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결과를 두고 비상이 걸린 SK그룹이 3일 오전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SK 서린사옥에서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임시 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2심 결과에 대한 대법원 상고뿐 아니라 아니라 향후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혼 소송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전사적인 문제로 커졌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5월 30일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 분할로 1조 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1조 4000억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 금액이 나오면서 재계 안팎에선 이번 항소심 결과로 SK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이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 상고 방침을 밝힌만큼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이 남아있지만,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용되면 재산 분할 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 중구 서린동 SK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서린동 SK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최 회장이 재산 분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 현금성 자산을 물론 비상장 주식 SK실트론 지분(29.4%)을 청산해 7000억원 정도를 현금화하고 주요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한 주식 담보 대출, 배당금 활용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난 4월 12일 기준으로 SK(주) 주식 가운데 749만9030주에 대해 금융권으로부터 담보 대출 및 질권 설정이 돼 있어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2018년 11월 최 회장은 취임 20주년을 맞아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등 친족 23명에게 SK(주) 주식 4.68%를 증여한 바 있다. 재판부가 이때 증여한 지분까지도 분할 대상에 포함시켜 최 회장은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자산까지 현금으로 분할해줘야하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부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로 건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SK그룹의 성장에 노 전 대통령의 상당한 역할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노 관장 측은 2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약 300억원이 1990년대 초 SK그룹에 전달됐고,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며 이 비자금이 SK그룹의 성장과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판결로 SK그룹은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최 회장 측은 대법원 상고를 예고한 상태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6공(共)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면서 "오히려 SK는 당시 사돈이었던 6공의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했고, 노 관장 측에도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해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가 없다"면서 "정반대의 억측과 오해로 인해 기업과 구성원, 주주들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고도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