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각 사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각 사 제공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현상 장기화와 두 개의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 등 글로벌 경영 환경 불확실성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올해 하반기 재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변수로 ‘사법리스크’가 떠오르고 있다. 삼성, SK, LG그룹은 총수들이 다양한 재판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거나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어 재계도 재판이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총수들 사법리스크 몸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이 시작되며 사법리스크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1심은 3년 5개월 동안 심리한 끝에 올해 2월 이 회장의 19개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불복해 항소한 검찰은 1300여 쪽 분량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5월 27일 2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는 1심에서 내지 않았던 증거 약 2300건의 목록을 제출하고 증인 11명을 신청한 상태다.

항소심 재판부가 7~8월 말까지 두 달간 새로운 사건을 받지 않는 배당 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재판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배당 중지 결정은 사건 쟁점이 복잡하고 항소심에서 추가 심리할 분량이 방대한 점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재계 안팎에선 자칫 SK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 회장은 6월 3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혼 소송 항소심 결론이 향후 SK그룹 운영에 미칠 파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최 회장은 이날 SK그룹 사내 포털망에 ‘구성원에 전하는 편지’를 올려 “개인사에서 빚어진 일로 의도치 않게 걱정을 안겨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최 회장 측이 상고 의사를 밝혔지만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용되면 재산분할 자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재계에서 승계 과정에서의 가족 간 분쟁이 없었던 LG그룹은 고(故) 구본무 LG 선대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구연수 씨)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창립 이후 처음으로 상속 분쟁에 휩싸였다. 세 모녀 측은 지난해 2월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 중구 서린동 SK 서린빌딩.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서린동 SK 서린빌딩. 사진=한국경제신문
인사철 아닌데 CEO 교체로 수시 쇄신

‘CEO 수시 인사’도 올해 상반기 주요 경영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간 기업들은 연말 정기 인사에서 임원을 교체해왔으나 최근에는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경영 혁신을 위해 추가적으로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 예정에 없던 인사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5월 21일 반도체 사업의 수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전격 교체하는 ‘충격 요법’을 꺼내 들었다. 이례적인 원포인트 인사였다. 인공지능(AI) 칩 제작에 필수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빼앗기면서 위기감이 커졌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낸 삼성은 전 계열사로 임원 주말 출근을 확대하며 사실상 비상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최근엔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파업을 선언하면서 노조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최근엔 엔비디아의 HBM 품질 테스트에서 통과하지 못했다는 루머가 돌면서 분위기는 더욱 좋지 않아졌다. 삼성전자는 네이버와 공동 개발 중인 AI 반도체 ‘마하’의 주도권을 두고 미묘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주주총회에서 차기 프로젝트인 마하2 개발 계획을 공개하면서 네이버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아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네이버클라우드 임원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반도체 경쟁력 제고에 주력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악재가 잇따르자 수장 교체로 쇄신을 꾀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이 6월 10일부로 SK이노베이션 신임 수석부회장으로 이동했다. 최 수석부회장은 이번 원포인트 인사로 그룹 내 에너지·그린 사업을 총괄하며 중장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이 계열사별 리밸런싱 작업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진행 중인 가운데 비정기적 원포인트 인사로 사업 전반에 대한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과 글로벌 성장 전략 실행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이 같은 CEO 수시 인사가 다른 계열사에서도 추가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수석부회장이 맡고 있던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직을 사임함에 따라 유정준 SK미주대외협력총괄 부회장이 SK온 신임 부회장을 맡게 됐다. 최 수석부회장은 그동안 맡고 있던 SK그룹 수석부회장과 SK E&S 수석부회장을 계속 겸임하는 만큼 그룹 내 미래 에너지 사업의 통합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이번 인사는 통상 연말에 정기 인사를 해오던 SK그룹 인사 관행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앞서 SK에코플랜트도 지난 5월 김형근 SK E&S 재무부문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성공적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 위한 인사다.

신세계그룹도 수시 인사로 인적 쇄신에 나섰다. 올해 3월 정용진 회장 취임과 동시에 수시 임원 인사를 도입한 신세계그룹은 4월 정두영 신세계건설 대표를 경질하고 허병훈 전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하며 유동성 위기에 빠진 신세계건설의 소방수로 투입했다.

CJ그룹도 수시 인사로 CEO를 교체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올해 2월 뒤늦게 정기 인사를 진행한 CJ그룹은 3월 후속 인사로 윤상현 CJ ENM 커머스 부문 대표를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로 새로 선임했다. 5월에는 이건일 CJ프레시웨이 대표를 신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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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현대차·LG, 하반기 전략 구상 돌입

상반기가 끝나가는 5~6월은 기업들이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중장기 미래 전략을 집중 점검하고 하반기 경영전략 구상에 돌입하는 시즌이다. LG그룹을 시작으로 재계가 하반기 전략 구상에 돌입한다.

LG그룹은 5월 초부터 2주간 구광모 회장 주재로 LG전자, LG이노텍 등 일부 계열사와 사업본부의 중장기 전략 방향을 점검하는 전략보고회를 진행했다. 올해 전략보고회에서는 AI와 전장(차량용 전기·전자 장비)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점검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매년 상반기에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전략보고회를, 하반기에는 경영실적과 다음해 사업계획을 중심으로 고객 가치 제고와 사업 경쟁력 강화 전략 등을 논의하는 사업보고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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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6월 중하순 상반기 글로벌전략회의를 열어 하반기 전략 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6월과 12월 글로벌 전략회의를 한다. 올해는 갤럭시Z 시리즈 언팩 행사를 앞두고 스마트폰 전략과 반도체 사업 회복 전략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7월 10일 파리에서 ‘갤럭시 AI’가 탑재된 ‘갤럭시Z 폴드’와 ‘갤럭시Z 플립6’, 그리고 첫 스마트반지 ‘갤럭시링’ 등 웨어러블 제품을 대거 공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전 세계 폴더블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중국 화웨이에 1위 자리를 뺏겼다. 올해 하반기엔 최대 경쟁자인 애플이 AI 기능이 탑재된 아이폰16을 출시할 예정이어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SK그룹은 6월 25일 전후로 확대경영회의를 열 예정이다. 확대경영회의에서 계열사별로 진행 중인 리밸런싱 작업을 점검하고 경영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직면한 전기차 배터리와 그린 사업의 경쟁력 제고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투자한 배터리 재활용 스타트업 어센드엘리먼츠의 지분 매각을 최근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SK온을 SK엔무브와 합병한 뒤 상장하는 방안,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 등이 언급되기도 했다. 최 회장의 이혼 소송 판결로 SK그룹의 사업 재편 시 따져봐야 할 변수가 늘어난 만큼 재편 속도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6월 중 한국에서 글로벌 권역본부장 회의를 열고 권역별 전략 및 글로벌 통상 현안 대응 방안을 점검할 예정이다. 정의선 회장도 참석할 예정이다. 올해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 전략 점검과 대미 수출 전략 수립에 집중할 전망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전기차 정책이 바뀔 수 있고,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관세전쟁이 한국 자동차업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