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은 내부적으로 ‘신품질 생산력’을 시진핑 3기를 대표하는 국가의 공식 경제정책 슬로건으로 확정하고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신품질 생산력은 작년 9월 시 주석이 헤이룽장성 시찰 때 처음 언급해 화제가 된 용어다. 이후 지난 4월 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에서 신품질 생산력이 강조되면서 중국 산업계의 최대 화두가 됐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신품질 생산이 시진핑 3기의 공식 경제정책 지도이념으로 사실상 채택된 상황”이라며 “이미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신품질 생산력 강화를 위한 세부 프로젝트가 하나둘 가동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7월 열릴 예정인 3중전회에서 신품질 생산력이 지도이념으로 공식화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3중전회는 향후 5년간의 국가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중요 행사다. 관례대로라면 작년 말이나 올초에 열려야 했지만 중국 정부는 3중전회 개최를 미루면서 정책 메시지를 가다듬어 왔다. 그만큼 경제위기를 타개할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국 정부의 고심이 깊었다는 의미다.
과학기술 혁신에 토대를 둔 신품질 생산력의 강조는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다. 전통 산업을 포기하는 대신 기술혁신을 통한 업그레이드로 제조업을 ‘양에서 질’로 전환하겠다는 게 신품질 생산력의 핵심이다. 중국이 앞서나가고 있는 전기자동차·배터리·태양광 등 신3양을 이어 세계를 선도하는 신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가성비 제품으로 승부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 최고 품질의 제품을 중국이 생산하겠다는 야심이 녹아 있다. 한 관계자는 “중국은 신품질 생산력 증대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라며 “기술 자립화 의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도광양회로의 정책 전환
중국 공산당이 신품질 생산력을 시진핑 3기의 국가 지도 방침으로 내세우는 것은 ‘전랑외교’와 ‘중국몽’에 대한 중국 내부의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다. 중국이 세계 패권국가의 야심을 드러내자 미국이 전면적인 대중국 기술통제 정책을 쓰면서 중국의 첨단산업 제조역량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부동산 침체와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중국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것도 중국 정부에 부담이다. 이는 공동부유론에 입각한 이념적 평등주의 추구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일각에선 시 주석 국정 기조와 대외 전략의 대전환이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시 주석은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야심을 담은 ‘중국몽’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 때리기 등 부작용을 고려해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로 정책 방향 틀었다는 평가다. 신품질 생산력을 강조하면서 기술 자립화의 구체적 목표는 뒤로 숨기고 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또 각 지방정부의 경쟁을 촉발하면서 기술혁신을 도모하고 있는 점도 덩샤오핑의 경제 운영 방식을 닮았다는 게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신품질 생산력 강화의 이행 주체는 각 지방정부다. 중앙에서 소리 내 ‘2050년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과 같은 목표치를 제시했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각 지방정부가 목표를 정해 경쟁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집중하면서 과잉투자 우려가 내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선 지방정부의 신품질 생산 경쟁을 독려하자는 게 중국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각 지방정부는 세부 이행 계획을 모두 중앙정부에 제출했고 중앙정부는 이행 상황을 직접 챙기고 있다는 게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지방정부의 경쟁과 혁신을 독려하는 것은 덩샤오핑식의 사회 개혁 방식”이라며 “중국이 다시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숨통을 조였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중국이 과거의 성공방식인 실리주의로 돌아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신품질 생산에 드라이브 거는 기업들
중국의 주요 기업들은 이미 공산당이 강조하고 나선 신품질 생산력 실천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식음료 업계 대표 기업인 와하하 그룹의 쭝푸리 부회장은 지난 3월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음료공업협회 연례회의에 참석해 ‘시대 코드 맞추기, 신품질 생산력 실천, 업계 새 그림 만들기’라는 주제로 연설하면서 “신품질 생산력은 과학기술 혁신 성과를 특정 산업에 적시에 적용하고 전통 산업을 변화시키며 디지털 경제와 실물경제의 심층 통합을 촉진하는 것”이라며 신품질 생산력 실천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철강회사 바오강그룹의 멍판잉 회장은 “신품질 생산력은 철강 기업의 변화와 발전의 핵심”이라며 “스마트 제조 및 디지털 개발에 적극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자신감과 달리 신품질 생산력이 실질적인 경제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외부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이 비전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불분명하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하다”며 “하향식 혁신을 촉진하는 방법에 대한 해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중국은 수십 년간 기술 중심의 성장 모델을 추구해 왔지만 그 결과는 (긍정적·부정적 효과가) 엇갈려 나타났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지도이념에 담긴 시대상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시대별 지도사상을 제시해 중국을 통치해왔다. 중국의 변화 과정도 각 시대별 핵심 사상과 키워드를 살펴보면 한눈에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 주석이 신품질 생산력을 국정 3기의 키워드로 제시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1949년 혁명을 성공시킨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을 이끌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 현실에 맞게 적용한 마오쩌둥사상을 공표했다. 1970년대 말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마오주의에서 탈피해 부유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는 ‘선부론’을 주창했다. 사상해방과 실사구시라는 두 가지 틀 속에서 점진적 개혁·개방을 추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실용주의 개혁·개방 노선을 중심으로 한 덩샤오핑 이론은 1999년 중국 헌법에 추가돼 국가 지도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장쩌민은 공산당이 중국의 선진 생산력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광의의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는 3개 대표론을 주창했다. 이를 계기로 개혁 과정에서 부를 쌓은 많은 자본가들도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후진타오 시대는 ‘과학적 발전관’을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GDP 만능주의 노선을 수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통해 ‘조화사회’ 건설을 표방했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당선된 후 ‘중국몽’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 되는 시점에 샤오캉 시대(국민이 만족하는 안정된 사회)를 열고 공산당 집권 100주년(2049년)에는 선진국에 도달한다는 꿈이다. 다 같이 잘살자는 공동부유론을 앞세워 사교육 철폐, 플랫폼 기업 규제, 부동산 규제 강화 등에 나서기도 했다. 대외적으론 전랑외교를 통해 다극주의에서 벗어나 미국에 맞서는 ‘강한 중국’을 표방해왔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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