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1년 6개월 전. 윤석열 정부 첫 금융권 수장 인사가 일단락됐다. 임기가 만료된 금융지주 회장들은 모두 연임이 좌절됐다. 노골적인 낙하산 인사는 없었다. 다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이 보였다. 특히 우리금융. 당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이 원장은 ‘관치금융’ 논란 속에서도 손 회장의 연임에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손 회장은 결국 연임 도전을 포기했고 우리금융의 지휘봉은 외부 출신 인사인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에게 넘어갔다. 민영화된 우리금융의 수장을 이른바 ‘모피아’(과거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이 맡게 된 것이다. 당시 금융가에는 “임종룡 회장은 용산이 원한 사람이 아니다”란 말이 나돌았다.

최근 금융당국의 칼날은 이제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향했다. 연이은 금융사고 발생에 임 회장이 연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맞이한 임 회장의 연임에 빨간불이 켜진 셈.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이 쐐기를 박았다. 그간 금융지주와 은행의 내부통제, 이사회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당부해 온 금융당국으로선 전직 회장이 연루된 부당 대출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손 전 회장이 연루됐다고 추측되는 이번 부당 대출 문제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문제가 누군가의 제보로 갑자기, 느닷없이 터졌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현장검사를 진행한 금감원 책임자는 사건 발표 직후 휴가를 떠났다.

갑작스럽게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배경에 대해 금융계에서는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 등에 대한 전반적인 손질을 예고한 신호탄이라는 설부터 임 회장의 연임을 미리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 등이다. 임 회장 연임을 막기 위한 명분 쌓기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또또또 터지는 우리금융 모럴해저드

배경이 뭐든 드러난 우리금융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는 심각하다. 우리은행은 2년 사이에 벌써 세 번째 금융사고가 드러났다. 3건 모두 수백억원 규모다. 앞선 두 번의 사고는 지점과 본점의 직원들이 저질렀다면 이번엔 ‘회장님 친인척’ 부당 대출이 이뤄졌다.

권력을 움켜쥔 지주 회장 앞에서 내부통제는 유명무실했다. 우리은행은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을 대상으로 총 616억원(42건)의 대출을 실행했다. 차주들은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법인의 전·현직 대표로 있거나 대주주로 등재돼 있는 회사였다.

이 중 절반이 넘는 350억원(28건)이 대출 심사와 사후 관리 등을 위반한 부당 대출이었다. 예컨대 부적절한 담보나 보증인을 세웠는데도 심사를 통과했다. 대출자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는데도 은행은 사실 확인 없이 대출해줬고, 본점 승인을 거치지 않고 지점 전결로 임의 처리된 사례도 있었다.

사후 대응은 더 엉망이었다. 비정상적 절차로 수차례 대출이 이어졌지만 우리은행은 이제야 사고를 인지했다며 올해 초 자체 검사에 들어갔고 4월 관련 임직원 제재 조치 후 발표는 함구했다. 금융당국에 사고 보고 없이 관련 임직원 징계로 끝냈다는 얘기다. 전임 회장 친인척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심사 소홀’ 외에 뚜렷한 불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의 ‘심사 소홀 등으로 인해 취급여신이 부실화된 경우는 이를 금융사고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우리은행은 설명했다.

금감원이 6월 현장 검사에 나서자 우리은행도 ‘불법’ 정황을 포착했다. 물론 이때도 이유는 있었다. 심화 검사(2차)와 금감원 현장검사 대응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측은 “1~3월까지 1차 검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5월부터 2차 심화검사에 착수했다”며 “이후 사문서 위조와 배임 등 선릉금융센터장(지역본부장) A 씨의 불법행위를 확인해 해당 혐의로 8월 9일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손 전 회장의 개입 여부에는 선을 그었다. 대출 실행을 주도한 A 전 본부장 외에 다른 상급자의 부당한 여신 취급 개입은 내부 시스템상 불가능하며 구체적으로 확인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손 전 회장이 지주·은행에 지배력을 행사하기 이전 해당 친인척 관련 차주의 대출이 4억5000만원(5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100배 이상 늘었지만 “회장님은 몰랐어요”가 답변인 셈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고개 숙인 임종룡

여기까지가 사건 내용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대출 실행 시기다.

손 전 회장은 2017년 우리은행장에 오른 후 2019년 1월부터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하다가 2020년 3월부터 3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2023년 3월 임종룡 회장으로 수장이 바뀌었다. 대출이 일어난 시기는 2020년 4월부터 2024년 1월까지다.

손 전 회장이 우리금융을 떠났지만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이 임 회장의 재임 기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임 회장이 ‘뒷북 인지’를 했는지 알고도 ‘묵인’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잇단 금융사고는 주주는 물론이고 고객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고만 해도 부실로 이어졌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8월 9일 기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대출 잔액은 303억원(25건)이며 이 중 17건(198억원)에서 부실, 단기연체가 발생했다. 실제 손실 예상액은 82억~158억원으로 추정된다.

금감원 발표 직후 임 회장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도 무관용 원칙에 기반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제보로 시작된 검사, 금감원의 이상한 대응

금감원의 이번 현장 검사는 ‘제보’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올해 6월 다른 사건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던 중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에 대한 제보를 받았고 2개월이 지난 8월 해당 사고를 발표했다. 취재를 위해 현장 검사 책임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이번 주는 휴가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역대급 금융사고’로 취급되는 이번 사고를 발표하면서 공교롭게도 책임자는 휴가를 갔다는 얘기다.

은행권에서는 ‘국회에서 흘러왔다’, ‘한일은행 출신인 손 전 회장 관련 비리를 알리려는 상업은행 출신들의 제보로 시작됐다’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우리은행의 해묵은 계파 갈등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리은행은 1998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통합해 출범한 한빛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우리은행 내부의 계파 갈등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는 임 회장이 제보의 목적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임 회장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이유야 어쨌든 조만간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과 은행 쪽은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친인척의 부당 대출 과정에서 손 전 회장의 인지 및 개입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손 전 회장이 대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있다. 그가 지주 및 은행에 지배력을 행사하기 전 친인척 관련 대출이 4억5000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부당 대출 당시 현직 회장의 위력으로 인한 취급이 증명될 경우 임 회장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금융지주회사법 제57조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 경영의 건전성을 해할 우려가 인정되거나 금융지주가 자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자회사가 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게 할 경우 금융지주 기관은 물론 소속 임직원에게 주의·경고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