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산업 규모, 한때 25조원까지 늘었지만
코로나 지나고 13조원 규모로 축소

롯데면세점, 연예인 모델만 50명 넘게 기용
시내면세점서 외국인 유치 경쟁도 치열

최근 들어 유커 사라지며 수익성 급감
디토 소비, 직구·최저가 온라인 쇼핑 등에 타격

사라진 외국인, 관광객 '핵심 콘텐츠'는 옛말[면세점 경쟁 10년①]
2014년 외국인 관광객은 사상 처음으로 1400만 명을 돌파했다. 한때 면세점은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중요한 콘텐츠였다. ‘큰손’으로 불리는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들에게 면세점은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부터 저렴한 한국 마스크팩까지 한 공간에서 다양한 쇼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내면세점 앞에 줄지어 정차한 대형 관광버스들은 도로 곳곳의 교통체증을 악화시키는 주범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유커가 몰리면서 한때 한국 면세점의 매출은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산업 규모는 25조원까지 커졌다. 롯데면세점은 한때 50명이 넘는 홍보모델을 기용하면서 경쟁에 불을 지폈다. 기업들은 앞다퉈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두산, 한화,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이었다. 신규 면세점 입찰이 실시되면 기업들의 신경전은 더 치열해졌고 일각에서 정치권 로비설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현재 면세점을 산업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전성기의 절반인 13조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부 유통 기업들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사실상 철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분쟁도 견뎌냈지만 코로나가 면세점 쇠락의 계기였다. 유커가 급감하며 면세점은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여기에 명동을 벗어나 한국인과 비슷한 소비를 원하는 외국인들의 취향 변화도 한몫했다. 면세점 전성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면세점 10년의 성장과 쇠락을 돌아봤다.
사라진 외국인, 관광객 '핵심 콘텐츠'는 옛말[면세점 경쟁 10년①]
◆ 면세점, 한때는 신성장동력이민호, 김수현, 이종석, 박해진, 엑소(EXO), 차승원, 최지우, 황치열, 슈퍼주니어, 투피엠(2PM), 트와이스, 이루, 엔씨티(NCT)….

2016년 롯데면세점은 유커를 유치하기 위해 52명에 이르는 연예인을 모델로 발탁했다.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은 이들의 사진으로 꾸몄고 이들이 실제로 착용한 제품이나 친필 사인이 포함된 음반을 전시하기도 했다. 당시 명동본점에는 300만 명에 가까운 외국인 관광객이 다녀갔다. 광고, 홍보 등에서 롯데면세점의 스케일은 세계 1위의 느낌이 날 정도였다.

빠르게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한 시도였다. 2014년 외국인 관광객은 사상 처음으로 1400만 명을 돌파했다. 외국인 관광객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55년 이후 59년 만의 성과다. 엔화 약세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계 20위권에 진입한 관광 강국으로 올라섰다.

이들 대부분은 유커였다. 2010년 188만 명 수준의 중국 관광객은 2014년 613만 명으로 급증했다. 유커의 해외여행지 비중은 아시아 89.5%, 유럽 3.5%, 아프리카 3.0%, 미주 지역 2.7%, 대양주 1.1% 순이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수혜를 누렸다. 2016년에는 807만 명을 기록하면서 일본 관광객(230만 명)의 3.5배에 달하는 규모로 커졌다.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유커 수는 417만 명으로 전년 대비 48.3% 줄었지만 여전히 방한 외래 관광객 국가 기준 1위를 유지했으며 2019년까지도 이 순위를 지켰다.
사라진 외국인, 관광객 '핵심 콘텐츠'는 옛말[면세점 경쟁 10년①]
면세점은 유커 특수를 누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면세점 매출은 2014년 8조307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1.6% 성장했다. 같은 기간 인천공항 면세점은 세계 최초로 매출 2조원을 돌파한 2조1500억원의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때 시내면세점인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에서만 4조350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경쟁도 치열해졌다. 2015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는 롯데면세점, 호텔신라, 신세계, 한화갤러리아 등은 물론이며 태국계 면세 사업자인 킹파워까지 사업 의지를 내비쳤다. 높은 임대료 탓에 인천공항 면세점은 ‘문 열면 적자’라는 인식에도 전망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업권을 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은 ‘공항 면세점’을 숙원사업이라고 할 만큼 관심이 컸다.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 면세점 인수로 면세업에 진출한 이후 8개월 만인 2013년 김해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냈다. 당시 신세계는 기존 사업자인 롯데 임대료(500억원)를 크게 웃도는 640억원 수준의 입찰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년 만인 2015년에는 처음으로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성하면서 ‘롯데-신라’ 양강구도를 깼다. 정용진 회장은 면세점을 신성장동력으로 칭하며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는 데 주력했다.

