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켄밀러, 엔비디아·애플·MS 모두 내다 팔아
빌 애크먼, 구글 팔고 나이키 신규 매수
조지 소로스, 애플 하락에 베팅
워런버핏, 애플 팔고 현금 채워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유일한 파트너이자 전설적인 투자자였던 찰리 멍거가 남긴 말이다. 경기의 흐름은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속에서 위기와 기회를 읽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매년 5월과 8월, 11월, 그다음 해 2월은 월가가 들썩인다. 호황과 불황의 신호를 가장 먼저 읽는 이들의 포트폴리오가 시장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13F가 공개되면 투자자들은 이를 펼쳐놓고 미래를 점치느라 바빠진다.
억만장자가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나 헤지펀드, 연기금, 은행, 보험회사가 매 분기 어떤 종목을 사고팔았는지 13F에 낱낱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투자 대가들의 13F는 각 종목에 대한 투자 지침서가 될 뿐만 아니라 산업의 흐름을 파악하거나 경기를 전망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된다. 자본은 불균형하고 정보의 비대칭이 쌓인 시장은 불공정하다.
하지만 시장을 먼저 읽는 ‘투자 구루’들의 현안을 참고한다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수도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글로벌 투자 대가 5인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했다. 그 결과 M7으로 불리는 빅테크는 팔아치우고 소비재를 담은 구루들이 많았다. 스탠리 드러켄밀러-듀케인패밀리오피스
엔비디아·애플·MS·쿠팡 내다 팔고 담배 담았다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 비중을 모두 줄였다. 그가 운용했던 펀드는 1986년부터 3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30.4%에 달했다. 손실이 난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쿠팡의 초기투자자로도 유명하다.
드러켄밀러가 운용하는 듀케인패밀리오피스는 올해 2분기에 보유하고 있던 엔비디아 지분 88%에 해당하는 150만 주를 팔았다. MS는 보유량의 64%, 애플은 79%를 처분했다. 쿠팡은 51%를 매도하고 약 2억3000만 달러 상당의 지분만 남겼다. 하지만 쿠팡은 여전히 듀케인이 두 번째로 보유하고 있는 종목이다.
드러켄밀러는 엔비디아의 상승과 하락을 정확히 예견했다. 2022년 10월 철자도 제대로 몰랐던 엔비디아에 처음 투자했다. 젊은 투자 파트너에게 인공지능 열풍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엔비디아를 58만 주 이상 사들였다. 올해 1분기부터는 엔비디아를 공격적으로 팔았다. 그사이 엔비디아 주가는 150달러에서 900달러로 올랐고 드러켄밀러는 약 1년여 사이 주식과 콜옵션을 고점에서 처분했다. 그 밖에 제너럴일렉트릭(GE)과 버티브홀딩스, 카메코, 마블테크놀로지 지분은 전량 매도했다.
빅테크, AI 대장주는 대거 팔았지만 AI 상승 랠리에서 소외됐던 수혜주는 대폭 늘렸다. 드러켄밀러가 2분기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미국 반도체 레이저 업체 코히런트였다. 듀케인은 올해 1분기 처음 코히런트를 편입했고 지분을 253만 주에서 2분기 359만 주로 대폭 늘렸다.
코히런트 주가는 지난해 1년 동안 22%가량 오르는 데 그쳤지만 올해 들어서는 8월까지 90% 넘게 뛰었다. 지난해까지는 엔비디아, MS 등 AI 빅테크가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면 올해는 코히런트 같은 AI 후발주자들의 상승세가 펼쳐진 것이다.
듀케인이 2분기에 두 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은 세계 최대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 콜옵션이다. 대표 배당주인 필립모리스 콜옵션과 주식을 합쳐 180만 주를 새로 사들였다. 투자 금액을 합치면 1조8770억 달러(약 2533조8900억원)에 이른다.
듀케인은 미드아메리카아파트먼트커뮤니티(MAA)와 캠든프로퍼티(CPT) 등 부동산 관련 기업도 신규 편입했다. MAA는 미국 선벨트(남부 지역)를 중심으로 소규모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부동산투자회사다. CPT도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빌 애크먼-퍼싱스퀘어캐피털
구글 팔고 나이키 샀다 빅테크를 팔고 소비재에 투자한 억만장자가 또 있다. ‘리틀 버핏’으로 불리는 빌 애크먼이다. 그가 이끄는 퍼싱스퀘어캐피털은 2분기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주식을 대거 팔고 스포츠 의류 기업인 나이키를 신규 매수했다.
퍼싱이 2분기에 사들인 나이키 주식은 300만주 이상으로 약 2억2900만 달러 듀모다.
