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연 1위 고려아연의 갑질 VS 대주주 영풍, 위험의 외주화 멈춰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그룹 사옥. 사진=영풍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그룹 사옥. 사진=영풍
경영권 분쟁을 진행 중인 영풍과 고려아연의 황산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결국 소송전으로 번졌다.

영풍은 지난 6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려아연을 상대로 황산 취급 대행 계약 갱신 거절에 관한 '불공정거래행위 예방 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7월 2일 거래거절 금지 가처분을 제기했다고 3일 밝혔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장기간 지속된 황산 취급 대행 계약의 갱신을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계약 종료를 통보한 데 따른 소송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4월 영풍에 '황산 취급 대행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계약 만료일은 지난 6월 30일이었다.

영풍은 2000년부터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석포제련소에서 생산한 황산을 온산항(울산항)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황산 탱크와 파이프라인을 유상으로 이용해왔다.

국내 수요가 적어 대부분 수출하는 황산은 동해에서는 동해항과 온산항에서만 수출 선적이 가능하다. 동해항은 이미 포화 상태여서 고려아연의 황산 취급 대행 거절로 온산항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영풍의 황산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

영풍은 "만일 고려아연이 황산취급대행계약 갱신을 거절한다면, 영풍은 아연 생산에 차질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국내 아연 공급망에 큰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는 지역경제에 불안을 조성하고, 비철금속 제련이라는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도 큰 부담을 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영풍은 "고려아연 측에 수차례 내용증명 등을 통해 자사의 대체설비 마련에 최소한 7년이 걸릴 정도로 어려움이 있어 우선 계약을 1년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고려아연이 최대 3개월이라고 일방 통보했다"며 "국내 아연 점유율 1위인 고려아연이 '갑질'을 중단하고 계약 거절 철회와 함께 합리적인 협의의 장으로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반박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대주주인 영풍이 구체적인 근거 없이 유예기간을 7년 이상 달라고 요구하며 '위험의 외주화'를 하고 있다"며 "협상 대신 일방적인 소송을 반복하는 영풍에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황산은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관리해야하는 유해화학물질로, 사고 예방을 위한 엄격한 관리와 함께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여러 의무와 부담 등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고려아연은 자사 온산제련소 내 황산 저장시설 노후화로 지난 2년간 5기를 철거한 데다 최근 외부 기관 검사 결과 황산 탱크 노후화가 심각하다는 평가 결과가 나와 추가로 철거를 해야한다고 밝혔다. 그간 자사 배출량에 더해 영풍의 황산 처리까지 떠맡으며 부담이 컸다는 입장이다.

특히 2026년에는 고려아연 자회사 켐코의 '올인원 니켈 제련소'가 본격 가동되면서 연간 18만5000톤 규모의 황산이 추가 생산될 예정이어서 고려아연 역시 외부 전문업체를 통한 황산 처리 방법을 검토 중이다.

고려아연은 영풍에는 기존 동해항에 있는 황산탱크를 확대해 사용하는 방법 등 다른 선택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은 육상 운송으로 서해안과 남해안에 있는 탱크터미널을 활용하거나 영풍이 소유한 동해항 황산탱크를 증설하면 되는 데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방법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황산 처리와 보관에 대한 비용과 위험 부담을 직접 짓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아연생산업체인 영풍은 스스로 황산의 처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최대주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그간 고려아연에게 위험물질 처리를 떠넘겨왔다"며 "국내 여러 항구에서 자체 탱크를 설치하거나 외부업체의 탱크를 임차하는 등의 대안이 있음에도 영풍은 고려아연에 황산처리를 맡기는 것이 비용을 더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자체적으로 황산처리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영풍은 고려아연이 황산대행을 해주지 않으면, 자사의 주력 제품 자체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무책임한 논리를 내놓고 있다"며 "상장 기업으로서 만약의 사태를 전혀 대비하지 않는 경영 방식에 큰 의구심이 들며, 대주주란 이유로 당사에 책임과 의무 떠넘기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