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배회하는 쌍팔년도식 유령[EDITOR's LETTER]
‘쌍팔년도’란 말이 있습니다. 1988년이라고 많이 얘기하지만 실은 단기 4288년, 즉 1955년을 말합니다. 그래서 1970년대 소설에도 쌍팔년도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지금은 그냥 ‘오래된 관습이나 시스템’을 말할 때 “쌍팔년도식이네”라고 하면 다 알아듣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 돌아가는 것을 보면 쌍팔년도란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 사회의 곳곳이 수명을 다한 구시대적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한국배드민턴협회 등 스포츠 협회가 대표적입니다. ‘선수보호’보다는 협회의 이익, 자유로운 경쟁보다는 상명하복, 실력보다는 관계가 중시되는 시스템이 드러났습니다. 새로운 세대와 어울리지 않는 ‘88 올림픽’을 겨냥해 만들어진 시스템은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세영이 이를 터뜨린 것이지요.

또 문제가 되고 있는 의료 쪽도 한번 볼까요. 누차 얘기했듯 한국이 자랑하는 건강보험은 1977년 시스템입니다. 정부가 의료보험은 도입하기로 했는데 국가에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의료를 공공보험 체제로 끌어들이는 편법으로 시작한 시스템입니다.

1998년과 2000년 직장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하면서 그럴듯한 외양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공공병원, 공공의료의 역할은 크게 확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77년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의식 속에는 이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 의사들에게 정부는 지난 2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폭탄을 던져버렸습니다. 의사들은 반발했고 의료붕괴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수가인상 등을 통해 민간으로부터 빌려쓰는 시스템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면서 의사 수를 늘리는 등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선거 때문이었는지 전략·전술도 없이 다짜고짜 2000명 폭탄을 던짐으로써 77년 시스템 개선은 더 요원해졌습니다.

이와 연관된 대학입시 시스템은 1995년 체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해 서울대 의예과 커트라인이 물리학과를 넘어선 첫 해였습니다. 이후 30년간 한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젊은이들은 서울대를 시작으로 전국의 의대로 진학했습니다. “전국의 의대를 다 돌고 그다음 서울대 공대를 선택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30년간의 의대 쏠림, 1995년 체제의 여파는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산업계에서 여전히 네이버와 카카오가 IT업계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비극입니다.

이해진, 김범수 창업자는 서울대 공대 전성기 시절에 입학한 86학번들. 이후 서울대 공대 출신이 창업해 크게 성장한 회사는 없습니다. 게임 쪽도 그 시절 입학한 창업자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은 서울대 85학번,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은 카이스트 91학번입니다.

2010년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 쿠팡의 김범석은 재미교포입니다. 네이버가 서비스를 시작하고, 다음이 포털의 모습을 갖추고 주식시장에 상장한 것이 1999년입니다. 여전히 한국 IT산업은 99년체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타 기업의 실종이라는 면에서 말입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이번 주 IT 기업의 상징 도시 판교의 위기를 다뤘습니다. 선두주자인 네이버와 카카오에서는 혁신이 사라지고, 스타트업 투자는 위축되고, 치솟던 몸값을 자랑하던 개발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는 게 판교와 IT업계의 현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거 박근혜 정부의 창업 국가론은 나름 일리가 있었습니다. 국가의 방향 면에서는. 그 방식이 기업들의 돈을 억지로 땡겨다 지역별로 창업지원센터를 세우는, 부동산을 중시하는 쌍팔년도식이어서 문제였지만.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박근혜의 창조경제론’으로 불렸던 거지요.

현 정부도 나름의 산업정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전을 되살리고, 각종 정책 대출을 통해 아파트를 사게 하는 정책이 생각납니다. 반대로 세계적 흐름인 RE100은 무시하고, 연구개발(R&D) 예산은 삭감하고, 가장 강력한 스타트업 육성 정책인 팁스(TIPS) 지원금은 확 줄여버리는 정책도 동시에 쓰고 있습니다. 이게 쌍팔년도식인지 아니면 21세기 방식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밖에 정치판과 직장에서 쌍팔년도식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다시 한번 말할 기회가 있을 듯합니다. ‘쌍팔년도식’이란 유령이 한국 사회 곳곳을 배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