은 떨어졌습니다. 뜨거운 교육열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가 아닌 정형화된 인재를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 리더십은 굳이 언급조차 할 필요가 없을 정도 추락했습니다.

기업 리더십을 돌아보면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일부 기업의 3세, 4세들은 직원들의 신뢰를 얻으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국내 대표 기업들은 세계를 압도했던 기술적 리더십을 잃고 있습니다. 또 “회장님을 따르면 뭔가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의심으로 바뀐 기업들도 많습니다. 문고리 권력에 의해 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업 얘기도 들립니다.

유연했던 외교적 근육은 경직되기 시작했습니다. 실리적 외교 역량의 부실은 제조업 침체와 일본이 기업 경영권을 뺏어가는 결심을 할 수 있게 간접적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은 성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한국 경제는 또 다른 글로벌 지각변동에 대처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습니다. 미·중 패권전쟁과 함께 찾아온 강달러 시대로의 전환입니다. 달러가 이례적으로 강했던 시기,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돌아보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은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물론 과거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의 이해관계는 항상 엇갈렸습니다.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다시 일어섰고,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동안 한국은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고, 중국도 이 기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북아 3국 국민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은 디플레이션으로, 일본은 인플레이션으로, 한국은 저성장과 물가상승으로 국민의 삶이 압박받고 있습니다. 이는 3국 모두 정권에 대한 낮은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상식 밖의 정책이 나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불안의 포인트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이 같은 패러다임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한국을 발전으로 이끌었던 강점은 사라지고, 사회 시스템은 수명이 다해가는 듯합니다. 그 대책의 시작은 위기가 터지기 전에 다가오고 있는 위기를 절박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업, 정부 모두 마찬가지이겠지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