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선택 자율성이 관건…판결 엇갈려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의 한 대학가에 배달라이더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대학가에 배달라이더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볼 것이냐를 두고 엇갈리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타다 기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과 달리 음식 배달기사(배달라이더)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하급심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또 미성년 배달라이더 근로자성은 일부 인정된 하급심 판결도 있어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자성 판단이 엇갈린 주된 이유는 업무 선택의 자율성 차이다. 법원은 배달라이더가 배달 주문과 경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고 봤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배달의민족 등 배달플랫폼 업체 라이더는 물론 대리운전기사, 가사관리사 등 다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라이더, 업무 선택권 있어…근로자 아냐”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판사 정현석)는 7월 12일 배달라이더 A 씨와 A 씨가 소속된 라이더 노동조합이 배달플랫폼 업체 B 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B 사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만큼 부당해고 대상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A 씨는 B 사와 2021년 5월 ‘배송대행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B 사가 운용하는 스마트폰 앱으로 ‘배달콜’을 받는 위탁 라이더로 일해 왔다. B 사가 2021년 12월 A 씨와 맺은 배달업무 위탁 계약을 해지하자 원고 측은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 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라이더가 어떤 배달 주문을 수행할지, 어떤 경로를 이용할지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해 회사가 라이더 A 씨를 지휘·감독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A 씨 측이 “배달플랫폼 업체가 라이더들의 실시간 위치를 파악하고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배달료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라이더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한 것은 과속이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제한”이라며 “라이더들은 동일 알고리즘 아래서 상호경쟁을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며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임금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라이더는 특정 회사에 얽매인 ‘전속성’이 없고, 다른 직업을 겸업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으며, 계속 근무도 강제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외에도 △라이더가 업무 도중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점 △근무 시간과 장소의 결정 권한이 라이더에게 있는 점 △오토바이 수리비,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등을 직접 부담한 점 등을 근거로 근로자성이 없다고 봤다.

미성년 배달라이더의 근로자성은 ‘인정’

미성년자 배달라이더인 경우 근로자성을 일부 인정한 판결도 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윤아영 판사는 2023년 7월 야간 배달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등학생 A 군에 대해 “A 군과 배달대행업체는 근로계약 관계가 맺어졌다고 보는 게 적합하다”며 배달대행업체가 부모에게 4000여 만원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 군은 2021년 1월 오후 8시 30분께 경기 부천시의 한 도로에서 불법 주차돼 있던 화물차량 뒤를 들이받으면서 약 2주 뒤 뇌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A 군의 부모는 “배달대행업체가 A 군을 고용한 사업주로서 보호 의무를 게을리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서 유족급여를 받은 것과 별개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배달대행업체는 “A 군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라 단순히 배달중개 계약을 체결한 것에 불과하다”며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A 군이 하교 후 하루 10건 이상 배달대행업체의 관리 아래 업무를 수행했고 오토바이도 받았으며 약 1년간 4일을 제외하면 모두 근무했다”며 A 군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이어 “A 군이 미성년자임에도 부모의 동의 없이 야간에 근로하게 했으며 안전교육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이상 배달대행업체는 부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부모에게도 보호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고 무단 주차한 트럭 운전자의 과실도 고려돼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는 15%로 제한됐다.

노동계 “타다 판결과 상충”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최근 나온 대법원의 ‘타다’ 판결과 상충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은 7월 25일 운송플랫폼 타다 소속 운전기사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조계는 이번 판결과 타다 판결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배달라이더가 원칙적으로 업무 수락 여부를 선택할 재량권을 지녔다고 본 점에서 타다 판결과 다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도 “대법원의 타다 판결 이후 플랫폼 종사자들은 당연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판결로 근로자성 판단은 구체적인 업종과 기업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노동 형태인 플랫폼 종사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에 대한 정책적·제도적 보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계에선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동일한 형태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경영계는 근로자로 인정하면 법적 규제가 심화해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재판부도 이번 판결에서 “공유경제 출현으로 발생한 (새로운) 계약관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무리하게 넓히면 플랫폼 산업이 위축되고 일자리를 되레 없애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돋보기]
근로기준법·노조법 근로자 지위 인정 달라

근로자성 판단은 법률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근로기준법(근로기준법)은 엄격한 사용 종속성을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한다.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적인 종속적 관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요 판단 기준으로는 △계약관계의 계속성과 전속성 △종속 노동성 △독립사업자성 △보수의 근로 대가성 등이 있다(대법원 2010다5441 판결).

반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완화된 사용 종속성 기준과 경제적 종속성을 함께 고려한다. 노무공급계약의 형태와 무관하게 실질적 노무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특정 사업자에 대한 소득 의존도 △계약 내용의 일방적 결정 여부 △필수적 노무 제공 여부 △지속적, 전속적 관계 여부 △지휘, 감독 관계의 존재 여부 △수입의 노무 제공 대가성이 판단 기준이다.

최근 판례를 보면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적용에 따라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엇갈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학습지 교사다. 대법원은 2014년 학습지 교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은 부정했지만 노조법상 근로자성은 인정했다(2014두12604).

대법원은 또 방송연기자, 철도역 내 매장 운영자, 자동차 판매원(카마스터) 등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등 판례가 확대되는 추세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식적으로 개인사업자라 해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어 단체교섭 거부나 노조 활동 이유의 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