나이키는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주가가 30% 가까이 추락했다. 중국에서의 실적이 악화했고 아디다스, 호카, 온러닝 등 경쟁사들의 추격이 거셌기 때문이다. 잘못된 판매 전략과 ‘커뮤니티’ 마케팅에 소홀했던 것 역시 패착으로 꼽힌다. ‘나이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고 미국에서의 소비 둔화가 우려되던 때 애크먼은 나이키를 대량 매수하는 역발상 투자를 단행했다.
애크먼이 나이키 주식을 편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퍼싱스퀘어는 2018년에도 6개월 동안 나이키 주식을 매매하며 1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었다. 퍼싱스퀘어는 2분기에 딱 2종목만 매수했는데 나머지 하나는 자산운용사 브룩필드였다. 퍼싱스퀘어는 2분기 2억8500만 달러 상당의 브룩필드 주식 685만 주를 새롭게 매수했다. 매수 비중은 나이키보다 브룩필드가 소폭 높았다.
애크먼의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 치폴레 멕시칸 그릴, 레스토랑 브랜즈 인터내셔널 등 소비재에 치중돼 있다. 그가 유일하게 들고 있는 기술주는 바로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다. 퍼싱스퀘어는 알파벳A와 알파벳C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데 2분기 알파벳C 보유 비중은 19.5%, 알파벳A 비중은 8.4% 줄었다. 치폴레 멕시칸 그릴은 22% 이상 매각했다. 조지 소로스-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애플 ‘하락’에 베팅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애플 하락에 베팅했다. 버핏이 애플 지분을 49% 낮췄다면 소로스는 더 나아가 2분기 1억5800만 달러 규모의 애플 풋옵션을 매수했다. 애플 풋옵션은 소로스가 2분기 세 번째로 많이 매수한 종목이다. 애플 주가가 고점을 찍고 내려올 것이라고 예상한 헤지 수단으로 보인다.
알파벳, 아마존 등 나머지 빅테크 주식도 대량 매도했다. 소로스는 알파벳 주식 57만 주가량을 5800만 달러에 매각했다. 소로스는 보유하고 있던 알파벳 지분을 39%가량을 5800만 달러에 매각했다. 아마존 지분도 1500만 달러 규모에 해당하는 26%를 매도했다.
소로스가 2분기 가장 많이 매도한 주식은 ‘인베스코 QQQ’ 풋옵션이다. 나스닥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이 종목은 2분기에 3억8600만 달러가량을 팔았다.
대신 S&P500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45만 주를 새로 매수했다. 소로스는 2분기 S&P500 ETF Trust ETF(SPY)를 2억4490만 달러가량 사들였다.
소로스가 두 번째로 많이 매입한 주식은 영국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다. 2분기 주식 205만 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반면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 주식은 62만 주가량을 매도했다.
워런 버핏-벅셔해서웨이
애플 팔고 현금·화장품 담은 이유 버핏이 이끄는 벅셔는 올해 상반기 970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매도하고 현금을 쌓았다. “모두가 탐욕할 때 두려워하고 모두 두려워할 때 탐욕하라”고 말했던 버핏의 포트폴리오가 공개되자 미국에서는 빅테크 고점론을 넘어 경기침체론이 번졌다.
5월과 6월 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지만 벅셔는 애플 지분을 전분기 대비 50%가량 줄였다. 클라우드 기업 스노플레이크는 아예 전량 매도했다.
그 결과 벅셔의 포트폴리오에서 IT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분기 53%에서 올해 2분기 31%까지 줄었다. 그가 최근 대규모 매각과 현금 확보에 집중하는 데는 미국의 경기 하강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벅셔는 지난해까지 포트폴리오의 절반 가까이를 애플로 채웠지만 올해 1분기에는 40.8%로, 2분기에는 포트폴리오의 30%까지 비중을 줄였다.
버핏은 올해 1분기 주주총회 자리에서 애플 주식을 매도한 이유에 대해 기업에 대한 전망이 바뀐 것이 아니라 세금 부담을 우려한 지분 축소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버핏은 또다시 애플 매도에 속도를 내면서 이 같은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이번에는 매도 규모가 월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월가에서는 2분기에 버핏이 1억 주 안팎으로 애플 주식을 매도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버핏은 그 4배에 달하는 3억8900만 주를 팔아치웠다. 이 기간(4~6월) 애플 주가는 23% 뛰어올랐다.
애플 이외에 스노플레이크, 셰브론, 캐피털원, 티모바일, 파라마운트글로벌 등의 지분을 전량 매도하거나 비중을 크게 줄였다. 3분기로 넘어온 지난 7월 중순부터는 벅셔의 포트폴리오 비중에서 애플 다음으로 높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지분 역시 대거 정리했다.
