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2차 정정 요구 '압박'…이복현도 연일 비판
'SK 합병 반대' 국민연금, 제동 가능성도

경기 성남시 분당두산타워. 사진=한국경제신문
경기 성남시 분당두산타워. 사진=한국경제신문
금융감독원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과 관련해 증권신고서를 다시 내라고 요구했다. 지난 7월 24일 처음으로 정정 요청 공문을 보낸 뒤 두번째다.

26일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주식의 포괄적교환·이전에 대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2차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요구 배경을 밝혔다.

두산로보틱스가 3개월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증권신고서가 철회된다.

금감원은 지난 7월 24일에도 증권신고서에 중요사항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았다며 한 차례 정정을 요구했다. 두산은 이후 정정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논란의 핵심인 합병 비율은 원안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와 관련 여러차례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이 원장은 지난 8일 "두산의 정정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장은 지난 25일 시사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기업의 구조개편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하고, 이에 금감원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면서도 "다만 투자자들이 합병에 찬성할지, 주식을 팔고 나갈 것인지, 이번 합병이 어떤 의사결정을 거친 것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병의 실질적 목적이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캐시플로우(현금)을 보유한 밥캣의 자금이 다른 곳에 쓰인다고 할 때 이에 대한 재무적 위험이 충분히 반영된 것인지에 대해 현재의 증권신고서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룹 계열사 합병에서도 시가보다 공정가치를 평가하도록 하고 불만이 있으면 사법적 구제를 요청하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며 "미국은 젠슨 황이라든지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접 나와 기업 목표를 설명하는데, 두산 경영진들은 투자자들에게 그런 노력을 하셨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8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앞서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간 인적분할 및 합병,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 등을 통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완전자회사로 이전하는 사업 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적자 기업인 로보틱스와 안정적인 '캐시카우'인 밥캣의 자본거래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거의 1대 0.63으로 거의 동일하게 평가받았다는 측면에서 소액주주의 반발이 커졌다.

국민연금의 입장도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에 반대하기로 하면서 향후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 2대 주주(6.85%)이며, 두산밥캣 지분도 7.22%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2일 열린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회의에서 SK이노베이션의 SK E&S와의 합병 조건에 대해 "10% 범위에서 (합병가액) 할증도 가능한데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들이 나왔다"라는 이유로 합병에 반대하기로 했다.

두산그룹의 합병 역시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비판이 거센 데다 국민연금이 언급한 '10% 할증 노력 부족'은 두산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지적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장사 간 합병과 주식교환 등은 시가를 기준으로 가치를 정하지만, 계열사 간 거래인 경우에는 10% 이내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이 가능하다.

만약 저평가인 두산밥캣의 합병가액을 10% 할증하고 고평가인 두산로보틱스는 10% 할인한다면, 교환비율은 0.63에서 0.77로 올라간다.

두산에너빌리티·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은 내달 25일 두산 3사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합병을 저지하기 위한 단체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ACT)'에서 표를 모으는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액트 운영사 컨두잇은 지난 2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과 창원지법에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주명부 열람·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내달 25일 예정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임시주총에서의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기 위해서다.

만약 국민연금을 필두로 외국인 투자자, 소액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합병이 무산될 수도 있다. 앞서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한도로 6000억원을 설정한 바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주당 2만850원)을 기준으로, 지분 6.85%를 보유한 국민연금 한 곳만 반대 의사를 표해도 매수한도를 초과하게 돼 합병이 무산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