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은 향후 금리 전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보인다.”(투자은행 제프리스)

Fed가 6월 12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성명서와 함께 공개한 경제전망요약(SEP)에선 연내 금리 전망을 5.1%로 제시했다. 올해 안에 한 차례가량의 금리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Fed 위원들도 금리인하에 의견 분분
하지만 점도표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Fed 내부에서도 현재 경제 상황을 둘러싸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전체 19명 위원 가운데 1회 금리인하를 전망한 이는 7명에 불과했다. 동결은 4명, 2회 금리인하는 8명이었다. 점도표의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기엔 평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 또한 “1회 인하와 2회 인하 모두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Fed 내부에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은 현재 인플레이션 둔화가 앞으로도 이어질지를 확신하지 못해서다. 올해 초 1~3월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Fed 내부에서도 자신감을 많이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3% 오르며 4월 상승률(3.4%)에서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FOMC 위원들은 이를 통화정책 결정에 거의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월 의장 또한 이날 “중요한 것은 확신이 있어야 하며 구체적으로 몇 번의 데이터를 더 확인해야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인플레이션 데이터는 곳곳에서 둔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5월 들어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둔화한 데 이어 생산자물가 또한 한 달 전과 비교해 하락했다. 미국의 5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2% 떨어졌다. 4월 들어 전월 대비 0.5% 상승한 생산자물가는 5월 들어 하락한데 이어 하락폭 또한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0.1% 상승)를 크게 밑돌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2.2% 상승했다. 에너지와 식품 등을 제외한 근원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보합을 유지해 0.2% 상승을 예상한 전문가 전망을 역시 밑돌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2% 상승했다. “보수적으로 경제 전망”
일각에선 Fed가 섣불리 금리를 낮췄다가 과거 1970년대의 통화정책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고 분석한다. 1970년대 Fed는 1차 오일쇼크로 물가가 치솟자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자 빠르게 금리를 낮췄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물가는 다시 급등했고 Fed가 적기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이후 등장한 인물이 폴 볼커 전 Fed 의장이다. 곳곳에서 고금리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는 꿋꿋하게 기준금리를 연 20%대까지 끌어올리는 등 강력한 통화긴축 정책을 써서 물가를 잡았다.

이날 파월 의장이 “FOMC 참가자들이 다소 보수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염두에 둔 것이다. Fed는 오히려 올해 말엔 인플레이션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SEP에 따르면 FOMC 위원들은 올해 근원 PCE 상승률 전망치를 2.6%에서 2.8%로 0.2%포인트 높이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진전된 인플레이션 수치가 나온다면 전망치가 내려갈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뒀다. Fed가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에 도달하기 위한 ‘라스트 마일(마지막 단계)’ 구간에서 극도로 신중한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다.

Fed는 올 3월 FOMC 때만 해도 올해 말 금리 전망치를 4.6%로 내다봤지만 이번 회의에선 이를 5.1%로 높였다. 연내 금리인하 횟수에 대한 전망도 3회에서 1회로 줄였다. 당초 시장에선 올해 말까지 금리를 2회가량 내릴 것으로 봤지만 예상보다 매파적으로 나온 것으로 해석됐다.

Fed가 이처럼 금리 전망치를 높인 것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까지 내려오는 데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봐서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하반기까지 인플레이션 데이터가 매우 좋았지만 올해 1분기에 진전이 정지됐다”며 “이로부터 얻은 교훈은 정책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확신을 얻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점이다”고 말했다.

Fed가 이날 나온 5월 CPI가 예상보다 둔화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CPI 수치가 통화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JP모간체이스는 “(파월 의장이) CPI 보고서를 신뢰 구축을 향한 진전이라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하나의 보고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며 “시장에서는 CPI가 점도표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Fed가 여전히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데이터를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고 짚었다. 반면 뉴욕증시는 FOMC 결과보다 CPI 둔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S&P 500 지수는 6월 18일(현지 시간) 기준 올해 들어 31번째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국 주택시장이 변수
Fed가 인플레이션 수치를 2%까지 내리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주택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주택금융청에 따르면 미국 주택가격지수는 3월 423.4로 1년 전(398.0)보다 6% 이상 올랐다.

장기 고정금리 비중이 높은 미국 모기지 시스템이 미국 주택시장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초저금리로 30년 고정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금리가 급등하더라도 이에 따른 영향을 덜 받는다. 이자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인덱스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의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3%(계절조정 후) 상승해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서는 7.4% 올랐다.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가 11.1%로 가장 높았다. 뉴욕(9.2%), 클리블랜드(8.8%), 로스앤젤레스(8.8%) 등이 뒤를 따랐다.

장기 모기지 외에도 이민 증가, 견조한 경제 등도 집값을 떠받치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순이민자 수는 330만 명 수준이다. 주택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NDR)는 미국 주택시장의 주택 부족 규모가 약 220만 채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NDR은 미국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엔 220만 채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치솟은 인건비와 토지 가격 상승 등이 걸림돌이다.

NDR은 “2015년부터 만성적인 주택 부족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을 경고해왔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규 주택 건설이 사실상 중단됐는데 앞으로 수년 동안 이러한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