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실수요자 A 씨(40대, 서울 거주)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코로나19 이후 집값이 급등할 때 집을 사지 못했다. 소득은 괜찮았지만 운이 나빴다. 한창 아파트를 사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닐 때는 매수인이 줄을 선 매도인 우위 시장이었다. 어렵게 매수를 결정해도 집주인이 계약 직전 마음을 바꿨다. 어느새 입주하길 원하던 아파트 가격은 급등해 A 씨의 가용범위를 떠났고 그보다 저렴한 아파트도 어느새 ‘영끌’해야 살 수 있는 가격대에 진입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2022년 기준금리 인상 이후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마음이 편했던 A 씨는 2년여 만에 다시 잠을 설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다. 지난해에도 몇 달간 집값이 반짝 올랐었지만 특례보금자리론의 단기적 효과였는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던 ‘서울 불패론’이 진짜였는지 다시 오르기 시작한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반기 들어서도 상승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곧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막 속도를 높이던 버스를 놓쳐버렸던 몇 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덜컥 집을 사기에는 경기가 불안하다. 가계부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위기 징후가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증시에 이어 한국 증시도 급락하며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같은 시기에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를지 미지수다. 서울 집값, 왜 오르나 현재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대부분 실수요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고급 일자리와 각종 교통,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에선 언제나 실수요가 하방을 받쳐왔다.
그러나 실수요 대비 주택공급은 늘 부족했고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와 코로나19를 거치며 시장에 풀린 유동성은 결국 집값에 불을 질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상승기에 높아진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한 일부 실수요들은 서울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실제로 서서히 감소하던 서울 인구는 수도권 집값 상승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1000만 명 선이 붕괴했다. 감소한 인구 대부분은 경기, 인천 등 인접 지역으로 이사했다. 주로 서울로 인구를 뺏기는 다른 지역과 달리 경기와 인천은 서울로부터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곳이다.
집값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 서울에서 경기도로 순전입(전출 대비 전입한 규모)한 인구 수는 12만4910명에 달했다. 2022년부터 경기, 인천으로 순전입하는 규모 자체는 감소하고 있지만 추세는 여전하다. 즉 매매전환을 고민하는 서울 전월세 세입자뿐 아니라 인근 수도권 주민들 상당수가 서울 아파트 시장의 대기수요인 셈이다.
집값뿐 아니라 부동산 규제 역시 서울 아파트 대기수요를 키운 요인으로 분석된다. 시가 15억원 이상 초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제한과 취득세 중과, 토지거래허가제 등 아파트 매매 수요를 억제했던 각종 규제 대부분은 서울, 그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강남3구’ 등 핵심지역에 집중됐다.
통상 상승기에는 급등하는 집값이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미래의 잠재수요’까지 주택 매수에 나서게 한다. 그런데 한창 집값이 오르던 시기에 이들 핵심지역 대기수요는 충분히 원하는 아파트를 매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최근 집값 상승은 지난해에 막혀 있었던 초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이 풀리면서 핵심지나 주거환경이 쾌적한 신축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주도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강남·신축 집중된 상승세, 확산될까 실제로 올해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이 높았던 지역은 초고가 주택이 밀집된 지역이다. 한국부동산원이나 KB부동산 등 집계 기관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지역이 강남권과 도심,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서울 한강변이라는 사실은 일치한다.
거래량으로 따지면 단연 대단지 새 아파트가 압도적이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집계된 매매 거래량 상위권 단지 대부분은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신축이나 준신축 아파트였다. 가구수가 많은 만큼 거래량 또한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최근 신규 입주한 대단지 아파트는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각종 운동시설을 갖춘 대형 커뮤니티와 단지 내 조경 등을 자랑해 선호도가 높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거래량 1위를 달리고 있는 송파구 가락동 소재 ‘헬리오시티’다. 8월 7일 기준 7월까지 243건이 거래된 것으로 집계된 헬리오시티는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1만 가구에 가까운 9510가구 규모 새 아파트로 재탄생했다. 강남권에 드문 대규모 신축으로 대치동, 잠실 학원가 이용도 용이한 편이라 실수요자에게 인기다. 최근 거래가 늘며 7월에는 전용면적 84㎡가 22억9000만원에 손바뀜되는 등 서서히 전고가(23억8000만원)를 노크하고 있다.
이처럼 주거 선호도가 높은 곳은 전문가 대부분이 갈아타기를 비롯한 실거주 목적의 매수를 추천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시장 수급에 따라 시세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란 분석이다.
시장의 또다른 관심은 일부 지역에 집중됐던 매수세가 외곽지역까지 확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부동산 시장은 강남을 비롯한 서울 핵심지역이 가격을 주도하며 주변 지역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형태로 움직였다.
한 달여 전부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까지 전 지역이 상승 전환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오름폭이 핵심지만큼 가파르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추세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장에선 이들 지역 역시 실거주를 목적으로 한 일부 새 아파트가 전반적인 시세를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노원구 소재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노원구에는 재건축 아파트가 많지만 아직은 실수요가 매수에 나서고 있어 새 아파트 위주로 거래가 되는 편”이라고 밝혔다.
새 아파트가 귀한 노원구에선 상계동 ‘포레나 노원’ 전용면적 84㎡가 올해 2월 전고가인 12억원을 돌파했다. 월계동 ‘월계센트럴아이파크’는 최근 잠잠했던 거래가 살아나며 점차 전용면적 84㎡ 기준 10억원에 근접해가고 있다. 전고가는 12억5000만원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엇갈린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외곽지역은 추천하지 않는다”며 “수요층이 경기 변화에 민감한 만큼 외부 충격에 상승 여력이 쉽게 꺾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진입 수요는 꾸준하므로 서울 내 핵심지역은 물론, 외곽지역이나 경기도 인접지역 내에서도 출퇴근 대중교통이 좋은 아파트는 전망이 좋은 편”이라며 “무리하게 대출을 받기보다는 가용 자금 범위 안에서 실거주 목적으로 장만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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