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한 나라의 주식시장은 ‘머큐리(mecury·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양대 요인 중에서는 매크로 면에서는 성장률, 마이크로 면에서는 기업 실적과 같은 머큐리 요인이 주로 주가를 결정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마스 요인, 즉 통화정책상의 변화를 주는 피벗(pivot) 추진 여부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작된 피벗 레이스선진국 피벗 레이스에 스타트를 끊은 것은 유럽 중앙은행들이다. 지난 3월 이후 스위스, 헝가리, 체코, 스웨덴 순으로 비유로존 국가의 금리인하가 이어졌다. 조만간 덴마크, 노르웨이 등도 동참할 태세다. 오랜만에 회복세를 보이는 펀더멘털 요인과 선순환 작용을 일으키면서 유럽 증시가 국별로 사상 최고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관심이 되는 것은 유럽중앙은행(ECB)과 잉글랜드은행(BOE)이 언제 기준금리를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낙인효과’를 갖고 있는 ECB와 BOE는 그 어느 중앙은행보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2012년 미국 Fed가 ‘물가안정’과 함께 ‘고용창출’을 양대 책무로 변경했을 때 따라가지 않았던 것도 이 이유에서다.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도 ‘통화량 조절’보다 ‘기준금리 변경방식’을 고수하고 이 방식의 효과 여부의 관건인 ‘선제성(preemptive)’을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 통화정책 전달경로상 ECB와 BOE가 추정하는 기준금리 시차는 1년 내외다. 1년 후에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한다고 판단되면 현시점에서 금리를 내려도 된다는 의미다.

지난 3월 이후 유로존과 영국의 물가지표를 보면 목표선인 2%를 1%포인트 이내로 안정되고 있다. 라스트 마일 부주의 등의 변수가 있긴 하지만 기준금리 시차를 고려하면 “올해 여름 휴가철 이전에는 금리인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와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흥국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피벗을 추진하면 세계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는 Fed는 과연 어떻게 나올지, 즉 통화정책상에서는 이례적인 ‘왜그더도그(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현상이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현재 Fed만이 갖고 있는 고충을 살펴봐야 한다.

고민 끝에 지난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지금보다 앞으로 더 큰 의미가 있는 변화를 모색했다. 기준금리는 작년 7월 FOMC 회의 이후 9개월 연속 동결했지만 월별 양적긴축(QT) 규모를 60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축소했다. 감축액만큼 시중에서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앞으로 Fed의 통화정책에 있어서 월별 QT 규모 감축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주택저당증권(MBS)을 미국 국채에 재투자하기로 결정한 조치다. 금리인상과 함께 만기가 돌아오는 MBS를 전량 회수해온 Fed가 앞으로는 350억 달러 이상의 만기상환분을 국채에 재투자하면 시장금리가 안정돼 기준금리 인하 이상의 피벗 효과를 누릴 수 있다.

5월 FOMC 회의를 계기로 Fed의 통화정책 주수단이 ‘기준금리 변경’에서 ‘통화량 조절’로 바뀐 것인가는 주류 경제학 위상 변화와 같은 민감한 문제와 연관돼 있는 만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올해 8월에 있을 잭슨홀 미팅에서 이 문제를 놓고 케인지언과 통화론자 간에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 중앙은행 ‘피벗’…난기류에 빠진 일본은행[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 일본, 부작용 없으려면일본은행(BOJ)은 예외다. 미국의 4월 인플레이션 지표에 의해 묻혔지만 우리 경제와 엔화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일본의 1분기 성장률이 발표됐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나쁜 작년 4분기 대비 -0.5%, 미국식 성장률 통계방식인 전분기비 연율로는 –2.0%로 추락해 일본 국민 사이에는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뜩이나 ‘아오키 법칙’에 걸려 있는 일본 정책당국이 받은 충격은 더하다. 아오키 법칙이란 기시다 내각과 집권당인 자민당의 합친 국민 지지도가 50%를 밑돌아 경제정책 면에서는 좀비 국면에 처한 것을 말한다. 1분기 성장률 발표 이후 기시다 총리의 조기 퇴진과 중의원 해산 요구가 거세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1분기 성장률은 2분기 이후 ‘복원력(resilence)’과 관련해 두 가지 점을 살펴봐야 한다. 하나는 작년 2분기 이후 분기별 성장률이 전형적인 ‘더블딥(1.0%→-0.9%→0.0%→-0.5%)’에 빠졌다는 점이다. 경기순환상 특정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면 침체 기간이 장기간 지속된다는 의미로 한동안 잊혀졌던 ‘잃어버린 40년’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총수요 항목별 소득 기여도(Y=C+I+G+(X-M), Y=국민소득, C=민간소비, I=설비투자, G=정부지출, X-M=순수출)에서 최대 항목인 민간소비가 리먼 사태 이후 최장기간인 4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1분기 내내 엔·달러 환율이 140엔 이상 높은 수준이 지속됐음에도 순수출 기여도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점도 눈에 띈다.