버핏이 ‘위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는 또 있다.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아치운 돈으로 다른 주식을 사는 대신 현금을 쌓고 국채 매입 비중은 늘렸다. 버핏은 과거 여러 차례 “위기가 오면 국채를 사겠다”고 말했던 만큼 그가 경기침체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벅셔의 2분기 현금 보유액은 2769억 달러(약 376조9000억원)로 1분기 마지막 날인 3월 31일의 1890억 달러(약 257조2000억원)보다 100조원 이상 늘어났다.
버핏은 이렇게 쌓은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미국 단기국채 매입에 사용했다. 2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벅셔는 미국 단기국채에 2346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만기 1년 이하 단기국채의 금리는 5% 안팎이다.벅셔가 보유한 미국 단기국채의 규모는 미국 중앙은행(Fed)보다 많다.
올초부터 “살 게 없다”고 한탄한 버핏이 신규 매수한 종목은 2가지다. ‘미국의 올리브영’이라 불리는 화장품 소매판매업체 ‘울타뷰티’와 항공기 부품 제조업체인 ‘헤이코’다. 벅셔는 13F에 울타뷰티와 헤이코 주식을 각각 69만여 주, 104만여 주 매수했다고 밝혔다.
1990년 설립된 울타뷰티는 다양한 브랜드의 화장품을 한 공간에 모아 판매하는 소매판매점 체인이다. 한국의 ‘올리브영’ 같은 사업모델을 갖추고 있다. 울타뷰티는 매출과 시장점유율은 성장하고 있지만 주가는 약세를 보이며 3월 실적 발표 이후 벅셔의 매수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42% 하락한 상태였다.
하지만 월가에서는 울타뷰티의 건전성과 주주환원 정책, 실적 대비 낮은 가격 등이 버핏의 투자 전략에 딱 맞았다고 봤다.
윌리엄블레어의 딜런 카든 애널리스트는 “최근 몇 년 동안 벅셔가 ‘잉여현금흐름 관점에서 좋은 수준의 배당금을 제공하고 주주환원 정책을 취하려는 좋은 경영 팀을 갖추고 저평가된 경쟁 우위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을 취해왔는데 울타뷰티가 여기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항공부품제조업체 헤이코는 버핏이 선호하는 ‘배당주’ 성격을 띠고 있다. 헤이코는 7년 연속 배당금을 인상했고 49년 연속 배당금을 지급했다. 최근 실적도 좋았다.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1.13% 성장했다. 울타뷰티와 달리 주식은 최근 상승세였다. 헤이코의 1년 가격 총 수익률은 46%였다.
벅셔가 추가 매수한 기업도 있다. 보험사 처브, 위성 라디오업체인 시리우스XM홀딩스, 석유회사 옥시덴탈페트롤리엄 지분은 1분기 대비 늘었다. 보험사 처브는 앞서 벅셔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밀리에 매입해 온 주식으로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당시 처브의 PER은 11.3배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었다. 2분기 기준 벅셔의 처브 보유 주식 수는 2700만 주로 1분기(2600만주)보다 100만 주 늘었다.마이클 버리-사이언자산운용
중국 빅테크, 언젠가 뜬다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유명해진 마이클 버리의 사이언자산운용은 지난 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중국 빅테크 비중을 대폭 늘렸다. 중국 기업과 중국 시장 회복에 베팅한 것이다. 주식 포트폴리오를 절반으로 줄이는 와중에도 알리바바와 바이두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
사이언자산운용은 올해 2분기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보유 지분을 약 24% 늘렸다. 이는 약 12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다. 사이언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치가 가장 크다.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에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2분기에 바이두 지분을 약 88% 늘렸다. 총 650만 달러를 투자한 것. 포트폴리오 비중은 12.36%다. JD닷컴(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의 보유 지분은 약 30% 줄였지만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정도로 여전히 많다.
하지만 버리의 기대와 달리 중국의 올해 경제지표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 2분기 약 148억 달러(약 20조원)가 순유출됐다. 감소 규모가 1998년 관련 집계 이후 두 번째로 크다.
중국의 7월 청년 실업률은 17.1%를 기록했다. 7월 산업생산 증가율도 석 달째 둔화했다. 실물경제에 투입되는 위안화 대출 잔액은 7월 말 2005년 이후 처음 감소했다. 외국 자본 유출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계와 기업 모두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버리가 중국 정부의 ‘부양책’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본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경제 회복의 핵심으로 “소비 촉진”을 거론한 만큼 추가 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버리의 포트폴리오에서 빠진 종목 중 눈에 띄는 건 씨티그룹과 금이다. 버리는 2분기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금융회사 씨티그룹은 전량 매도했다. 금 보유 지분 역시 모두 정리했다. 앞서 사이언자산운용은 올해 1분기 금 실물에 투자하는 폐쇄형펀드(CEF) 스프롯 피지컬 골드트러스트(PHYS)를 44만 주 이상 신규 매수하며 1분기 최대 베팅을 감행한 바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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