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여러차례 위기 겪어
마이클 아이즈너, 밥 아이거 등이 새로운 결단으로 경쟁력 키워
포드, 조직 분위기 쇄신 위해 '신호등 제도' 도입
앨런 멀러리, 내부 경쟁 없애고 사업 현황 공유하며 위기 벗어나
[커버스토리 : K기업 고난의 행군⑩-해외사례]
과거 영광을 누리던 회사들 가운데 살아남는 곳은 많지 않다. 1980년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한 NEC,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은 몰락했고 1960년대 세계 최대 유통기업이었던 캐나다 소매기업 시어스는 경영난에 허덕이다 2018년 파산했다. 시장 흐름을 읽지 못하고 경쟁사에 밀리면서 고객을 잃은 결과다. 반대로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은 회사가 있다.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와 미국 자동차 제조사 포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 디즈니, M&A로 키운 콘텐츠 파워월트디즈니는 1923년 설립돼 101년을 맞은 회사다. 디즈니를 대표하는 ‘미키마우스’부터 ‘증기선 윌리’ 등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키며 1970년대까지 업계를 이끌어왔다.
위기는 디즈니 창업주인 월트 디즈니가 1966년 사망한 이후 시작됐다. 당시 공개한 영화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하고 경영자들의 잘못된 판단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1979년 미국에서 디즈니의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4%까지 추락했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핵심은 ‘리더’다. 디즈니는 1984년 파라마운트픽처스 사장을 맡고 있던 마이클 아이즈너를 영입했다. ‘콘텐츠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한 아이즈너의 주도로 1990년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킹’ 등 주목할 만한 애니메이션을 연이어 제작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아이즈너가 10년 이상 디즈니 사업을 총괄하게 되자 모든 권한이 최고경영자(CEO)에 집중된 관료적인 조직으로 변한 탓이다. 경영이 악화하자 중소형 케이블 방송사에 불과한 컴캐스트가 디즈니 인수를 원하기도 했다. 결국 2005년 아이즈너가 디즈니를 떠났고 회사는 후임으로 밥 아이거 CEO를 선임했다.
아이거는 두 번째 위기를 인수합병(M&A)으로 돌파했다. 아이거 CEO는 창작 위주의 디즈니를 ‘지식재산권(IP)’ 사업 중심의 회사로 재편시켰다. 2006년 디즈니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픽사를 인수하면서 기업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고 연이어 마블(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 21세기폭스(2019년) 등을 인수했다.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왕국이 만들어진 시기가 바로 2010년대다. 여기에 상하이 디즈니 리조트, 홍콩 디즈니랜드 등도 개장하면서 아시아 고객을 적극 유치했다.
기업 규모를 키워 콘텐츠 영향력을 확대하자 디즈니의 순이익은 연간 두 배씩 성장했고 주가는 2005년 25달러 수준에서 2021년 200달러대까지 뛰었다. 2019년에는 디즈니 역사상 최초로 연간 글로벌 박스오피스 수익 100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6년 디즈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도 인수하기 위해 나섰지만 협상에 실패했다. 2019년 자체 OTT 디즈니플러스(+)를 론칭한 이유다.
디즈니의 세 번째 위기는 코로나19로 시작됐다. 아이거 CEO의 후임으로 테마파크 전문가인 밥 체이팩 CEO가 왔지만 코로나19 이후 테마파크 관련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동시에 콘텐츠 사업도 영향력이 줄었다. 테마파크 사업은 디즈니 전체 매출의 30%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결국 2020년 디즈니는 디즈니랜드, 디즈니월드 등 미국 현지 테마파크 직원 2만8000명을 해고했다. 2021년 11월 넷플릭스 시총이 356조원까지 치솟으면서 글로벌 시총 25위 디즈니(342조원)를 제쳤다. 디즈니플러스는 과도한 마케팅으로 누적 적자만 110억 달러에 달한다.
결국 2022년 다시 아이거가 CEO로 복귀했다. 아이거의 임기는 2024년 11월까지였으나 지난해 7월 계약 연장을 하며 2026년까지 디즈니를 총괄할 예정이다. ◆ 용기 있는 자만이 위기에서 벗어난다또 다른 회사는 자동차 제조사 포드다. 포드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리더의 역할이 컸다. 포드를 대표하는 전략은 ‘컬러 코드’다. 앨런 멀러리 CEO 체제에서 탄생했다. 항공사 보잉에서 37년을 근무한 멀러리는 2006년 9월 포드의 CEO로 취임했다.
당시 포드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점유율이 줄어들자 창업주 헨리 포드의 증손자이자 1999년 회장에 취임한 빌 포드가 2001년부터 직접 CEO 직책까지 맡으며 회사 운영에 관여했지만 경영난 악화를 막지 못했다.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의 재정학 교수 에드워드 올트먼은 포드가 5년 내 파산할 확률이 46%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주주들의 압박이 심해지자 2006년 외부 인사에 CEO 자리를 넘겨주면서 멀러리 체제가 시작됐다. 멀러리는 포드에 들어오자마자 회사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당시 포드는 조직 간 경쟁이 치열한 회사로 악명 높았고 각 사업부 임원들은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았다.
멀러리는 이 문제부터 해결했다. 각 사업부가 정보를 공유하는 회의를 정례화하고 ‘컬러 코드’ 제도를 도입했다. 녹색은 양호, 황색(노란색)은 주의, 적색은 문제를 의미하는 이른바 ‘신호등 프로그램’이다. 업무 성과가 양호할 때는 녹색으로, 주의해야 할 상황이라면 노란색,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빨간색으로 사업 현황을 공유하라는 의미다. 부서 간 업무 투명성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처음에는 의미가 없었다. 타 사업부에 문제를 드러내기 꺼려한 탓이다. 다른 사업부에서 약점 잡아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초반 몇 차례 회의에서는 모든 사업부가 ‘녹색’으로 현황을 표시했다. 당시 멀러리는 “적자가 났는데도 사업이 괜찮다는 뜻이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멀러리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을 경우 즉시 해고하겠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2주 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임원들이 용기를 내서 노란색 또는 빨간색으로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조언과 도움을 주면서 조직 간 협업도 시작됐다. 회사는 빨간색을 켰다고 화내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대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지원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멀러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문화는 ‘협력’이었다.
멀러리의 리더십은 수치로 증명됐다. 2008년 147억66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26억99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고 2014년 퇴임까지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포드의 위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포드 회장인 빌 포드는 “멀러리는 CEO 명예의 전당에 오를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위기를 탈출한 또 다른 전략은 ‘사업 슬림화’였다. 수익이 나지 않는 SUV와 픽업트럭 브랜드는 과감하게 철수하고 머큐리 등 당시 인기를 끌던 제품의 생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생산체계를 개편했다. 동시에 구조조정도 진행해 2006년 9만5000여 명 규모의 직원을 2년 만에 6만4000여 명으로 줄였다.
포드는 이 같은 노력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자동차사 가운데 유일하게 구제금융을 받지 않았다. GM과 크라이슬러는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포드의 신용등급은 2008년 장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C’ 등급에서 2012년 투자 부적격 등급인 ‘Ba2’로 개선됐고 2014년 들어서는 투자 적격 등급인 ‘Baa3’까지 상향됐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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