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 본질, 부동산업에서 몰링으로 변화
다점포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려워진 트렌드

롯데백화점, 신세계·현대와 비교했을 때 차별점 없어
업계 리딩 역할 상실…소규모 점포 활용도 높일 전략 짜야

2021년 순혈주의 깨고 신세계 출신 영입
1등 점포 되찾기 위해 백화점 리뉴얼에 집중

[커버스토리 - K기업 고난의 행군⑧]
혁신도 없고 브랜딩도 없다…왕년의 유통 왕국 롯데백화점[K기업 고난의 행군⑧]
유통업의 본질은 부동산업이라고 했다. 자리를 잘 잡고 공간을 입점업체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백화점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몰링’이 필수적 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복합쇼핑몰에서 쇼핑과 다양한 문화체험을 동시에 즐기는 것을 몰링이라고 한다. 이 같은 변화는 젊은 소비자들이 이끌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2000년대 후반 이후 문을 연 백화점들은 모두 큰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소비자들을 끌어 모을 공간이 필요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오픈 당시 아시아 최대의 식품관으로 화제를 모았다. 신세계는 강남점, 대구점, 부산센텀시티점 등을 대형 점포로 조성했다.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더현대서울은 아예 이 같은 니즈를 반영해 집객에 성공했다.

그런데 한때 한국 유통 시장의 맹주로 불렸던 ‘롯데백화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새로운 게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유통산업에 진출해 업계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온 과거 위상이 무색해질 정도다. 신세계가 지방 점포를 ‘초대형 복합쇼핑몰화’하고 현대는 ‘맛집’과 ‘팝업스토어’로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롯데만의 차별화 전략은 의문이다. ◆ 소규모 다점포 전략,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롯데백화점은 2016년까지 업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에서 1조8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는 곳은 ‘롯데 본점’이 유일했다. 2015년에는 시장점유율 51.5%(매출 기준)를 기록하며 과반 이상을 확보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전국 32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으며 신세계(13개), 현대(16개) 등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10년 전만 해도 백화점의 가장 큰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였다. 다점포 전략을 앞세워 구매협상력을 높일 수 있고 MD 구성에서도 타사보다 영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트렌드가 달라졌다. 백화점을 가는 주된 이유는 ‘소비’에서 ‘경험’으로 변화했고 유통회사들은 여기에 맞춰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신세계의 키워드는 ‘초대형화’였다. 2009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백화점인 센텀시티점, 2016년 세계 두 번째로 큰 대구점 등을 연이어 오픈하면서 백화점을 체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실제 신세계는 일반 매장 외에도 백화점 내에 아이스링크장, 온천 등을 만들면서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2028년 설립 예정인 광주 신세계도 초대형화 점포다. 금호고속이 보유한 광주버스터미널(유스퀘어) 일부 부지를 인수해 현재 유스퀘어 전체 부지 9만9000㎡(약 3만여 평) 중 67%를 광주신세계가 소유하게 됐다. 이를 기반으로 신세계는 기존 백화점을 3배 규모로 확장한 ‘광주신세계 아트 앤 컬처파크’를 설립한다.

현대백화점은 식음료(F&B)와 팝업에 주력했다. 2015년 현대백화점 판교점 오픈 당시 축구장 2배 크기의 국내 최대 규모 식품관(1만3860㎡, 4192평)을 열었다. 당시 백화점 내 음식점을 특화하는 전략은 흔치 않았다. 현재도 판교점은 130여 개의 국내외 맛집과 F&B 매장이 입점해 있다.

2021년 개관한 더현대서울은 기존 백화점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화점의 급을 판단하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가 없어 실패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1년 만에 매출 8000억원을 돌파하며 백화점 개점 첫해 매출의 신기록을 세웠다.

반면 롯데백화점은 2014년 롯데월드타워·롯데월드몰(제2롯데월드)에서 지하 6층~지상 8층으로 구성된 에비뉴엘동에 ‘명품 중심의 백화점’인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을 만든 게 전부다.

2019년 인천점, 2021년 동탄점 등을 오픈했지만 과거와 같은 ‘소규모 점포’ 전략을 사용했다. 인천점의 영업면적은 5만8940㎡(1만8930평), 동탄점의 영업면적은 9만3958㎡(2만8400평) 등이다. 앞서 지어진 롯데백화점보다는 영업면적이 넓지만 대형 점포는 아니다.

롯데백화점 전략이 현재 트렌드와 맞지 않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당시에는 소규모 다점포 전략이 통했지만 이커머스 시장이 주류로 떠오르면서 면적이 작은 오프라인 매장은 집객의 효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실제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점포 대부분이 도심에 들어선 중소형 점포인 탓에 체험형 매장으로 전환하거나 초대형화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내부 사람으로는 이 같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뒤늦게 외부 인재를 영입했다. 롯데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2021년 처음으로 순혈주의를 깨고 신세계 출신의 정준호 대표를 선임했다. 정 대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관여해 영입한 인물로 롯데 유통사업 부문의 부진을 벗어나기 위한 결정이었다.

정 대표는 당시 “강남 1등 점포를 반드시 만들겠다”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는 다른, 고급스러움을 넘어선 세련되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백화점을 강남에서 만들자”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강남 1등 점포는 신세계다. ◆ 반전의 카드 ‘리뉴얼’ 롯데는 홈페이지를 통해 “아울렛, 쇼핑몰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국내 1위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미래 유통문화 창조에 앞장서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과거에 비해 영향력은 줄었다.

실제 롯데백화점 실적은 10년간 지속 감소했다. 2013년에는 매출 8조1721억원, 영업이익 6987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3조3032억원, 영업이익 4777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롯데는 리뉴얼을 통해 다시 고객을 모을 계획이다. 백화점 사업부문은 8대 핵심 점포에 대한 △전략적 리뉴얼 △미래형 복합쇼핑몰 개발 등에 나선다. 롯데백화점의 8대 핵심 점포는 본점·잠실점·강남점·인천점·수원점·동탄점·부산 본점·광복점 등이다.

김상현 롯데쇼핑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열린 ‘롯데쇼핑 CEO IR 데이’ 행사에서 고객의 체험을 극대화해 상권별 넘버원 쇼핑 목적지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8개 점포 리뉴얼은 2026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혁신도 없고 브랜딩도 없다…왕년의 유통 왕국 롯데백화점[K기업 고난의 행군⑧]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