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위한 학칙개정, 거센 반발에 일부 학교서 부결
정부, 현행법 무기로 대학·의료계 압박

충북대 의대 교수·학생 등 50여명이 21일 오후 학칙개정안을 심의하는 충북대학교 대학본부 5층 대회의실 앞 복도에서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충북대 의대 교수·학생 등 50여명이 21일 오후 학칙개정안을 심의하는 충북대학교 대학본부 5층 대회의실 앞 복도에서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추진하는 정부와 이를 반대하는 의사집단 간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채 평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5월 22일 “의료계와 정부는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대화의 여지를 남겼지만 의대생과 전공의들 대다수는 각각 동맹휴학과 파업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를 비롯한 전공의 단체는 대한의학회와 의협 등 의사단체가 모이는 연석회의에 불참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 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진료 추가 단축 등 의료공백 장기화에 대한 대응책을 24일 발표할 예정이다.

전반적인 상황은 의사와 의대생에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16일 의대증원 집행정지 항고에 대해 각하·기각 결정을 내렸다. 해당 결정 이후로 현재 전국 대학들은 국립대를 중심으로 의대 증원을 위한 학칙개정안을 속속 가결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는 한편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의대정원 원점 재검토’ 같은 비현실적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4일 오후 제2차대학입학전형위원회를 열고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 심의, 확정한다. 현 시행계획에 따르면 전국의대 40곳에서 젼년보다 1509명 증가한 4567명을 모집한다. 계획대로 통과된다면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이후 27년 만에 의대증원인 셈이다. 대교협이 시행계획을 승인하면 이달 31일 해당 내용을 담은 수시 모집요강이 각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그럼에도 강한 결속력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학칙 개정안을 부결시키는 대학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일부 대학교는 수업 거부에 나선 학생들에 대한 휴학 승인을 검토하고 있어 이 같은 흐름이 확산할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 정부는 각 대학의 학칙 개정이 완료되지 않아도 2025학년도 대입 선발 절차는 그대로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고법 판결에 순조롭던 학칙개정
정부와 의사단체는 현재까지 대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업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2월 22일 전국 40개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에 “증원을 신청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3월 20일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신청된 인원은 기존 정원 3058명 대비 343명이 많은 3401명이었지만 정부는 2000명을 증원한 5058명으로 늘린다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선 당초 계획보다 실제 증원 규모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증가한 수의 학생들을 교육할 교수진이나 실습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발생한 의료공백 사태도 부담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정원이 늘어나는 전국 32개 의과대학에 내년도 증원 인원의 50%에서 100%까지 자유롭게 모집 인원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실제 증원 인원은 1000명까지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내년도에 한정할 뿐 여전히 정부는 내후년도부터 2000명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고법의 판결이 정부 입장에 더 힘을 불어넣은 모양새다. 이후 입학생 증원을 위한 학칙 개정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정부가 배정한 증원 규모가 151명으로 가장 컸던 충북대는 5월 21일 교무회의를 통해 학칙개정안을 가결했다. 다만 증원 규모는 배정의 절반 수준인 76명으로 새 학칙에 따라 의대 정원이 49명에서 125명으로 늘었다. 울산대, 부산대, 강원대, 전남대, 동아대, 을지대, 한림대 등도 학칙개정을 마쳤다.

일부 자치단체는 지역 대학교에 신규 인원을 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존에 의대가 없던 학교에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과 의사 수가 부족한 지방 도시가 대부분이다.

전라남도는 23일 국립의대 신설을 위해 대학 선정 용역에 착수했다. 경상남도 역시 대통령실,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을 상대로 각각 정원 100명, 50명 규모인 안동대 국립의대와 포스텍 의대 신설을 건의했다.

의사단체는 정부조치에 즉각 반발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울고법 재판 담당 판사에게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고법은 “사법부 독립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며 “매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대응했다. 급변한 상황에 의대 증원 ‘암초’ 만나
20일 오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과대학 운영대학 총장 간담회에 참석해 대학 총장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 오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과대학 운영대학 총장 간담회에 참석해 대학 총장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입시요강 확정이 다가오면서 의료계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서울고법 판단에 즉시 재항고한 의료계 소송 대리인단은 5월 22일 대법원에 ‘신속한 결정 요청서’를 냈다. 내년 입학생 정원이 확정되기 전에 판결이 나오면 전세가 뒤집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리인단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5월) 31일 입시요강이 확정되고 천재지변 등이 아니면 의대정원 변경이 안 된다고 발표했다”며 “이 사건은 29일까지 대법원의 최종 결정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교수진과 의대생들의 반발이 강한 상황이다. 그 영향으로 증원의 주체인 학내 분위기가 급하게 반전되고 있다. 5월 22일 경상국립대와 전북대 교수평의회에서 의대 증원 학칙개정안이 부결됐다. 수업거부 중인 학생들에 대한 대학들의 휴학 승인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학생들이 휴학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업거부를 지속하면 집단으로 유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은직 연세대 의과대 학장은 교수진에게 “전체교수회의에서는 올바른 의학교육을 견지하기 위해 어느 시점에서는 휴학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고려대와 원광대 등 다른 대학들도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을 우려해 휴학을 승인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엔 카드가 남아 있다. 5월 7일 학칙 개정안을 부결한 부산대는 21일 교무회의를 다시 열어 재심의에 나선 끝에 결국 해당 안건을 가결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신임 총장을 임명한데 이어 의대 증원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전날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 총장을 대상으로 한 영상 간담회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에 따른 대학별 학칙 개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현행법상 의대생 증원을 거부하는 학교에 각종 불이익을 줄 수 있다.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각종 지원금, 교육교부금을 끊고 회수하거나 의대 인가 취소에 나설 수도 있다.

학생 부족으로 재정난이 심한 지방대학은 더 불리하다. 고등교육법 제60조 2항은 “교육부 장관은 시정 또는 변경 명령을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기간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학교의 학생정원 감축, 학과 폐지 또는 학생 모집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