단순생산함수(Y=f(L, K, 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로 일본 경제 성장장애요인을 살펴보면 노동 섹터는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로, 자본 섹터는 자본장비율(K/L) 하락세는 멈췄지만 여전히 토빈 q 비율이 1을 밑돌아 생산성은 문제다. 총요소생산성도 기시다 내각과 집권당인 자민당 간 기득권 카르텔로 좀처럼 제고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 ‘피벗’…난기류에 빠진 일본은행[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일본 경제처럼 저량(stock)과 유량(flow) 면에서 성장장애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을 때는 모든 경제정책은 ‘긴축’과 ‘부양’의 성격과 관계없이 반짝 효과만 나는 캠플 주사에 그친다. 주체적인 면에서 기시다 정부와 BOJ, 스펙트럼 면에서 재정과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환율정책에까지 해당한다.

오히려 조급증에 걸려 정책 기조를 변경하거나 같은 정책이라도 자주 내놓으면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현재 일본은 국가채무비율이 270%가 넘어 재정정책 면에서 경기부양 여지가 거의 없다. 10년 이상 장기간 지속된 초저금리와 엔저로 통화와 환율정책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엔저가 될 추가적으로 확률이 높은 것도 문제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 이후 수익률곡선통제(YCC) 상한선 상향, 금리인상 등을 통해 출구전략을 추진해 왔으나 엔·달러 환율은 구로다 라인(125엔), 미스터 엔 라인(130엔), 플라자 라인(142엔)이 맥없이 무너졌다. 일본 외환당국의 직접 개입선인 160엔마저 뚫린다면 엔저와 외국인 자금 이탈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곧바로 175엔 선으로 급등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난기류에 빠져 있는 일본 경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시급한 것은 기득권 카르텔을 끊어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의 국민 지지도를 끌어올려 아오키 법칙에 걸린 함정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정책 신호에 대한 정책 수용층의 반응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곳곳에 내재한 병목 현상을 푸는 것도 중요하다. 최대 병목 변수인 민간의 높은 저축을 소비로 유도하기 위해 저축을 쓰면 쓸수록 세제 혜택을 주는 ‘부(負)의 저축세’를 도입해야 한다. 산업연관표(I/O)상 병목 현상은 단기간 풀기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주식 대중화와 주주환원율 제고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엔저는 ‘마셜 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의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1)’, 엔고는 ‘내수 확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통화정책을 변경하는 것보다 재정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과다한 국가채무 제약 여건에서는 ‘균형재정승수=1’이란 점을 착안한 ‘간지언 정책’을 부활시키는 것도 제3의 길이다.

현재 선진국 중앙은행에서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BOJ를 제외하고는 한국은행이 가장 ‘매파적’이다. Fed보다 10개월 앞서 기준금리를 올렸던 한은은 최근까지 피벗을 추진할 어떤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묻고 싶은 것은 “그만큼 물가가 불안한 것인가?” “아니면 경기가 좋은 것인가?” 그 답은 “아니다(no)”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