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한국경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한국경제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515억원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한 정문술(86) 전 미래산업 회장이 12일 오후 9시 30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938년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태어나 남성고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원광대 종교철학과를 나왔다.

고인의 삶은 역경과 극복의 연속이었다. 사업을 준비하다 퇴직금을 사기당했는가 하면 어렵사리 설립한 풍전기공이란 금형업체도 대기업의 견제로 1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고인은 저서 '왜 벌써 절망합니까'(1998)에서 당시 사채에 쫓겨 가족 동반자살까지 꾀했다고 밝혔다.

1983년 벤처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의 퇴역 엔지니어를 영입, 반도체 검사장비를 국산화했다. 반도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70년 중앙정보부 근무 시절 일본에 갔다가 산 도시바의 트랜지스터 단파 라디오에 적힌 'IC'라는 글자를 보면서였다.

반도체 장비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로 사업이 자리잡았고 미래산업은 국산 반도체 수출 호조의 수혜를 받으며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벤처 1세대' 이정표를 세웠다.

이후 1997~2000년 닷컴 열풍 시기 벤처기업 10여개를 세우거나 출자하면서 국내 벤처 업계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는 2001년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경영에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고인은 2001년 카이스트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13년 다시 215억을 보태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개인의 고액 기부는 국내 최초였다. 카이스트에 정문술 빌딩과 부인의 이름을 붙인 양분순 빌딩도 지었다.

그는 2013년 1월 10일 기부금 약정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며 "이번 기부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과 2009∼2013년 카이스트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4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도 받았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2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9시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