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와 BMW는 수소차 분야에서 손을 잡기로 했다. 도요타가 수소탱크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BMW는 수소차를 양산할 계획이다. 성장세가 둔화하는 전기차에만 매달리지 않고 수소차까지 차세대 친환경차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수소차 세계 1위 현대자동차에 도전장을 내민 모습이다.
도요타와 BMW는 9월 3일 업무협약(MOU)을 맺고 5일 협약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수소와 산소의 반응으로 발생한 전기로 움직이는 수소차는 운행 때 물만 배출해 ‘궁극의 친환경차’로 꼽힌다.
도요타는 BMW가 생산할 수소차에 수소탱크, 연료전지 등 핵심 부품을 전면 공급할 계획이다. 구동 시스템 등은 BMW가 맡는다. 도요타와 BMW는 2012년부터 수소차 분야에서 협력했다. 그동안에는 도요타가 연료전지 부품인 셀만 공급했다. 도요타는 2014년 수소차 ‘미라이’를 내놓고 현대차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BMW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5’를 기반으로 수소차 ‘iX5 하이드로젠’을 개발하고 있다. 2개의 수소탱크에 총 6kg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차량이다. 충전 시간은 3~4분에 불과하며 한 번 충전하면 500km 이상 달릴 수 있다. 도요타의 수소 시스템을 도입해 비용을 줄이고 수년 내 판매를 시작하겠다는 목표다.
양사는 유럽 내 수소 인프라 구축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내 전기차 충전소는 작년 말 기준 63만여 곳에 달하는데 수소 충전소는 270곳에 불과하다.
도요타 미라이는 가격이 700만 엔을 넘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와 BMW는 수소차 가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소 관련 시스템의 핵심 부품을 공통화해 가격을 낮추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테슬라처럼 전기차 통째로 주조
도요타는 전기차 생산에 ‘기가캐스트’ 기술도 도입한다. 차체 부품을 한 번에 찍어내는 기술로 초대량 생산에 용이하다. 원가 경쟁력을 높여 테슬라 등에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도요타는 연내 기가캐스트에 사용할 9000톤급 대형 주조 설비를 아이치현 공장에 도입할 방침이다. 일본 최대 규모의 주조 설비로 전기차 부품 시제품 제작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기가캐스트는 고온에서 녹인 알루미늄 합금을 고속·고압으로 금형에 부어 차체 부품 등을 일체 성형하는 기술이다. 복잡한 형태의 대형 부품도 한 번에 만들 수 있어 차체 경량화, 생산 효율화 등에 유리하다. 앞서 테슬라는 세계 최초로 이 기술을 채택했다. 6000~9000톤 규모 설비로 ‘모델Y’ 등을 생산하고 있다.
도요타는 2026년 출시할 렉서스 차세대 전기차 ‘LF-ZC’부터 기가캐스트로 생산할 방침이다. 차체를 전면, 중앙, 후방 등 세 부분으로 나누고 후방과 전면을 기가캐스트로 찍어낼 계획이다. 기존 차체 후방 제작에 필요한 86개 부품, 33개 공정을 1개 부품, 1개 공정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도요타 외 일본 완성차 업체도 기가캐스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혼다는 도치기현 연구개발(R&D) 시설에 6000톤급 설비를 설치하고 양산을 준비 중이다. 닛산자동차도 2027년 6000톤급을 도입해 부품 중량을 2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는 ‘하이퍼캐스팅’이라는 이름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노사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 합의했으며 2026년 양산에 적용할 예정이다. 폭스바겐, 볼보 등도 비슷한 공정 도입을 준비 중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가캐스트는 자동차 제조 방식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며 “도요타는 강점인 하이브리드카로 이익을 확보하면서 자금을 전기차 개발에 투입하는 전략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배터리 공장도 속도
도요타는 규슈 후쿠오카에 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 공장도 신설한다. 내년 공사를 시작해 2028년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후쿠오카에는 도요타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 공장이 있고 배터리 공장은 인근에 세워진다. 도요타는 배터리 공장 건설에 수천억 엔을 투자한다. 일본 정부도 보조금을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요타는 2030년까지 전기차에 총 5조 엔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도 2조 엔을 투입해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평가받는 도요타는 전기차 판매량을 2030년 350만 대로 늘릴 방침이다. 전기차 전략의 핵심인 렉서스는 2035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바꿀 예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의 후쿠오카 공장 건설로 대만 TSMC와 소니그룹 등이 이미 투자한 규슈가 미래차에 필요한 반도체, 이미지센서 등 첨단기술 생산 거점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2분기 최고 실적 달성, 하반기엔 악재 예상
도요타는 분기 영업이익 기록을 새로 썼다. 올 4~6월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1조3084억 엔을 기록했다. 4~6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매출은 같은 기간 12% 증가한 11조8378억 엔을 달성했다. 역시 역대 최대 기록이다.
미국 시장 하이브리드카 판매 호조에 엔저 효과가 더해졌다. 4~6월 하이브리드카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97만 대에 달했다. 전체 판매의 약 40%에 이른다.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카 판매 호조로 영업이익률은 11%를 기록했다.
엔저 효과도 컸다. 엔화 약세에 따른 이익 상승분은 3700억 엔이었다. 4~6월 평균 환율은 달러당 약 156엔으로 도요타가 연간 전체로 세운 달러당 145엔보다 10엔가량 약세였다. 원가 개선도 950억엔 기여해 임금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상쇄했다.
하반기는 악재가 더 많다. 일본 정부는 도요타의 ‘품질 인증’ 관련 부정행위를 7개 차종에서 추가로 발견해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도요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시정명령은 처음이다.
도요타는 결국 올해 글로벌 생산량 목표를 기존 약 1030만 대에서 약 980만 대로 50만 대 낮추기로 했다. 품질 인증 부정에다 중국 판매 부진 탓으로 분석된다. 도요타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1003만 대를 생산했지만 올해는 목표치 하향 조정에 따라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이후 4년 만에 전년 대비 생산량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내에서 320만 대, 해외에서 660만 대를 각각 만든다는 방침이다.
앞서 도요타는 품질 인증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드러나 일부 차종 생산을 중단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한 까닭에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는 중국에서 고전하는 점도 생산량 하향 조정에 영향을 미쳤다.
도요타의 실적을 뒷받침하던 엔저 효과도 점차 약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결정 뒤 엔화 가치는 크게 오르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7월 초 달러당 약 162엔까지 치솟았지만 7월 말 일본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한 뒤 달러당 약 141엔까지 떨어졌다.
도요타 주가는 하락세다. 8월 28일을 기준으로 6개월간 23%가량 떨어졌다. 결국 자동차 한 대당 고정비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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