이듬해인 2015년 9조1984억원까지 늘었고 2016년 12조2757억원을 기록했다. 면세점이 정점을 찍은 시기는 2019년이다.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한 24조8586억원을 기록했으며 방문객 수는 4844만 명에 달했다. ◆ ‘사라진 유커’만 문제일까코로나로 상황이 달라졌다. 사드 사태에도 매출을 늘려온 면세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2020년 전체 매출은 15조5052억원, 방문객은 1067만 명으로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만 버티면 외국인들이 돌아오고 매출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상은 달랐다. 지난해 면세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22.8% 감소한 13조7586억원에 그쳤다. 외국인 매출은 16조3902억원에서 11조726억원으로 줄었다. 면세점을 찾는 외국인 수가 156만 명에서 602만 명으로 늘어났지만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사라진 외국인, 관광객 '핵심 콘텐츠'는 옛말[면세점 경쟁 10년①]
객단가(1인당 지출 비용)가 낮아졌다는 의미다. 매출금액을 인원 수로 나눈 평균값으로 따질 때 외국인 객단가는 2021년 2555만원에서 2022년 1049만원으로 줄고, 지난해에는 184만원까지 내려앉았다. 단순 계산 시 외국인 1명이 면세점에서 연간 기준으로 200만원도 안 쓴다는 의미다.

면세 업황이 악화된 것은 △사라진 유커 △디토 소비 △직구·최저가 온라인쇼핑 활성화로 줄어든 매력 등이다.

면세점 큰손으로 불린 유커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방한 중국인은 2020년 69만 명에서 2021년 17만 명으로 줄었다. 2022년에는 소폭 증가한 23만 명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202만 명으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2016년(807만 명)과 비교하면 약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한국에 들어오는 개인 중국 관광객의 소비도 줄었다. 외래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의 한국 여행 경비는 2022년 4968달러에서 지난해 2324달러로 절반가량 줄었다. 쇼핑 장소도 달라졌다. 면세점에서 물품을 구매한 중국인은 2019년 54.9%에서 지난해 21.7%로 줄었다. 반면 백화점은 18.0%에서 37.5%로, 대형 쇼핑몰은 10.6%에서 37.4%로 늘었다.

중국인들의 소비 취향이 달라지면서 면세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8월 25일 유커의 취향이 변했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면 성수동 쇼핑과 카페 체험하기, 뷰티 시술을 받고 ‘눈물의 여왕’ 촬영지 둘러보기 등이다.

중국인뿐만이 아니다. 젊은층의 디토 소비가 확산하면서 한국인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유명인)의 일상을 따라하는 행태가 외국인 관광객에 영향을 미쳤다. 디토 소비는 ‘나도(Ditto)’를 뜻하는 라틴어와 소비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이 구매한 제품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인스타그램,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유명 인사의 취향을 복제하는 행위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
사라진 외국인, 관광객 '핵심 콘텐츠'는 옛말[면세점 경쟁 10년①]
한국에서는 이들 인플루언서가 자주 방문하는 성수동, 한남동, 압구정 로데오 등이 새로운 쇼핑 성지로 떠오르면서 브랜드 쇼룸(매장)을 직접 찾아가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졌고 상대적으로 면세점 소비가 줄어들었다. 또 올리브영·다이소 등 현지 뷰티·소품숍의 인기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한국의 ‘가성비’가 떨어졌다. 중국인들에게 한국 여행은 ‘저렴하게 방문해서 쇼핑만 하는 장소’로 꼽혔다. 중국인 단체여행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특히 면세점이 중국 여행사들에 리베이트를 주면서 2박 3일 또는 3박 4일의 단기 초저가 상품 등이 중국 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고환율이 지속되고 유가가 급등하면서 과거와 같은 가격으로 한국 여행을 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내국인 대상으로는 해외직구, 온라인쇼핑 등이 활성화되면서 면세 쇼핑 매력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쿠팡, 네이버 쇼핑 등이 이커머스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최저가 경쟁을 벌이면서 브랜드 제품들의 할인율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세금을 붙이지 않는 면세 상품과 비교해도 가격 차이가 크게 없다. 또 해외직구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국내에 진출하지 않는 브랜드나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제품들을 쉽게 구매 가능해졌다. 면세점에서만 단독 판매하는 브랜드가 아닌 이상 소비자들이 면세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은 물론 전체적으로 외국인들이 면세점에서 돈을 안 쓰는 게 추세”라며 “익숙한 장소이기 때문에 방문은 하지만 면세점만의 매력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을 사로잡을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지만 코로나 이후 계속된 적자로 현재는 내실경영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